“닭이야 말로 전 인류가 좋아하는 고기 아닐까? 닭을 먹지 말라고 하는 종교는 본 적이 없어. 다들 닭고기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가끔 취기가 오르면, 꼭 닭으로 된 요리를 시켜먹으며 호언장담하는 친구가 있다. 그러면 닭을 좋아하다 못해 거의 끼고 사는 나로서도 “암만 암만”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닭가슴살의 담백함과, 닭날개와 다리의 촉촉한 탱글함을 찬양하며 잔을 부딪히곤 한다.
닭고기를 처음 좋아하게 된 기억은 역시 치킨이다. 어린 시절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던 우리 집 사정으로 치킨은 귀한 요리였다. 아버지가 월급을 받거나 뭔가 축하할만한 일이 있으면 우리 가족은 끝이 ‘카나’로 끝나는 치킨 브랜드에서 후라이드 치킨을 한 마리 시켰다. 아버지는 양념치킨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고, 당시에는 지금처럼 반반으로 주는 집도 흔하지 않았기에(어쩌면 흔했는데 아버지가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치킨 집에 전화하는 아버지 귀에 대고 “양념소스도 달라고 해주세요!” 하고 크게 외쳤던 기억이 난다.
치킨이 도착하면 상 위에 황급히 둘러앉아 재빨리 상자 위의 고무줄부터 벗겨내던 기억, 수북한 치킨 때문에 상자의 뚜껑은 닫는 기능을 하지 못했다.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고소한 그 냄새. 치킨은 다른 튀김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칠맛이 향 속에 내재되어 있다. 오징어튀김도, 새우튀김도 좋아하지만 단연 치킨의 그 냄새분자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아마 닭고기 본연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치킨 스톡(닭기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온의 기름에서 녹아나오는 닭의 본질의 냄새!
물론 치킨은 지금도 좋아한다. 치킨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한국치킨의 맛은 근본을 살리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말 세계화의 정점에 도달한 맛이니 말이다. 하지만 치킨 말고도 닭고기가 들어간 모든 음식을 사랑한다. 닭을 가지고 하는 대표적인 요리인 철판 닭갈비도 그렇고, 숯불 위에 잔잔하게 구워내는 숯불 닭갈비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철판 닭갈비는 이름을 바꿔야 된다고 생각한다. 숯불 위에 구워내는 닭갈비가 진정한 닭갈비다. 그 숯에 살짝 그을린 불 맛, 숯에 떨어진 닭 기름에서 올라오는 연기에 훈제된 그 내음. 그에 비해 철판에서 볶는 닭갈비는 그보다는 좀 더 볶음 요리이지 않나 라는 생각입니다만. 맛이 덜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냥 낚지볶음처럼 닭볶음 이런 종류이지 않나라고 생각할 뿐.
그러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닭 샤브샤브를 알게 되었다. 샤브샤브라고 하면 아주 신선한 고기를 재빨리 데쳐내어 먹는다는 느낌이 있어서 과연 닭 샤브샤브가 가능할까 싶었다. 신선한 닭고기라고는 어린 시절 계곡가에 위치한 가게에서 토종닭을 잡아 백숙으로 끓여먹었던 기억 밖에는 없다. 푹 끓여 익힌 닭고기. 그래서 처음 닭 샤브샤브라는 말을 들었을 땐 마치 우유라이스처럼 뭔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재료가 함께 붙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닭 샤브샤브는 교래리에서 먹어야 한다는 제주 지인의 추천을 들었다. 그 곳에서 닭을 많이 키우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교래리에 가보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식당들이 대부분 닭샤브샤브를 팔거나 닭칼국수를 판다. 그러고 보니 치킨을 파는 것은 보지 못했다. 왜지? 토종닭이라 치킨은 맛이 없는 걸까?
닭 샤브샤브라는 합성어를 처음 체험하게 된 날은 늦은 가을이었다. 날은 선선했고, 풀벌레는 얼마 안남은 죽음을 슬퍼하는 것인지 오늘의 찬란함을 만끽하는 것인지 찌르릉찌르릉 울어대며 서늘한 공기 사이를 메꿔가고 있었다.
이 요리는 혼자서는 먹을 수가 없는 요리다. 닭을 한 마리 잡아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3명은 필요하고, 4명 정도가 적당하다. 그래서 그날은 제주의 지인을 한데 그러모아 닭 샤브샤브라는 것을 먹어보러 가자고 호기롭게 예약을 하고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신발을 벗고 방 안에 들어서니, 이미 나무로 된 상 위에는 동그랗고 넓은 검정 냄비 속에 샤브샤브 육수가 담겨져 있었고, 4인을 위한 세팅과 샤브샤브용 채소(아마 미나리와 배추였던 것 같다), 그리고 샤브샤브를 찍어 먹을 수 있는 작은 소스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차례대로 앉자, 주인은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고 잠시만 기다리라며 방을 빠져나갔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상상을 한 것 같다. 닭고기가 샤브샤브 고기처럼 아주 얇은 포로 떠서 나오는 걸까? 닭 가슴살일까? 퍽퍽하진 않을까? 닭고기는 덜 익히면 세균이 많다고 들은거 같은데 대체 얼마나 뜨거운 육수에 담궈 끓여내야 할까 등등.
잠시 후 우리 앞에 등장한 닭 샤브샤브의 고기는, 생각보다 그냥 닭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물론 얇게 저며져 잘라지긴 했지만,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소고기나 돼지고기 샤브샤브처럼 그렇게‘얇은 포’형식으로 떠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닭고기를 얇게 자르는게 소나 돼지보다 힘들어서? 그렇게 뜨면 맛이 없어서?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것이 샤브샤브 고기와 함께 입장했다. 바로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그것은 바로오오오! ‘닭 회’!!!
들어본 적이 있는가? 닭고기를 회로 먹다니요 선생님? 저 오늘 살아 돌아갈 수 있는 거죠? 호들갑을 떠는 우리들 앞에서 가게 주인은 자신감있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일단 드셔들 보시라니까? 더 달라고만 하지 마쇼. 더 달라고 해도 그건 딱 한 마리에서 고만큼 밖에 안 나오니까.” (사실 제주 사투리로 말씀하셨는데 소인 아직 사투리를 구현함에 있어 부족함이 많수다.) 아무튼 반신반의하며 닭 회를 입으로 가져갔는데, 아! 사장님이 왜 저토록 자신감을 뿜뿜하며 빚 받으러 온 채권자처럼 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닭이 생살도 맛있는 줄 알았더라면, 이걸 먹기 위해서라도 닭 샤브샤브를 좀 더 일찍 시도해 봤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잔인하고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도축한지 얼마 되지 않은 소의 간을 먹은 적이 있다. 정확히 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주방장님께서 아주 소중하고 특별한 것이라며 역시 채권자 또는 스티브 잡스 같은 당당함으로 나무 도마 위에서 썰어주셨던 그 간의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차갑게 식은 간도 맛있겠지만(지금 나는 특별한 사유로 인하여 소의 간을 더 이상 먹지 않는다.) 그때 그 간은 내 기억으로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물론 도축한지 적어도 1시간은 지났을 테니 물리학적으로 체온이 유지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까 그건, 신선함의 온도라고 해야 할까. 그런 온도였다. 아직 그 어떤 냄새도 조직도 형질도 변형되기 시작하기 직전의 오롯한 시간의 찰나에 남겨진 한 점. 그런 비슷한 온기를 닭 회에서도 느꼈다. 신선한 온기가 남아있었고, 적당한 부드러움과 감칠맛이 은은하게 돌아 입 안에 맴돌았다. 그동안 회로 먹었던 그 어떤 고기와도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튼, 몇 점 안되는 닭 회를 공격적으로 먹어치운 우리는 이내 닭 샤브샤브로 돌진했다. 아주 맑은 국물에 채소를 넣어 너무나도 담백해 보이는 육수의 호수 안에 말간 복숭아색으로 매끈하게 빛나는 닭의 살들을 하나씩 밀어 넣었다. 그때 홀연히 나타난 주인장 아저씨가 다급히 외쳤다. “그거 너무 익히면 맛 없어!”
이미 닭 회로 무한 신뢰를 얻게 된 그였기에, 우리는 정말 담그자마자 닭고기를 꺼내어 배추와 미나리로 살짝 말아 주인장의 특제 소스에 흥건하게 적셔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나의 닭요리 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담백하고 싱그러운데 촉촉하고 목 안쪽에서 한 없이 당기는 질감.
슬픈 사실은 한 마리의 닭에서 너무 적은 양의 샤브샤브 고기가 나온다는 것. 짧은 아름다운 로맨스 뒤에 따라오는 현실의 텁텁함처럼 그 뒤에 먹는 토종닭 백숙은 닭의 운동량을 짐작하게 하는 맛이라 조금 아쉬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