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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um Feb 10. 2021

희나리

소우주를 향해


“괜찮아, 만지기만 하는 거야,”

“.....”

‘너무 싫어. 내일도 오빠랑 또 같이 자야 되나?

‘휴...다행이다. 오빠가 없어졌어’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중학교 1학년 사촌오빠는 보이지 않았지만 난 궁금하지 않아서 엄마 아빠한테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 상황을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엄청난 수치심과 창피함과 두려움은 초등학교 2학년이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뛰어놀면서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상처인줄도 모른채 난

‘내일 학교에서 밥 먹고 내 짝꿍이랑 아이들 모아 고무줄놀이를 하면 잊힐 거야’ 라며 덤덤하기로 한다.





“아빠! 아빠는 죽어봤어?”

다섯 살 난 사람이 죽고 난 후 슬퍼 우는 장면을 보고 아빠 무릎에 앉아서 해맑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껄껄껄) 선아 그런 질문이 어디 있냐?”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시험점수 0점을 받고 집에 왔는데 벌써 도착한 언니는 하나 틀린 시험지를 앞에 두고 주저앉아 울고 있었고 아빠는 위로해 주고 있었다. 내 시험 점수를 보고는 어이가 없었는지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고는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셨다.

‘언니는 다음에 잘 치면 되지 왜 울기까지 하지? 아이스크림도 안먹고 이상하네.’



사촌오빠와의 사건 이후 그렇게 항상 순수하고 거림 낌이 없던 나였는데 더 이상 아빠에게조차 질문이라는 걸 할 수 없었다. 아빠가 낯설어졌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자가 낯설었다.


아빠가 낯설어졌다.



3번째 전학한 초등학교에서 4학년에 입학했다. 아이들은 점심시간 뛰놀고 있는데 난 내키지 않는다. 전학 온 난 수줍게 교실에 있었는데 반 친구들의 관심으로 친구가 생겼다. 미술시간에 그린 내 그림은 항상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헉헉) 선아 너 지금 이거 들고 용두산 공원 가서 그림 그리고 와. 개교기념일 전국 그림대회에 참여해야 해”

“네, 선생님. 그런데 체육시간인데 어떻게 가요?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다 얘기해놨어”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인데 무슨 그림을 그리지?.. 앗! 저기 언니가 있군. 뒤에 앉아서 언니 꺼 그대로 베껴 그려보자.’


“여러분 주목!! 선이 앞으로 나와. 개교기념일 전국 그리기 대회에서 동상을 받았어요. 박수!”

‘언니한테도 물어봐야겠다. 그대로 베껴 그렸는데 나보다는 높은 상 받았겠지.’

“언니야, 언니 오늘 무슨 상 탔어?”

“금상”

‘그럼 그렇지. 언니가 훨씬 잘 그렸으니 더 좋은 상 탔네.’


그렇게 난 미술부에 들어가게 되었고 방과 후 항상 어두컴컴한 5학년 교실에 가서 운동화나 화병을 혼자서 그리곤 했다. 난 뛰어놀고 그림 그리는 게 마냥 좋았다.

그러다 잘생긴 오빠를 운동장에서 보고 마냥 설레었다. 그 오빠는 우리 학교 운동부였다.

어느 날 운동부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했다.

난 호기심에 운동장에서 긴 줄 따라 서기 시작했다. 키가 작은 편은 아니라 다행히 나한테서 잘리고 내 뒤에 서있던 친구들은 탈락이었다. 그렇게 난 운동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매일매일이 새벽 운동에 학교 수업도 못하고 엄청난 양의 체력 운동의 연속이었다. 숨이 너무 차서 맨날 꼴찌를 했지만 난 참았다. 언제나 엄마는 힘쓸 때만 나를 시장에 데리고 다녔다. 아빠는 집안일과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힘겹게 돈 벌랴 집안일하랴 항상 예민한 상태로 화를 내곤했다. 동생이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가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다음부터 엄마는 동생의 피아노 공부에 아주 많은 신경을 썼다. 엄마의 대리만족이었을까.. 나도 그림을 잘 그리는데 나도 미술학원 가고 싶은데.. 하지만 그런 기회는 나에겐 오지 않았다.




5학년 전국체전에서 보기 좋게 11대 0으로 지고 나서 난 운동에 소질이 없다고 깨달았다. 2년 동안 학교 수업도 못 듣고 힘들게 운동만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고 코치나 감독은 아이들이 화풀이 대상이었는지 엎드려뻗치게 하고 엉덩이를 사정없이 방망이로 때리기 일쑤였다. 내가 운동을 그만둬야겠다 생각한 건 너무 아파서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아 힘든 운동이 싫어졌다. 엄마한테 얘기한 후 난 겨우 자유를 얻었다. 이젠 방과 후 집에 가도 되고 치마도 입어도 되고 머리도 기를 수 있었다. 친구 집에 갈 수도 있고 마냥 좋았다.

6학년 2학기 난 뒤처진 공부를 만회하려고 방학 때 탐구생활을 정말 열심히 풀었고 숙제를 완벽하게 다 해갔다. 여유까지 있다보니 동생이 친구들을 데리고오면 옥상에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실컷 놀아주기까지했다.

그러고 우등상을 받고 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뿌듯했다. 아직은 공부가 뒤쳐졌지만 만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1986




“선아 너가 살면서 기뻐하는건 가장 중요해. 무엇을 할때 넌 가장 기쁘니?“

„난 사람이 좋아. 가족이 좋고 친구도 좋고 그림 그리는것도 좋아.“

„선아, 사람들은 다 달라. 너가 너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되어야해.“

“난 나도 좋아.”

„너에게 귀를 귀울여.“

“잘 모르겠어.“


내 마음은 그냥 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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