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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맹글 Dec 03. 2020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끝을 알고 나면 스트레스에도 유연하게 반응하는 신기한 우리의 몸

HOME SWEET HOME 나의 포근한 집, 의 건물은 지금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이사 들어올 때 계약서와 함께 몇년몇월몇일부터 몇년몇월몇일까지 리모델링 공사를 하여 소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에 동의하고 사인해주세요, 라는 종이를 받아서 사인을 하였지만, 이게 월요일부터  토요일,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주구장창 이어지는 소음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 하였다.


첫날 집에 이삿짐을 들고 찾아온 오전 11시 반쯤, 처음 공사 소리를 듣고 당황함도 잠시, 이게 그 공사 소음이라는 건가? 에이 설마, 윗집에 가구 조립을 하는 건가? 싶었다. 들고 온 짐을 정리하고 다시 옛 집으로 가서 새로 짐을 들고 왔던 오후 2시쯤에도 이어지는 소리에, 이거 언제까지 이어지는 거지? 걱정이 앞섰다. 다음 날 아침 10시쯤에 찾아왔을 때에도 어김없이 들려오던 공사 소리에, 어 이거 이사 잘 못 온건가, 싶었다. 어쩐지, 방 안이 엄청 깨끗하더라니, 리모델링이 끝나자마자인 방에 친구가 들어와 5개월을 살다가 내가 들어와서 새 집 같았던 것이었다.


이사를 다 하고 새 집에서 자고 일어나는 첫날 아침, 아침을 느지막이 맞이하는 나에게, 알람이 울리기도 전인 아침 8시가 땡 하자마자 드릴 소리가 날 깨웠다. 그 후로 계속되는 드릴 소리에 내 방 주변을 살펴보며 어디에 그렇게 드릴을 쓸 일을 있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이 소리가 언제 끝날까, 만 생각하였다. 요 드릴 소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지, 어느 부근에서 나는 소리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던 첫날, 이거 원 환장할 노릇이었다. 부분 봉쇄가 시작되었는데 저 사람들은 공사를 왜 하는 거지?, 지금 몇 층에서 공사하는 거지?, 내 집 주변 위아래로 리모델링을 해야 할 방이 몇 개가 더 남은 거지?, 별 생각을 다 하며 드릴 소리에 내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아 속도 메스껍고 편두통까지 왔다. 하루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하는 내가 아침 8시부터 공사 소리에 깨어나 온 정신이 다 팔렸으니, 정말 하루가 이렇게 길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사가 한 곳에서만 주구장창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하다가 또 저기서 하다가, 돌아다니며 공사가 진행되어 공사 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다가도 갑자기 저 멀리서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공사 진척상황을 알려주기도 하는 점이다. 만약 한 곳에서만 공사가 진행되는 거였다면 정말 끊임없이 공사 소리가 들렸을 텐데 그건 너무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거주자들을 위한 아주 작은 배려인가.


그러다 오후 4시 반이 딱 되니 기적처럼, 마법같이 공사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나는 공사 시작이 아침 8시, 끝나는 건 오후 4시 반이라는 것을 그 날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공사 소리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여전히 공사 소리가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한 가지 바뀐 점이 있다면, 신기하게도 전 날 받은 스트레스의 반의 반도 안 받고 있는 나 자신이다. 너무 시끄럽다 싶으면, 요놈들 다른 곳에 가서 공사 좀 하다가 오면 딱 좋겠구만, 싶으면 정말 다른 곳에 다녀오는 것인지 소리가 좀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하고, 오후 2시쯤이 되면, 오 이제 2시간 반만 있으면 되는군, 이라는 생각에 흥까지 난다.


이번 일로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종류의 취약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불안함보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스트레스, 예를 들어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그 사람이 나에게 실망할 것이라는 두려움, 나를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정말 취약하다. 그런 나에게 있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공사 소리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며 그 끝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을 알고 나면 우린 스스로가 조절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일지언정 이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조깅을 할 때에도 어디까지 뛰어야 하는지 모르고 뛰는 것과 그 끝을 알고 뛰는 것은 여기까지 하면 끝이 난다는 생각에 죽을힘을 다해 뛸지 말지를 결정할 수도, 그 힘을 내어 볼 수도 있으며, 오늘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직장도 사직서를 내고 언제까지 다녀야 할지가 정해지면 꼴도 보기 싫던 옆 사람도, 출퇴근도 어제와 같이 힘들지는 않게 된다.


어, 오후 3시다. 이제 한 시간 반 뒤면 고요한 정적 속에서 논문을 쓸 수 있겠군.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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