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귀국 준비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학위가 끝나고 컨퍼런스 및 취직 준비로 정신없던 나날들이 지나갔다.
가능하다면 유럽에 남아 취직을 하고 취미생활도 하며 코로나로 즐기지 못 한 근 3년을 청산하고 재미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전공과 관련된 회사라면 요건이 맞지 않더라도 지원하고 또 지원하고 또 지원하였다.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들의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그리고 가스 및 전기 부족 등의 사회적 문제가 커지며 회사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뽑기보다 지금 있는 사람을 자르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특히나 나의 전공 쪽에 있는 사람들은 경기가 안 좋아졌을 때 먼저 잘려 나가기 일쑤이기에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을 뽑고 있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거기다 국적문제까지 겹쳐져 운이 좋으면 인터뷰를 볼 수 있었지만 나와 같이 일을 하고 싶어한 회사에서도 마지막에는 나의 국적이 EU가 아니어서 같이 일하기 힘들 것 같다는 대답을 듣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이, 나의 노력이 헛된 것이 된 것만 같은 헛헛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와중, 동생이 알려준 한국에 있는 곳의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지원 마감 5일 전에 알게 되었던 터라 무언갈 제대로 작성할 시간도 없었고, 항상 영어로만 CV와 motivation letter를 썼었기에 이를 한국어로 작성하는 법도 생소하였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일을 한다는 생각은 아예 해본 적도 없어 별 기대 없이 지원하였다.
그런데 웬걸, 유럽에서의 지원과정과는 터무니없이 다른, 아주 빠른 속도로 착착 진행되더니 면접 후 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합격 메일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갑작스럽게 귀국 준비를 하게 되었다.
우선 제일 급선무로 처리해야 할 일은 합격 메일을 받기 일주일 전에 신청한 비자 변경 (학생 비자에서 직장을 구하는 비자로) 및 비자 연장 신청과 관련된 일이었다. 이미 이메일로 이민청과 이야기가 척척 진행되어 약속까지 잡고 직접 만나 신청까지 다 끝낸 이 비자 신청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메일로 문의를 남겼다. 역시나.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당시 일정으로 계산을 하였을 때 우선 귀국하기까지 4주가 더 남았으니 기다려보고 그 사이에 우편이 와서 카드 수령을 할 수 있다면 받고 귀국을 하고 안 된다면 포기하는 걸로 혼자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 떠나기 일주일 전. 기적처럼 우편이 날아왔다. 쾰른 이민청은 수요일 오전에만 카드 수령을 받으러 갈 수가 있다. 사실 카드 수령보다 더 걱정되었던 건 비자 신청을 하러 갔을 당시, 시청에 돈을 지불하는 곳이 닫혀 있어 그날 비자 신청비를 내지 못하였다. 담당자는 카드 수령을 하러 왔을 때 신청비를 내면 된다고 하였지만 부득이하게 카드가 나의 귀국 날짜보다 늦게 나온다면 나는 신청비를 내지 않고 먹튀를 한 사람이 되어 버려 잘 못하면 이러한 정보가 두고두고 남아버려 나중에 독일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카드는 못 받아도 되니 신청비만 낼 수 있게 해 주세요, 라는 마음으로 며칠 전 수요일 아침에 우체통에서 발견한 이 우편물을 들고 부랴부랴 이민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담당자가 카드를 찾아보기도 전에 나는, 신청비 지난번에 못 냈는데 우선 신청비 내고 오고 싶어! 라며 선수를 쳤고, 신청비를 내고 오니 담당자는 정말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아직 카드 등록증이 도착하지 않았다며 베를린에서 우편으로 오는 중일 것이라고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신청비를 내고 난 나는 아주 가뿐한 마음으로 괜찮다고, 다음 주에 다시 오겠다고 하며 돌아왔다.
두 번째로는 압멜둥 (Abmeldung), 시청에 주소 등록을 한 것을 등록 취소하는 것이다. 취소는 귀국 일주일 전부터 할 수 있고, 쾰른의 경우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에만 사전 약속을 잡지 않고 당일 시청에 가서 기다리면 업무를 볼 수 있다는 홈페이지의 정보를 입수했다. 위의 비자 신청비를 낸 날, 이민청은 4층이고 보통의 시청 업무는 같은 건물의 0층에서 이루어지기에 나는 30분가량 기다린 후 압멜둥도 무사히 하고 돌아왔다. 압멜둥을 할 때에는 언제 떠날 것인지와 여권만 있으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세 번째로는 학교에 퇴학 신청을 하는 것이다. 독일은 특이하게 자동으로 졸업 혹은 퇴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졸업을 하게 되면 직접 퇴학 신청을 해야 하는데 나와 같은 경우는 지금 학기 중에 신청을 하는 것이어서 10월부터 시작한 학기에 11월 15일까지 신청을 한 학생은 등록비의 일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이 좋게 나는 11월 15일에 신청을 하러 갔고, 신청을 하러 간 곳에서 이러한 정보를 알려주어 바로 모든 것을 진행하게 되었다. 퇴학과 관련된 신청서는 각 학교 홈페이지에서 뽑을 수 있으며 등록비 환불은 학교에서 연결해준 AStA 라는 곳과 진행을 하였다. 이메일로 모든 업무를 주고받을 수 있어 바로바로 처리가 되었기에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단 등록비 환불을 받으려면 퇴학 신청을 할 때 신청서를 낸 그날까지 학생증 사용이 가능해져 그 다음날부터는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네 번째로는 집 계약 해지 연락이다. 물론 이 중에서 제일 먼저 진행한 일이기도 하다. 늦게 알릴 시에는 내가 나가고 난 후 다음 달 방세도 내야 할 가능성이 있기에 최대한 빠른 날짜에 연락을 취하였다. 나는 기숙사에 살고 있어 기숙사 담당자에게 바로 이메일을 보냈고 계약서 해지를 위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끝이 났다. 나가기 전에 방의 바닥뿐만 아니라 벽, 창문, 창틀, 모든 가구, 부엌, 화장실, 샤워실 등을 모두 깨끗하게 닦고 청소를 하여야 하며, 떠나기 전 곳곳의 사진을 남겨 이메일로 보내야 한다. 그리고 열쇠는 봉투에 넣어 지정된 곳에 넣은 후 이메일로 열쇠를 제대로 돌려주었다는 것을 남겨야 한다. 만약 벽에 페인트가 벗겨진 부분이 있거나, 벽에 구멍이 나 있거나, 방 청소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보증금에서 차감되거나 돈을 더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정말 꼼꼼히 청소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친구들에게서 들었고 담당자도 정말 긴 이메일로 구구절절 설명을 해주었다.
그 외에도 보험 해지, 은행 업무 등 다양한 귀국 준비 절차가 있었고, 놀랍게도 이는 한국에 도착한 후 첫 출근까지 해야 할 일들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귀국 후 약 4일 뒤에 바로 출근이어서 한국 도착 후의 필요한 일들은 마음을 비우고 그때그때 천천히 진행하려 한다.
친한 분이 그랬다.
내가 가야 좋은 자리지. 내가 가지 못 한 자리는 원래부터 내 자리가 아니었고 좋은 자리도 아니야. 그렇잖아? 나한테 온 곳이 제일 좋은 자리야.
그 말 믿고, 나에게 운명처럼 온 이 자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한다.
이로써 나의 독일 이야기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