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인생의 반을 함께 한 친구와 ZOOM으로 3시간가량 수다를 떨다 문득 이런 이야기를 입 밖에 내뱉었다.
예전에는 중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이해도 안 가고, 나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설령 돌아가게 되더라도 그때처럼 죽어라 공부는 못 할 거 같아. 근데 요즘에는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로 돌아가서 내가 그때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 주고, 내 그릇이 작아서 잘 못 했었던 언행들을 고쳐 놓고 싶어.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도, 나의 무슨 이야기에도 항상 당황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주고 들어주는 친구이기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어서 이야기를 했다.
며칠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A랑 B라는 친구 이야기를 다룬 무슨 만화를 봤는데, 둘은 고등학교 친구고 A는 대학을 바로 들어갔고 B는 재수를 하는 상황이었어. 어느 날 A가 이쁘게 꾸미고 밖에서 잘 놀다가 갑자기 집에 와서는 화장도 지우고 렌즈도 빼고 옷도 후드티로 갈아입고 잠시 밖에 나갔다 온다고 하자, A의 엄마랑 친언니가 이쁘게 잘 꾸며 놓고서는 갑자기 집 들어와서 후줄근하게 다시 나간다고 어디 가냐고 물었지. A는 그냥 집 앞에 잠시 다녀온다고 하고 헐레벌떡 나갔는데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B를 보고 달려가면서 엄청 반가워했어. B는 재수하면서 마음을 다잡겠다고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연락도 끊고 지냈는데 공부도 힘들고 그러다 A가 생각이 나서 A한테 연락을 한 모양이더라고. 그 연락을 받고 A는 헐레벌떡 달려간 거고. 그러다 B가 A한테 너는 대학 들어가면 엄청 꾸미고 다닐 거라고 고등학교 때 그렇게 다짐하더니 변한 게 없다고 하자 A가 오늘은 약속도 없고 해서 집에만 있었다고, 막상 대학 가보니 재미없더라며 우리 같이 놀던 때가 더 좋았다고 내년에 네가 대학 들어오면 같이 꼭 놀자고 하는데 내 마음이 뭉클하더라.
아무도 기억 못 할 수도 있지만, 그 만화를 보고 갑자기 우리 수능 수험표 받는 날이 생각나더라. 나는 수능 보기 전에 대학이 결정 나서 분위기 흐트러진다고 수업 나오지 말라고 해서 집에 있다가 수험표 받으러 그 날만 학교에 갔었는데, 그때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오랜만에 친구들 본다고 들떠서 학교에 이쁘게 하고 가야지, 하고 치마를 입고 갔었어. 갔는데 애들은 다들 학교 체육복에 쾽한 눈으로 있으니까, 순간 아차 싶었거든. 거기다 몇몇 친구들은 부럽다, 이뻐졌다, 좋겠다, 그러다 한숨 쉬며 갔었고. 그 당시 내가 화장품도 아무것도 없고 화장할 줄을 몰랐어서 다행이었지, 화장이라도 하고 갔었으면 얼마나 더 낯뜨거웠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야. 그때에 나는 왜 저 만화 속 A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 했을까. 왜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를 못 했을까. 한 번만 더 생각했었으면 좀 더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었을 텐데, 요즘 그런 것들이 너무 아쉬워.
친구는 내 말을 들으며 한참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맞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지혜들을 가지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뭔가 좀 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알고 있는 것들을 다 가지고 가고 싶어.
친구 말이 맞다. 지금 내가 깨달아버린, 느껴버린 이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가지고 그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겨 먹은 사람이었기에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 금식 그때 내가 왜 이렇게 말을 해버렸을까, 왜 이런 행동을 취했을까, 부끄럽고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잠식한다. 그러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이 언행들도 10년이 지나고 나면 지금의 내가 10년 전의 나를 바라보듯 또 부끄럽고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일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시금 나의 언행을 되돌아보게 된다. 10년 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 조금은 주변을 바라보고 돌보게 되었을까. 후회와 미련이 덕지덕지 붙어있을까. 그만하면 최선을 다했다고 무엇을 어떻게 더 잘했겠냐고 생각할까.
확실한 건 있다. 10년 뒤가 되면 지금의 내가 생각하지 못 한 부분들에, 그러한 가치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새로운 시각으로 나의 언행을 다시금 바라볼 것이라는 것.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다만, 매일매일 조금씩 나도 모르게 변화되어 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주 천천히 일지언정 조금씩이라도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방향이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그곳으로 향하는 포근한 하루이길. 나에게도, 너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