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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맹글 Dec 03. 2020

살아가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여느 때와 같이 아빠와 통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충격적이 소식이 있어.


아빠는 말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하셨지만 이미 그 말을 들어버린 나는 뭘 또 숨기려고 그러시나 싶은 마음에 말을 해보라고 하였다.


조금 많이 충격적인 소식이야.


라고 뜸을 들이시길래, 잉꼬가 낳은 새끼들이 죽었어? 했더니 그것보다 더 충격적이라고 하여, 그럼 댕댕이 뱃속에 아기들이 안 좋대? 하니 그것보다도 더 충격적이라고 하여, 할머니가 어디 아프시대? 했더니 그것보다도 더 충격적이라고 하셨다. 올 것이 왔구나, 할머니가 아주 많이 위중하시구나, 싶은 마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금 물었다.


그럼 뭐야?


엄마는 조금 뜸을 들이시다가 이내 입을 열고 말을 해주셨는데, 그 찰나의 순간 내 머릿속에서 나온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의 단 1%에도 없던, 사촌 동생의 이름이 나왔다.


OO이가 일주일 전에 회식을 하고 집에 가려다 교통사고를 당했대. 뇌사 판정을 받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해서 작은 아빠가 오늘 장기기증에 사인을 했대.


이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OO이 이름이 왜 엄마 입에서 나오고 뇌사 판정은 뭐고 장기기증은 뭐지. 어릴 때는 자주 보았지만 커서는 거의 보지 못 하여 마지막으로 본 기억도 거의 6-7년 전이지만 그래도 SNS로, 어른들을 통하여 소식은 듣고 지냈던 OO이.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앞으로 이 세상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죽음 소식을 들으면 더 쉽게 우울해지고 헤쳐 나오기 힘들어하고 그래서 같이 따라 죽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들어서일까, 아빠는 나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걸 쉬쉬하려고 한 것 같았다. 거기다 아빠를 붙잡고 목이 찢어져라 우시며, 형, 나 이제 어떻게 살아가요, 라고 하시는 작은 아빠를 보며 아빠의 마음도 찢어져 차마 당신 입으로 알리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작은 아빠도 걱정이지만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OO이의 친언니였다. 평생을 둘이 의지하며 대학 다닐 때에도 커서 일하면서도, 지금까지도 평생을 같이 자취하며 둘이 살아갔는데, 동생이자 친구이자 룸메이트였던 OO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 삶을 잘 버텨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집을 가도 OO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다 있을 텐데, 그 모습들이 다 눈에 선할 텐데, 그 빈자리가 너무나도 클 텐데, 괜찮을까 겁이 난다.


모두들 안다.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언젠가 죽기 마련이라고. 산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고. 하지만 이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아주 잠시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 인사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갑작스럽게 모든 일이 일어나버리는 건 너무 잔인하기 그지없다.  이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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