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평생 하고 싶어 하던 일 중 한 가지가 또 완료되었습니다
오늘은 우리 아버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할아버지 산소를 이장하는 날이다. 원래는 올해 4월에 예정되어 있던 산소 이장이 COVID-19로 인하여 연장되어 오늘에서야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정말 힘이 들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묘비 하나 제대로 못 해드린, 거기다 산소 자리도 급하게 구하게 되어 습한 곳으로 묘지로 좋지 않다는 말까지 들은 할아버지 산소가 예전부터 마음이 쓰여 언젠가 꼭 편한 자리로 이장을 해드리리라 다짐하셨다고 한다. 그 다짐하던 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아버지는 한 주 전부터 새로운 산소 자리까지 길을 미리 터놓는 것에 신경을 쓰셨고, 어머니는 이장하기 전 날 김장을 하여 이장 당일 도움을 주신 분들과 친척분들에게 보쌈과 김장 김치를 대접한다고 김장 준비를 하셨다. 두 분 모두 이장하기 일주일 전부터 이장 당일까지 얼마나 마음이 두근거리고 들뜨셨을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장 당일,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와 함께 새벽 6시가 되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서 모시고 새로운 산소 자리로 돌아오셨다. 정말 계셨던 곳이 습하여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미라처럼 모습이 그대로 계셨다고 한다. 거기다 수의까지 젖어있었으니,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죄송스러운 마음과 함께 이제라도 몇 년에 걸쳐 찾은 좋은 곳으로 모시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으리라.
사실 나는 풍수지리를 따져가며 명당 혹은 흉지 등을 이야기하거나 생년월일시로 한 사람의 인생을 논하는 사주와 같은 것에 큰 믿음은 없다. 그래서 더욱더 부모님께서 그런 것에 신경 쓰시는 게 답답하기만 하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평생 하고 싶어 하던 일 중 하나였던, 산속에 전원주택을 지어서 사는 것을 이루실 때 풍수지리를 전공하신 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 후 전원주택에서 사신지 약 3년 정도가 지난 지금, 정말 좋은 기운을 느끼며, 그러한 곳에서 자고 일어나는 것이 심신 모두 얼마나 편안해지고 좋은지를 몸소 느끼고 나니, 더욱 할아버지께서 편안하고 좋은 곳에서 쉬셨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풍수지리건 사주건, 아무렴 어떨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 하나로 이장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포근하고 편안하실 자리에 묘비와 함께 모신 후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하얗게 빛이 났다. 마음의 짐을 덜어서 일까, 이제라도 편안하게 쉬실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일까. 겨울 산속의 바람을 새벽부터 맞은 얼굴에서 빛이 날 수 있는 것은 아마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부모 자식 간의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아닐까.
아버지의 하시고 싶으셨던 일 두 가지가 끝이 났다. 그다음 또 하시고 싶으신 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나 보다. 그렇지만 그게 무엇이든 나는 항상 우리 아버지를 응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번 생에서도, 죽어서도 아빠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