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운데서 만난 작품
몇 시간 뒤면, 12월 16일이 되면 독일 전국은 부분 봉쇄에서 완전 봉쇄로 바뀐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만 학교부터 시작해 여러 곳에서 봉쇄 관련 메일이 왔었다. 1년이 넘도록 이 바이러스와 전 세계가 싸우면서도 왜 감염 증가를 좀 더 효율적으로 막지 못하고 항상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일까,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이 허해진다. 그래도 그저 가만히 이러한 기분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좀 더 몸도 마음도 튼튼히 만들어서 지내면 이 시기를 더 잘 버티고, 더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지난주 일요일, 완전 봉쇄 전 마지막 조깅을 하였다.
이 날은 집 앞 트램을 타면 5 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는 Beethovenpark에서 조깅을 하였는데,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는, 기온도 포근한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꽤 많아서 뛰면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공원 중심 구역은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유모차를 몰고 아이들과 다니는 사람들로 나를 포함하여 조깅하는 사람들이 뛰다가도 방향을 틀어야 하거나 잠시 멈춰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조금 인적이 드문 길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공원 근처에 있는 주말 농장을 하는 구역이었는데 이 곳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현저히 적었다. 그러다 길 한복판에서 발견한 분필로 그려진 작품에 뛰던 나의 발걸음도 바로 멈추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형형색색의 분필로 길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땅따먹기를 그리고 놀던 때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본 분필로 된 낙서들에 이름 모를 아이들의 작품이지만 멈춰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COVID-19로 안타깝게 올해는 크리스마스 느낌을 거의 느낄 수 없었는데 이 낙서들만으로도 크리스마스를 만끽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다 '우리 집'이라는 글씨와 함께 그려진 집 그림도 귀여웠다. 글씨를 쓰기 시작한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거의 대부분이 그림을 그리고 나면 그 근처에 이 그림이 무엇인지 꼭 글씨로 적어서 다시 알리려는 습성이 있나 보다. 이는 서양이든 동양이든 상관없는 아이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낙서들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고, 다 그린 후 부모님에게 가서 자신들의 작품을 자랑하고 같이 보며 깔깔거렸을 장면들이 상상이 되었다.
한국에 있는 나의 조카들은 모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여 항상 조카들이 무언가를 그려달라고 할 때마다 진땀을 뺐었다. '이모, 기린 그려주세요', '고모, 돌고래 그려주세요', '그럼 원숭이는?', '공주님은?' 등 다양한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하지만 그러한 순간들도 지금은 조카들에게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그런지 더욱 그립다. 다음 한국에 갔을 때에는 분필을 한가득 사서 조카들과 공원에 나가 원 없이 그림을 그려야겠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조금씩 그림 연습을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