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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맹글 Feb 24. 2021

도대체 어디까지 자랄 셈이야?

싹 난 감자의 마지막 이야기

지난번에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선물 겸 싹 난 감자를 심은 이야기와 그 감자가 아주 쑥쑥 잘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그 감자는 사진과 같이 정말 나무처럼 자라 버렸고, 이젠 그 줄기에 맞설 수 있는 긴 막대기마저 구하지 못해 언제 꺾일까 걱정이 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모습이 보일만큼 커져버린 감자, 거기다 내가 그리 바라던 꽃대가 드디어 하나 생긴 감자의 마지막 이야기를 쓰려한다.

자라도 자라도 계속 자라는 감자

식물을 키워 본 적이 없는 나는 감자가 계속 위로 자라는 것이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무럭무럭 뭐든 잘 자라면 좋은 것 아닌가 라며 단순히 생각한 결과였다. 하지만 나의 감자를 본 친구는 햇빛이 부족해 햇빛을 찾으려고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잎도 적고 옆으로 풍성히 자라지 못하고 꽃대도 하나밖에 없는 건데 그 꽃대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그냥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 감자꽃을 보는 게 나의 목표였는데, 하나 밖에 없는 꽃대마저 꽃을 볼 가능성이 없다니, 지독하게 객관적인 친구의 말에 한 편으로는 수긍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말이 틀리길 바랬다.

이제는 책상에 앉아도 보이는 감자

아니나 다를까, 꽃대는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자라지 않았고, 심겨 있는 감자는 썩어가는지 초파리 같이 생긴 벌레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제일 큰 줄기, 유일하게 꽃대를 만든 나에게는 특별한 그 줄기가 힘 없이 꺾여버리고 말았고 나는 친구의 말을 곱씹었다. 햇빛이 모자라서 계속 키가 자랐던 거예요, 영양이 부족한 거예요, 꽃대도 그냥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커요, 제 토마토가 그랬거든요.

나의 촉망을 받던, 하지만 이제 없어져버린 노란 꽃대

해가 거의 없는 독일의 겨울에 무언갈 키우기 시작한다는 게 무리수였던 것일까. 그래도 올해 겨울은 예년에 비해 해가 뜬 날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마저도 감자에겐 턱 없이 부족했던 것이었을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감자에게 작별을 고했다. 미안해, 감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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