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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맹글 Nov 26. 2020

요리는 나의 원천

부분 봉쇄 속 혼자 사는 자취생의 살기 위한 몸부림

나는 일찍부터 부모님 집을 떠났다. 고등학교 3년은 기숙사, 그 뒤 대학생활부터 쭉 지금까지 계속 혼자 살고 있으니 자취생활 12년이 훌쩍 넘은 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요리를 하지, 이렇게 매일같이 집에서 요리를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부분 봉쇄 속, 레스토랑에서 식사는 금지되었고, 배달만 가능한데 한국의 배달의 민족과 같은 어플인 Lieferando가 있지만 보통 한 번 시켜 먹으면 한 끼에 15유로는 그냥 훌쩍 넘어버린다. 사실 부분 봉쇄가 되기 전부터 독일에서 혼자 가게에 가서 매번 밥을 먹기에 심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부담을 느꼈던 나는 조금씩 나의 레시피를 넓혀 가고 있다. 자취생활이 10년이 넘었어도 자주 해 먹던 음식은 떡볶이, 볶음밥, 삼계탕, 카레, 어묵탕, 된장찌개, 미역국, 샤부샤부, 밀풰유 나베, 샌드위치, 호떡 정도였으니 레시피를 넓혀 갈 필요성은 충분하고도 넘쳤다.


사진첩에 있는 나의 요리들


우선 먹고 싶은 음식들을 그때그때 만인의 요리 선생님이신 백종원 아저씨 레시피를 찾아서 해보고 내 입맛에 맞게 조금씩 양을 조절해서 아이패드에 저장 중이다. 새롭게 시도한 음식들은 닭볶음탕, 마약계란장,  어묵조림과 감자조림, 떡만둣국, 김밥, 파스타, 그리고 감자고추장찌개 등이다. 감자가 주식인 독일에서 감자가 들어간 한식을 시도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이치임에 틀림없다. 감자 한 봉지에 보통 2kg 정도 하는데 2유로도 거진 안 하니 감자를 많이 사 먹을 수밖에 없다. 흠, 다음에 슈퍼를 가면 감자를 갈 강판을 찾아봐야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갑자기 감자전이 확 당긴다. 감자전은 밀가루 없이 감자만으로도 전을 만들 수 있다고 어디서 들었는데, 한 번 시도해 봐야지.


자취생들의 기본 요리인 파스타를 나는 아주 늦은 이 시점에 시도해보았다. 쉬운 요리 중에 하나라는 파스타지만 나에게 있어서 면을 끓일 냄비와 소스를 버무릴 프라이팬,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3월의 봉쇄 직전에도, 이번 부분 봉쇄 직전에도 밀가루와 함께 파스타 면과 파스타 소스가 거진 슈퍼에서 동나는 사태를 보고 덩달아 나도 한 두 개씩 챙겨보았기에 쌀만 먹다 질렸을 무렵 파스타를 해 먹어 보았다. 맛은 있었지만, 뭔가 나는 내가 한 파스타보다 밖에서 사 먹는 파스타가 더 맛있는 것 같다. 아 아니다, 조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새언니가 해주던 파스타가 나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파스타인 것 같다. 그런 맛은 아직 내 솜씨로는 이른가 보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새언니한테 물어봐야겠다, 파스타 비법을.

토마토 파스타와 오일 파스타, 해물을 좋아하기에 항상 소스가 뭐든 해물파스타가 되어 버린다


이번 새롭게 시도한 음식들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메뉴는 마약계란장이다. 계란을 반숙으로 4-5개 삶는 동안, 진간장, 설탕, 물, 그리고 잘게 자른 양파와 대파를 비율에 맞게 섞어 놓고 다 익은 계란을 까서 양념장에 넣고 2시간 동안 냉장고에 넣어두면 끝! 만들어 놓으면 2-3일 안에 다 먹어버려서 언제까지 놔둬도 되는지는 미지수지만, 뜨근한 밥에 간장 맛이 베인 계란과 간장을 몇 숟푼 넣고 참기름을 살짝 두르면 그냥 밥이 막 넘어간다. 너무 마시듯이 빨리 먹어버려 조금 걱정이 되지만, 짧은 시간에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고루 섭취할 수 있어 뿌듯하다. 거기다 계란을 다 먹고 남은 간장이 꽤 되는데, 이 간장, 버리기가 너무 아깝다. 그래서 열심히 또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머리를 요리조리 굴려보니 냉동실에 있는 어묵과 함께 조려서 반찬을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조금, 먹기 편한 크기의 어묵을 넣고 요 간장을 몇 숟푼 넣고 휘적휘적거리기만 했는데 자연스럽게 조려져 탄생된 어묵조림은 마지막에 뿌린 참기름을 한껏 머금고 빛깔조차 멋져 보였다. 거기다 완전 이것 또한 밥도둑이었다. 하지만 어묵조림을 하고도 남은 간장은 또 어디에 쓴담, 하던 찰나, 아빠가 감자조림을 해보라고 하셨다. 오호라, 감자! 싹이 나던 감자, 처치 곤란이던 감자를 또 이렇게 사용할 수 있구나, 싶은 마음에 기쁘게 또 같은 방법으로 휘적휘적 저어서 만든 감자는 어묵조림보다는 조금 더 간장을 넣었어야 했나 보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한 가지 음식을 하면 두 가지 음식이 저절로 따라오는 마법과 같은 마약계란장은 입맛이 없을 때 꼭 해 먹게 되는 메뉴가 되었다.

나의 첫 어묵조림, 나머지 마약계란장과 감자조림은 먹느라 사진을 못 찍었나보다


매번 한국에 가면 실온 보관이 가능한 종가집 반찬류들과 비비고 볶음 김치를 한 아름 들고 와서 야금야금 먹으며 밥과 국만 했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내가 반찬을 하고 나니,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어엿한 프로 자취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심 뿌듯하고 내가 자랑스러워졌다.


불안해서 집에만 있는 요즘, 밥이라도 요리조리 새로운 시도를 해서 기분 전환하는 게 내 삶의 원천이 되어가고 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해서 면역력을 길러두면 있던 병도 사라지리라, 믿으며 자기 전에 내일은 뭐 먹을까, 뭘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자는 이 습관이 귀찮아지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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