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움
(응답하라 1988)
선우엄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혼자서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다행히 남편의 연금이 있긴 하지만 살림살이가 그리 넉넉하지는 않은 듯하고, 시어머니라는 사람은 아들 없는 세상에서 며느리만 살고 있는 것이 얄미운지, 가끔 한 번씩 찾아와 가슴에 대못을 박고 간다.
어느 날 친정엄마가 집에 온다는 전화를 받은 선우엄마는, 연탄을 빌려다 창고에 가득 쌓아놓고, 쌀도 빌려다 채워놓고, 커다란 리본이 달린 우아한 블라우스까지 꺼내 입고 엄마를 맞이한다.
집에 온 엄마는 딸이 마음 쓸 것을 헤아려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주스를 벌컥벌컥 마시는 짧은 시간 동안 부엌과 창고, 여기저기 열심히 곁눈질로 살림살이를 살피고는, 가야 될 곳이 있다며 급히 자리를 뜨신다.
부엌에는 엄마가 몰래 두고 간 봉투 속에 돈과 짧은 편지가 담겨있다...."사랑한다 우리 딸"
저녁에 엄마가 잘 도착하셨는지 확인전화를 걸던 선우엄마는,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울음이 터지고 만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한 척 살아온 날들 속에 묻어둔 설움이 "우리 딸" 한마디에 무너져 버렸다.
엄마도 목놓아 울면서 안기고 싶은 엄마가 있다.
그리움
(전원일기)
시집가면 몇 년이 지나도 친정에 한번 다녀오기 어렵던 그 시절, 드라마 극 중에서 회장님 댁 안방에 전화기를 처음 설치하던 날이다.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구경을 와 시끌벅적하고, 회장님 댁 며느리들은 차례로 친정집에 전화를 걸어 오래간만에 듣는 엄마 목소리에 기쁘기만 하다.
밤이 돼서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고 회장님 부부가 이불을 펴고 누웠는데, 회장님 사모님(김혜자 배우님)이 갑자기 일어나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우리 어머니 좀 바꿔주세요.
우리 어머니요? 옥천 향남리 사시던 이기옥씨요,
가르마 반듯한 머리가 얌전하시고, 맵시가 나시고,
왼손 손톱 하나가 짜개지신 우리 어머니 좀 바꿔주세요.
못 찾으면 소식이라도 좀 전해주세요.
막내딸 은심이가 아들 낳고 딸 낳고 잘 산다고, 아무 걱정 마시라고,
그 소리 좀 꼭 좀 전해주세요.
은심이가 꼭 한 번만 보고 싶다고...
회장님이 수화기를 뺏어들며 돌아가신 어머니한테 무슨 전화냐며 타박을 하자, 회장님 사모님이 자리에 누우며 혼잣말로 가만히 속삭인다.
깜깜한 데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추운 데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엄마 계신 데가.....
추운 데가 아니었으면.....
사랑하는 크기만큼 아프고 그리운 것이라면,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픔이 어느 정도나 깊은 것일지 가늠할 수가 없다.
회상
(지금의 내 나이었던 울 엄마)
다른 도시에 살면서 혼자 자취를 하던 시절이었다.
아침부터 감기기운이 좀 있는가 싶더니, 저녁 무렵이 되자 몸살과 오한이 너무 심해져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만큼 힘든 상태가 되었다.
움직이는 것도 어려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만 있다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해 일어나 마지막 고속버스를 타러 갔다.
고속도로를 2시간 넘게 달리고 택시를 잡아타고서 겨우겨우 집에 도착하니, TV를 보다 잠드신 엄마가 거실에 누워계셨다.
가방만 살짝 내려놓고 엄마 옆에 조용히 눕자마자, 코 고는 소리와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순간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콧등으로 흘러내리던 따뜻한 눈물의 그 느낌은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전화를 걸 수 있는 엄마,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엄마, 그리움만 남아있는 엄마
살다 보면 엄마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