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에게 배우는 철학(2)-반려심경

by 히말라야노을
오만과 자각의 인생

세상의 고통과 차단되어 궁궐에서만 자라온 싯다르타가 성문밖에서 처음 깨닫게 되었다는 인생의 고통, 노/병/사.

노/병/사가 고(고난)로서 자각되었다는 것은 인간 모두가 평소에 젊음에 대한 오만과 건강에 대한 오만과 살아있음에 대한 오만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죠.
젊음에 대한 오만이 깨질 때 인간의 늙어감에 대한 비통이 생겨나고, 건강에 대한 오만이 깨질 때 병들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고, 삶에 대한 오만이 깨질 때 나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뇌하고...
('스무 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저)

늙고, 병들고, 죽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오만과, 결국에 맞이하는 뒤늦은 자각으로 인생의 고통은 되풀이된다.


뒤늦게 자각하게 되는 것은 노/병/사 만이 아니다.

이별이 올 것임을 직감하면서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채로 자각의 순간을 불현듯 마주하게 된다.


서툰 이별의 기록

12월 24일 새벽, 비몽사몽 꿈을 꾸듯 이별의 순간이 왔다.

한 달 정도 투병하는 동안, 잘 먹지도 걷지도 못하는 와중에도 화장실에 꼭 다녀오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힘을 낼 수 없었는지 침대 한쪽 끝으로 걸어가다 주저앉으며 소변을 보았다.

시계를 보니 1시가 조금 넘었다.

대충 정리 후에 다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뒷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이불을 잘 덮어주며 고개를 편하게 내려주려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가슴 여기저기 손을 대 보았지만 미동도 없고 심장소리도 찾을 수가 없다.

두려움에 불을 켤 수 없어 한동안 앉아있었다.

불을 켜니 새벽 4시가 다되어 간다.

마지막 순간에 많이 힘들었는지 고개를 들고 눈을 반쯤 뜨고 있는 모습에 눈물이 쏟아졌다.


미리미리 이별을 잘 준비했더라면, 평소와 달랐던 1시쯤에라도 이별이 코앞에 와있음을 자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마지막 순간이 덜 무섭도록 꼭 안아주며 보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너를 마음껏 안아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라도 들려주었을 텐데.


말라가던 얼굴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해지고, 휘청이는 다리로 일어서는 것조차도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곧 다가올지 모르는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 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이 밝고 장례식장으로 가기 위해 이동가방으로 옮기면서, 이제는 정말 안아볼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는 실감이 밀려와 한참을 안고 다시 눈물을 쏟았다.


처음 집에 데려오던 날엔 쓰다듬는 것도 못할 정도로 동물을 어색해하던 초보 반려인이었다 보니, 함께 사는 동안 모든게 서툴기만 했었는데 마지막 가는 길도 서툰 배웅으로 그렇게 지나갔다.


이별의 의미

아주 오래전에 상영됐던 영화 중에, 시골에서 혼자 살아가던 할머니와 어느 날 갑자기 맡겨진 어린 손자와의 한 달 정도 짧은 동거에 대한 '집으로'라는 영화가 있었다.

손자를 다시 도시로 떠나보내고, 구불구불 산비탈 길을 걸어올라 집으로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눈물을 닦느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 후 오랫동안,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 느끼게 해 준 행복의 무게와 남아있는 날들 동안 느끼게 될 쓸쓸함의 무게에 대해 가끔씩 생각이 나곤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행복한 기억의 무게는 남겨질 쓸쓸함의 무게에 비할바가 아니다.

사는 동안 문득문득 쓸쓸함이 찾아오겠지만,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두고두고 삶에 따뜻한 온기가 되어 줄 것이다.


투병을 시작하던 날, 수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강아지는 일생을 두고 가장 행복했던 기억 하나만을 가지고 간다는데, 남은 시간 동안 최고로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줄 수 있겠어요?"

이 말을 못 들었더라면 야위어가는 모습을 보며 한 달 내내 울고만 있었을 텐데, 최고의 행복을 만들어주지는 못했지만, 틈틈히 앞가방에 품고 나가 눈을 맞추며 따뜻한 햇볕과 꽃을 보여주며 걷고 웃어주었다.


인생에 행복한 기억을 또 하나 채우고, 아픔의 무게는 세월을 따라 점점 작아져갈 것이다.

따뜻한 햇볕과, 꽃과, 함께했던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 날들을 니 옆에 있어준 두 언니들과의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무지개다리를 씩씩하게 웃으며 건너는 너를 상상해 본다.

그러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뿌꾸에게 보내는 이곳에서의 마지막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