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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P 인간의 7가지 욕구와 불만족, 어린시절편

by 후루츠캔디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 2학년이었던 동생의 백혈병 발병은 동생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에 아직까지 크고작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환우의 가족, 특히 환우가 아닌 나머지 형제 자매가 놓여지는 갑작스런 정서적 유기상태, 그리고 그것이 환우가 아픈기간뿐만 아니라, 오랜동안 또는 평생, 그 가족을 떠나기 전까지 괴롭도록 지속될 수 있다는 것. 아픈아이보다는 어쨋든 한 살이라도 많은 언니이며, 아픈 아이보다는 눈에 띄지 않고, 몸과 마음이 바쁠 수밖에 없는 환우부모의 염려를 돕기위해 내가 가진 최선을 다해 조금이라도 부모의 정서상태를 호전시키려는 무리한 노력을 평생다했을때, 그 일방적인 관계안에서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하는지...



한번은 학교에서 모금행사를 한 적이 있다. 백혈병걸린 내 동생을 위한 모금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이제 내 반, 아니 이 학교 전체가 내 동생이 백혈병걸린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백혈병 걸린 내 동생에 의해 놀라고 무서운 마음을 아직 가라앉히기도 전인데, 아직까지는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나 스스로도 처리하지 못한 감정이 마음에 턱 하니 앉아 있는데, 이미 전교생이 나를 백혈병걸린 아이의 언니로서 인식하게 생겼다. 옴짝달싹할곳없게 생겼다. 그동안 만들어놓았던 나의 친구들은 내게 어떤 얼굴을 보낼까? 나는 저들과 동등한 사람이고 불쌍한 사람이기 싫다는 생각에 창피하다는 생각이 먼저들었다. 담임선생님 그리고 교장선생님 조회의 모금선언에 책상을 보며 고개를 푹 숙인 나였다.


많이 예민한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지키지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늘 아빠와 떨어져서 아이를 돌보는 사람으로서 기능만을 요하기에 번아웃되었고, 그 감정을 술한잔으로 달래는 사람이 되었다. 오직 엄마랑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아빠가 동생 병실을 지키며 기다릴 수 있는 주말뿐인데, 그 시간만큼도 엄마는 나에게 감정적으로 이용불가능한 사람이었다. 평일에는 아빠와만 함께 집에 있어야하지만 아빠는 투잡, 쓰리잡으로 동생 병원비버느라, 주말에는 엄마와만 함께 집에 있는데 엄마는 자신의 감정에 술에 취해있느라,... 당시에는 그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지금보면 아동학대이며 정서적 유기상태임에 분명하다. 1990년대, 방임도 학대라는 기준이 없었던 시절, 지금같으면 아니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라면 사회복지사 등의 사람이 기능하며 나를 좀 돌봐주었을텐데, 초등학교다니는 아이를 위한 데이케어도 심리상담도 그 어떤 것도 없던 시대의 나. 더군다나 아빠와 엄마의 원가족모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의 관계를 끊고 지내다시피한 사람들이었기에 명절에만 겨우 보던 친척얼굴도 동생이 아프고 나니 볼 일이 없어졌었다. 그 중 더러는 한 길, 한 골목에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비난받아 마땅한 건 아니며, 그들도 그들의 삶이 있으시지라며...지금보다 오히려 더욱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초등4학년의 나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되어보니, 아무리 그들의 이 있고 가정이 있지만, 늘 혼자지내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조카에게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기로 아픈 나를 집안에 혼자두고, 술마시고 새벽에 들어오는 엄마에게 불만이 있을 때에도 이모들은 어린 내 편을 들어주기보다는 그저 자신들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엄마편을 들어주었었다. 친척은 가족이 될 수 없고, 굳이 잘 할 필요없는 존재라는 것을 어린시절에 배운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세상이 차갑다는걸 안건, 그때다 그때... 내 가정의 튼튼한 방어막이 흔들린다는 것을 느꼈고, 내가 유기되어 질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 무가치한 존재가 되는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을 그때 배운 것 같다.


보호받아 마땅한 어린아이가 되었을 때 당한 정서적 위협은, 다양성이라든지 모험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대한 갈망을 감히 갖지 못한다. 외로움을 먼저 알아버렸고, 그것에 대한 부작용으로 타인과의 정서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열중하는 사람이 된다. 또한, 마 아빠가 서로 상처주는 모습, 그리고 그것의 원인이 그들의 자식인 아이가 되었을 때, 모든 친척들의 외면, 학교에서도 왠지 모르게 모금행사 이후에 내가 다른 학생들과 다른 아이가 되었다는 느낌은, "이 세상에 의지하고 연결지어질 사람을 찾자" 라는 생각보다는 "나 자신은 내가 지켜야한다" 라는 자기자신에 대한 무모하고 과도한 책임의식으로 무장하게 스스로를 만들어 과도하게 독립적인 사람이 된다. 어른이 된 내가 이런 생각을 시작한 4학년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녀의 비장한 생각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 생각을 갖추고 난 후로부터 쭉, 어른을 의지하거나 나보다 나을 수 있는 지혜로운 존재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히려 내가 내 부모의 감정선을 살피고, 그들의 애정결핍을 상담해주고, 집안일을 열심히 했다. 동생 간호를 끝내고 집에 오는 엄마가 밝게 웃는 모습을 보기위해 엄마가 오시기전 집안을 반짝반짝하게 만들어놓았고, 숙제는 물론 예습복습을 완벽하게 해 학교선생님에게 예쁨을 받았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믿음직한 친구,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는 '내아이가 꼭 친해졌으면 좋겠는 동네 아이 순위 3'안에는 꼭 들어갔었으니까. 그렇게 나 자신을 누구에게나 우호적인 아이로 만들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난 어린시절부터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였다고 우리엄마는 늘 나에게 말했다. 너는 너 동생에 비해 상당히 섬세하고 키우기 힘든 아이였다고, 유치원다닐때부터 얼마나 다리두께를 신경썼는지 스타킹을 얇은 것만 신어야했고, 구두도 반짝반짝 빛나야 했으며, 그런 애들이 또 엄청 정확하고 똑똑하기는 엄청 똑똑하기 때문에 엄마는 너 털끝만큼도 걱정 안한다고... 너 걱정 안한다고..? 엄마는 어떻게든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위의 이야기에서 옅보이듯, 어린시절의 나는 People-pleaser, super-independent , high-achiever 이렇게 세 개의 가면에 상당히 고착된 채로 버텼던 것 같다. 엄마아빠의 사랑이 필요한 사춘기 이전에는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는 people-pleaser로서 기능했다면, 사춘기 이후에는 공부에 몰두하며 high-achiever의 가면을 썼었고, 이 두 배경으로는 super-independent 라는 생각을 갖고 행동했다.

주로 가면은 super-independent이자, 서브로 people-pleaser 그리고 성취자 가면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 가면에 대한 이야기는 곧 한데 모아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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