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사는 삶을 내려놓은 후

담대하게, 맘고생 어드벤티지

by 후루츠캔디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빼고 '캐나다, 하트시그널'이라는 제목의 매거진에 37편에 걸친 글을 쓰며 나와 주변을 성찰하는 시간을 겪었다.

중간중간에 무섭고 아프고 힘든때도 있었지만 담대하게 나의 감정과 느낌, 그때의 생각에 다시 가 머물며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스스로를 마음의 호랑이굴안에 처 넣고 제가 알아서 빠져나오길 기다린 그 후 1 달,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느낀다.


그동안 예민하고 섬세한 나라고 생각했던 감각이 편안해진다.

사람을 만나면 또 나 자신에 대해 일거수일투족 분석하고 판단하고 어림잡아 상대를 인식하던 습관이 모두 왜곡임을, 모두 내 안의 미처 처리되지 않은 감정의 부산물때문에 일어나는 요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굴 만나도 자신감있고, 상대방 그대로의 고민이나 느낌, 문제에 내 자신을 섞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람에게 공감하다 비실비실해졌던 내 몸에 사람을 만나고 난 후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남음을 느낀다.


상대를 수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바쁜 이민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 방과후에는 운동 등 아이들 예체능교육, 정기적 운동이나 수면 리츄얼, 학교공부 등에 신경을 쓰던 나였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내가 영혼없이 열심히 살수록, 내가 허전한 마음을 바쁨으로 채우며 억지로 살 수록 애들의 얼굴표정도 엄마가 있는데 엄마가 없는 것 같은 날 들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한다. 엄마가 있는데 엄마가 없는, 지금 생각해보면 나 또한 이거 아픈 동생돌보느라 진이 다 빠져버린 우리 엄마 표정보고 무의식적으로 배운 것 같기도하다. 나도 모르게 시간관계상 아이들의 역할과 책임을 지시하고, 채근하던 나 자신이 보이고, 이제는 단순 밖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보다는 진짜로 마음 깊은 곳까지 다정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엄마가 되어감을 느낀다. 애들은 부모를 빼다 박는다. 정확히 말하면, 절대 닮지 말아야하는 부분만을 골라 닮는 모습이다. 내 자식에 대해 밖에 나가 험담을 하면, 그건 바로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내 자신의 모습일 뿐이라는 걸 나빼고 남들은 정확하게 간파한다고. 나처럼 텅빈 얼굴을 한 큰 아들을 보며, 마음의 따뜻함 한 줌씩 매일매일 꼭꼭 채워넣어줄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마음이 예전보다 좀더 대범해진 상태라,예전에는 내 마음의 상처 혹시 아이에게 들킬까 최대한 꽁꽁싸매고 공부로 숨어들어가고 집안일로 숨어들어갔는데, 이제는 아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내 마음 나누기를 시도할 수 있게됨에 감사한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상처를 겪지만, 그것을 직격 마주하고 극복하는 사람은 소수라 생각한다. 이민자로서 맨땅에서 사회적성취뿐만 아니라 이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내 마음극복을 해 낸 사람이라고, 아이들에게 물려줄 자산이 생겨버린거 같아 이제는 밥을 먹으면 마음의 배도 부르다.


온갖 세상만사 걱정이 없어진다.

이미 나 자신을 극복한 사람이라 세상만사 그냥 부딛혀 해결하면 된다는 평소 '목표'에 확신이 생긴다.

영어못하면 어떻하나 시험못보면 어떻하나 저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면 어떻하나...그런 상황을 마주하지 않도록 최대한 대비하고 최대한 방어하고 최대한 높이 올라가고. 모두 다... 허상이었다. 그냥 부딪히면 어떻게든 된다. 뭐 좀 못하면 어떠랴. 내가 항상 일등일 수만은 없는거 아니냐. 원래 잘해서 1등만 계속하면 삶이 심심해서 뭐 의미가 있겠냐.

잘 몰라서 안절부절하는 식은땀 뻘뻘 흘리는과정, 그래도 버틸꺼라 고집하는 그 단계 그 시간을 극복하는 참으로 불편하고 불안한 순간순간에서 진짜 자신감이라는 것이 생긴다는 것을 맘고생 어드벤티지로 얻게 되었다. 정승재 선생님 말씀처럼 수학문제 풀때나 학교공부할 때만 해당되는 건 줄 알았는데, 이 또한 어른 삶에도 절대적 대입이 가능한 변수였다. 또한, 모든 부분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현재 상황에서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에 대해 에너지를 집중해도 죄책감 느낄 필요도 없다는 것도 배웠다.

엄친딸로 살며 엄마아빠의 내동생에 대한 불안을 내 힘으로 초월해야만 했던, 애어른으로 살아야했던, 나의 성장과정상 진정 획득하기 어려운 특징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제 잘 모르면 어때! 내가 덜떨어지면 어때! 모든 걸 극복할 필요도 없는 거고, 누군가에게 열심히 하고, 잘하는 내 삶의 방식을 주입시킬 필요도 없는거고, 애는 애 답게, 때로는 어른이어도 잘 모르면 애처럼 버티고 견뎌도 좀 쪽팔려도 되는 거였다. 큭큭


다시 한번 그렇게 내 자신에게 이십오년간 성장이 멈추었던 그 시점, 열 한살, 열 두살때도 돌아갈 기회를 주게 되었다.



당신은 현재 몇 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