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남의 일 같았다.
잔뜩 풀린... 피곤한 눈을 하고, 늘어진 옷을 입은 채로 멍하니 세상인지 자신의 내면인지를 바라본채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흔하디 흔한 초보 엄마들의 모습이, 거실은 어김없이 장난감과 손수건, 물티슈등으로 어지럽혀져있고, 주방 설거지통에는 그릇이 잔뜩 쌓여있는 육아의 전경이...그렇게 늘어져서 후줄근하게, 추저분하게 있는 것도 사실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사치라는 걸, 그토록 누리고 싶은 긴장이 완화된 편안함이라는 걸 모든 육아맘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갓난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눈썹을 언제나 뷰러로 올려 깨끗이 정돈하고, 피부를 투명하게 표현하며, 산후 3개월임에도 몸에 딱 붙는 목폴라 원피스에 군살하나 삐쳐나오지 않는 나 였으니까. 아이를 낳고 나서도 작지 않은 키에 사팔에서 많아야 52킬로를 오가며, 군살하나없이 누가 봐도 아이 둘이 빠져나온 몸 같지 않았으니까.
매일 아침 남편은 나를 보고 웃는다. 너는 또 그렇게 집에서 단장을 하고 있니, 좀 편하게좀 하고 있어도 된다. 내가 화장 하라고 했니, 머리도 좀 가볍게 잘라도 되고.
남편의 좀 편하게 살자는 말이 도무지 뒷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나의 의도적 단정함에 '티가 난다'는 걸 남편에게 들키면 들킬수록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내면이 들키는 것 같은 당황스러움이었다. 내가 맞닥들이는 당황스러움과 수치감을 본능적으로 간파한 남편은 그럴수록 나를 더 놀렸음에 틀림없다.
늘 '편하게' 라는 말은 나와 상관없는 말이었다. 내 스스로 느끼기에 나는 '좀 편하게' 살 자격이 없는것 같았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거나 아니면 한데로 꽁꽁 묶어올려 갸름한 턱선과 볼록한 이마를 꼭 인증해야 최소한도의 스스로로서, 이 시대에, 이 곳에 존재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확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가 보면, 완벽주의를 갖고 여자를 조종하는 남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사는 여자마냥 그렇게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며 단정하게, 완벽하게를 몸 곳곳에 외치며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완벽주의였다. 사실, 완벽주의라는 말도 과분한 것이, 그 당시 내 상태는 그저 나 자신 그 자체와 마주치는 것을 지독하게 피하던 중이었고, 스스로를 불편해했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20대때에는 다른 곳보다도, 유독 외모에 대해 그랬다. 진상을 인지하고 있는 지금,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외모가 아닌 다른 곳에 나의 그것이 수박씨 붙듯 붙어있는 순간을 종종 맞닥들이곤 한다.
내가 이렇게 산 데에는 내 이름이 큰 몫했다고 본다. 내 이름을 어느 누구에게나 말해도, 듣는 사람은 '아, 그렇구나' 하며 바로 나의 강박을 납득할거라 확신한다. 수아, 빼어날 '수'에 아름다울 '아'같은 그런 이름이니까 그 이름을 짊어지고 살아야했던 내가 감당해야했던 강박도 있을 것이다.
수아, 진아, 원미 (좌측부터 빼어나게 예쁜, 진짜로 예쁜, 최고로 이쁜), 크리스탈,장미, 릴리... 뭐 그런 이름을 딸에게 주신 아버지, 어머니... 모두 다시 한번 숙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신 욕심 때문에. 당신 덕분에 딸의 인생이 각박합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건 부가가치로서 기능할 때 즐겁고 행복한 것이지, 변화무쌍한 호르몬 싸이클과 생명체가 가진 생리학적 한계안에서 매번 '제일 예뻐야하고, 빼어나게 예뻐야하고, 진짜로 예뻐야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지혜로운 여성이라는 뜻의 지혜, 착한여자아이라는 뜻의 선희도 우리네와 사정이 비슷했다. 내 친구 지선이는 힘들어 어쩌나. 아니다, 지선 정도면 '빼어나게' , '최고로' 라는 표현은 없으니, 숨쉬며 살만할지도 몰라...
너무 직관적이지 않은, 단순 이름 '음'을 소리로 만들었을때 단번에 뜻이 유추되기 쉽지 않은, 그런 이름이 아들에게나 딸에게나 좋은 것 같다.
이름에 관련한 이야기는 한켠에 접어두고, 직접적으로 '청소'와 관련해서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하루는 엄마가 밖에서 일을 하다가 인간관계 트러블때문인지 업무성과때문인지 하는 것으로 잔뜩 화가나서 집에 온 날이었다.
감정은 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화도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엄마의 성향을 알기 때문에 거실은 물론, 주방, 그리고 내 방에 레고 한 톨, 굴러다니는 크레파스 하나 없어야했는데, 아차 실수로 손바닥보다 조그만 수첩 한 권은 그림을 그리다 흘렸었나보다. 엄마 퇴근시간에 맞춰 피곤한 엄마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칭찬을 받기위해 걸레질까지 꼼꼼하게 해 두는 나의 노력에도 무색하게 엄마는 나무로 된 빗자루로 나를 신나게 팼다.
아동 가정폭력, 학대 등의 개념이 없었던 1990년대에는, 내가 잘못해서 맞았나보다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것이 억울하거나 화가 난다는 느낌은 없다. 단지,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어처구니가 없어 콧구멍만 동글게 벌리고 있을 뿐이다. 물론, 어딜가나 캔디가 최고인 엄마니까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쯤은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잘못한 어린이는 '그 때에는 맞아도 되,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거'었다. 하지만, 엄마가 된 나는 내 아이들을 때린 적이 없다. 엄마의 감정 그리고 행동적 미성숙임에 틀림없는 짓임에 분명하디 분명하다.
지금의 내 또래였던, 아니 나보다 다섯살정도 어렸던 엄마는 어떤 정신적 에너지에 의해서 청소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을까? 현실의 잡다한 괴로움을 청소라는 행위를 통해 시각적으로 말끔히 털어내고 싶었을까? 청각이 발달한 나처럼 유난히도 시각이 발달한 엄마는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자극에 유난히도 민감했던 것일까? 안 그래도 남아선호사상에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오빠들과 남동생 사이에 치이며 커서 화가 켜켜이 탓에 화풀이 건수를 늘 찾아 헤매이던 것일까? 아니면 엄마가 혹시나 내가 모르는 주의력결핍 혹은 과잉행동장애 증상이 었어서 눈에 보이는 자극에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정신이 쉽게 흐트러지는가, 그런 부분들을 통제하기 위한 자신만의 노력이었을까.
수첩을 바닥에 널부려 놓았다는 이유로, 빗자루로 신나게 얻어터지는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엄마에게 사랑을 받으려 엄마 퇴근시간에 맞춰 집을 정돈해놓는 행위를 완벽하게 멈추게 되었다. 엄마가 병적으로 깨끗하게 닦아놓은 집안에 음식물 쓰레기를 던지거나, 바닥에 똥을 싸는 등의 객기로 엉망을 만들며 반항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 그 장소 그 빗자루, 그 눈 빛 이후, 더 이상 청소라는 행위를 나와 연관짓지 않았다. 마음의 빗장을 걸어잠구고, 칭찬과 연결된 내 마음을 썩뚝 잘라 단단히 꽁꽁꽁 묶어버렸다.
엄마 퇴근시간에 맞추어, 예쁘게 단정하게 집안을 청소했던 어린이는 그 순간... 이 세상에서 죽고 말았다.
청소라는 행위에게 주었던 자리를, 내 마음을, 엄마에게서 느낀 배반감과 억울함속에 얻어터졌던 그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 멍하게 만들어 얼려버렸고, 그렇게 잊어버린 듯 성장했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했던, 마음에 담아두었는지도 몰랐던 그 이야기가 쓰윽 고개를 내미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