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적당히 하고 사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생각했다. 제 아무리 누구인 들 사람이라는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아웃 풋이라는 것이 완벽할리도 없었고, 어떤 분야에 속해있든 나보다 나은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이니 결과와 무관하게도 1등에의 달성이라는 것도 그저 개인의 '환상'이라는 것을 이미 머리로 알고 있는 나란 사람이다. 내가 이 지역구 1등이라 한 들, 지구 일등이라 한 들, 우주에 나가면 분명 나보다 빨리 뛰고, 내 위로 날아다니는 누군가가 있을 텐데... 또 딱히 1등도 아니고 큭큭.
내 스스로 야물딱지게는 살고 있단 생각을 하긴 하나, 단도리를 정확하게 하는 것에 대해 완벽주의라거나 강박증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감히 추호도 할 수가 없었다. 완벽주의라면 완벽과 비슷한 결론을 내야지, 나는 그럴리가 없다. 완벽하지 않으니까. 완벽은 고사하고, 목표치에 도달했다고 한 들 행복한 적도 없었다.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나도 남과 비슷한 수준에서 적당히 준수하게 하고 사는거라고 평소 믿고 있던 전제에 대해서 남의 집을 보며 약간 그 전제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로와도 될 때, 여유를 즐기며 사는 사람, 늘어져도 될 때에는 좀 늘어질 줄도 아는사람들을 보며, 항상 반듯하게 번헤어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내 마음 어딘가를 나도모르는 채로 꽉 잡고 있는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수학문제를 풀다가 지우개 가루 한 줄이 발생할 때마다 쓰레기통에 버리러갔다 왔다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내 아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공부하다말고 옆방 문이 열린 후,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 그 무얼 하고 있었든 번쩍 일어나서 방을 나가 옆 방문을 닫고 오는 아들의 습관이 생각났다. 안다, 물론 아이의 모습 전체가 나로 인해서 발생한 결론이 아닐 수 있다는 점. 하지만, 환경안에서 나를 보며 습관화 한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욕 하는 부모밑에서 자란 아이라야 욕을 습관화할 수 있듯, 자기자신이며 주변이 어지럽혀진 꼴을 보지 못하는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라야 어지럽혀 진 꼴을 보지 못하는 습관을 키울 수 있다.
인지적 깨달음은 별도이며, 근 30여년을 길러온 내 습관을 하루아침에 수정할 수는 없었다.
뭐든 정반합이라고, 적당한 곳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반드시 반대방향으로 움직여야함을 알고 있다. 하늘이 나를 돕고자 하였는지, 나는 소 뒷걸음질치듯 바로 캐나다 대학에 입학 했고, 아이들을 챙기는 동시에 과제며 퀴즈며 중간, 기말고사에 매학기 장학금을 타며 풀타임 학업을 마치느라 들숨 날숨도 느낄 틈없이 매분, 매초 헐떡이며 살았다. 비자발적으로 청소가 등한시되었다. 매일 입은 옷의 빨래, 음식 먹고난 그릇 설거지만 하는 것도 빡신데, 피곤한 몸 이끌고 애들 동화책 읽어주는 것도 빡신데, 무슨 팬트리까지 손이 닿을소냐.
오늘은 욕실 청소 해야하는데... 오늘은 창고 정리해야하는데... 오늘은 그릇 위치 바꿔야하는데...마음이 굴뚝 같았다. 아니, 솔직히 이런 생각 한 톨도 할 여유없이, 10분이라도 시간이 나면 쪽잠이라도 스트레칭이라도 해야했기에 학업을 이수할 때 까지는 청소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내 손으로 직접 해오던 것들에 대해 로봇 청소기에 모든 청소를 맡긴 채, 그렇게 청소를 방치하며 4년을 보냈다. 남편은 한번씩 '여자가 공부를 하니 집안이 개판이다' 라는 말로 화풀이를 하곤 했지만, 학교에서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벌어오는 마누라에게 반 쯤은 양보하는 듯했다. 내가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손에서 놓아도, 팬트리에서 양파 한알이 굴러떨어져 썩고 있어도, 때로는 욕조 구석에 검은 곰팡이가 생겨도, 그래도 아주 큰 차이 없이 그 속에 속해 사는 인간들과 집이 굴러가지긴 한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