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나의 강박의 흐름을 들여다보니, 주변공간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것 그리고 말끔한 외모를 유지하는 것에 그치는 줄 알았던 '상태를 몹시 불편해 하는 상태'는 학창시절에는 학업으로 이어졌고, 인생 전반에는 인간관계까지도 영향을 주었음을 관찰하게 되었다.
상황의 의미를 알기위해 현상 또는 현상의 추이를 살펴보고, 분석하는 것은 개인내적으로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원인 모를 병에 걸렸을 때에 눈에 보이고, 계량할 수 있는 수치와 변수들을 보며, 원인을 정의 내리고 그에 따른 해결법을 찾듯 삶의 각 곳에서 문제를 발견하다보면, 숨은 원인과 해결법 또한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20년 이상 숙련된 심리 치료사가 아니고, 제 3자 입장에서가 아닌 나 자신의 상황을 보는 것이기에 다소 돌아가는 면이 없지 않지만, 남이 가르쳐주는 효율적인 루트가 아닌 제 스스로 샨택한 돌아돌아가는 길이기에 스스로 풀었던 수학문제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고 의미있듯 심리적기제 또한 내 스스로 해석하고 분석해보는 그 과정을 즐겨보고자 한다.
인간관계에서의 강박이라... 좋은 사람 컴플렉스를 말하는가? K-장녀 컴플렉스를 말하는가? 사실 난, 내가 사람들에게 특별히 친절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 각자의 장점을 잘 발견하고, 어느 관계에서든 칭찬을 서슴치 않는 면도 있지만 특별히 내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남들은 효도관광이다 부모님 용돈이다 하며 몇 십만원 몇 백만원씩 투척하는 것 같던데,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일부러 10만원 이상의 큰 돈을 쓴 적도 없는 것 같다. 혼자 가만히 있을 때는 이렇게 감정 탐색도 하고, 글 속에서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자주 받지만, 정작 실제 가까운 일대일 관계안에서는 자꾸만 대문자 티(T for thinking)가 발동하여 관계의 기름을 쪽 빼고, 팩트만으로 인간관계를 했기에 내가 늘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다.
단지 표면상 상당히 신랄하고 가혹하게 상대방의 상황을 분석해주고, 상황에 맞는, 상대가 마주할줄 모르는 위험인자를 이야기해주며 상대가 처한, 또는 처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부터 상대를 철저히 방어하려 애쓰는 편에 가까웠다. 감정을 이성으로 해석해서 언제나 분출하기보다는 다스리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라, 내 감정이나 내 입장따위는 저 멀리 안보이게 던져버리고, 마치 상대가 나 자신 인양 상대보다 더 깊게 상대방의 상황에 몰입하는 패턴을 가진 나 이다. 팩폭러라고 하나, 상대에게 상처를 줄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남들 앞에서 창피를 주거나 작게 만들 의도도 없다. 그저 나 자신을 투신하여 상대를 구하려는 진심에 활활 타올라,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처리하려하지 않는, 문제임이 분명하지만 아무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태의 심각성에 집중하여 누구보다 먼저 앞장서 그가 처할 위험에 대비하고, 본인 자신이기에 보지 못하는 주변 상황을 분석해주어 스스로가 볼 수 없는 부분을 봐 주려고 노력했다. 시간도 에너지도 노력도 아깝지 않았다. 나를 버리고 남을 택했기에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철저히 그를 위해 헌신했다. 미성년의 자식이나 나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배우자에게는 물론, 인터넷으로 연이 닿아 만난, 얼굴한번 본적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열정의 온도가 같았다. 나는 왜 어려움에 놓인, 나보다 경험이 적거나 없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일까, 마치 퍼즐을 맞추듯, 아니면 자물쇠가 열쇠에 꼭 들어맞듯 문제있는 사람을 보면 내 곁에 끼워넣어야 속이 편한 것일까, N극과 S극이 만난듯, 가뭄에 물 만난 물고기인듯, 수치심과 공허함, 외로움을 가진 사람을 보면,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토록 찾아 헤매이던 진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상대를 드디어 만났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내 자리에 내 발로 땅을 딛고 서서, 내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두고, 내 스탠스를 지키며 상황안에서 상대를 본다면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순간순간마다 나는 대인 관계안에서 각각 사람안으로 빨려 들어가 나 자신을 던져버린채로 상대방을 보호하려 애썼다. 언제나 내 주변 사람들의 문제에 중독되어 깊이 관여하려 했다. 문제 있는 사람,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한 몫 든든히 해 줘야 제 할 몫을 한 것 같은 나를 발견했다. 관계의 거리에 따른, 중요도에 따른 차등이란 비겁한 일이었다. 모든 관계에서 늘 그랬다. 관계에 대한 강박? 아니... 문제 상황에 대한 강박을 인지한 순간이었다. 생산적인 비판이라는 형태가 따가워 정작 나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과 나의 찐의도를 상대들이 인식할 수 없었겠지만, 그를 서운하게 할지언정 '일종의 반사작용으로서, 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번 나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상대에게 몰입하는 패턴' 에는 추후 결말, 그러니까 상대와 나의 관계가 서먹해질 수 있다는 점이라든지, 나의 시간과 에너지, 노력이 희생될 수 있다는 점이라든지, 남의 고민에 몰입하므로서 내가 느낄 행복이나 즐거움의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든지... 그런 이성이 끼어들 수 없었다.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을까... 행동하고 있을까...남을 위한 감정이입과 상황몰입...그와 동시에 나 자신을 철저히 포기하는 행동이 왜 '반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어릴적부터 지속되어 이제는 졸업해야하는 일종의 뼈 아픈 생존전략에 답이 있었다.내가 상대방을 상대하는 방식은, 삶의 어느 순간부터 나와 너의 관계가 아니라 참여자가 둘이 되었든 셋이 되었든 일단 상황안에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내 자신을 제거하는 가혹한 전략이었다. 다들 자신의 말을 할 때, 다들 힘든 상황에서 한 사람이라도 좀 자신의 감정, 입장, 이익 등을 억제하고 있으면, 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 전체적으로 볼 때 상황이 좀 더 쉬워짐에 틀림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역기능적 구조안에서 살아남아야하는 안전욕구를 가진 영리한 어린아이의 전략이었다. 나의 성장과정 상, 나는 가족안에서 영리한 아이여야했고, 이 방법은 전략적 생존기술이었다. 엄마 아빠의 보호아래, 가족안에 속해야할 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나름 유용했던 이 기술이, 어른이 된 후에는 내 발목을 잡고 긍정적 면모가 제거된 채, 나를 답답하게 옥죄고 있을 줄이야... 인식과 개선이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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