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이 서로 섞이는 이 시간

by 후루츠캔디

우리는 왜 외국생활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낄까? 정말로 언어 때문일까?


나는 약 15년 전, 서울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한국인 이민자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모국에서의 '개인 혹은 집단적 시달림'이 이민의 공통된 이유라는 걸 알 수 있다. 가족, 직장이나 학교, 친척, 동네 등 커뮤니티 안의 갈등, 종교나 민족 갈등, 정치적 갈등...배경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불안정한 어린시절의 잔상을 품고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언어의 장벽은 그저 겉보기 일 뿐, 진짜 문제는 마음의 소통 부재이다.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내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내 몸이 속한 곳이 언어가 다른 타국이라는 물리적 사실보다 마음 한 조각 시원하게 공명할 수 없음이 개인의 삶을 소외시키는 주범인 듯 하다.


나도 비슷했다.


사실 나는 생존 전략상 많은 감정을 억눌러 살아온 사람이다. 빡한 삶의 시간표안에서 이 점마저 잊고 살고 있다가, 내 큰 아이가 이제 막 사춘기 후반을 향하는 나이에 내 아이의 표정에서 내 억눌린감정의 단서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나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앞서 밝힌 내 삶의 많은 문제가, 이를테면 미세한 강박증세, 성취 중독, 문제 해결 중독, 타인에 대한 놀라운 적응능력, 기형적으로 발달한 참을성과 책임감, 습관적 공허감 등, 그 억눌린 감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 아이의 표정은, 결과적으로 나의 삶의 근간이 되었던 감정과 행동을 해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물론 과거의 나처럼, 그런 상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 눌러놓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들춰서 큰일 만들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자며 어떤 방향이든 감정은 눌러놓고 사회적 명함을 자랑하며 외부의 피드백으로 만족하기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반드시 전에 눌러두었던 에너지는 위에서 밝힌 문제 형태로 치환되어 삶의 여러가지 측면에서 나 자신을 좀 먹는다. 성취가 줄 행복과 감동을 망상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후에도 아무것도 없다. 아니, 그토록 기대한 때여서 인지 부정적인 감정의 밀도와 농도가 더욱 강해질 뿐이다.


반면, 드디어 두려움을 멈추고 어린시절 유기불안이라는 감정을 마주할 수 있다면, 감정이 자신을 알아달라고 어김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을 때, 감정을 이해하고, 절충할 수가 있는, 심지어는 감정이 찾아오기도 전에 대비할 수 있는 그런 삶의 능동성을 획득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된다는 건, 피양육자라서 감내해야했던 어린이 특유의 무력감으로 인한 불안을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이다.




상황을 적절히 다룰 수 있음은 억압하는 것 보다 강하며, 애초에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도 나을 수 있다. 개인에게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미성년의 어린아이로서 당연한 무력으로 인해, 주어진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손쉬운 도구를 활용해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상황과 감정을 다룰 능력이 있는 나 자신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에 있다. 혹은, 과거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그 또는그녀의 글을 읽으며, 공명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유능성을 대리경험함은 독자 모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것이 우리가 타인의 에세이를 찾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감정을 마주하고, 이해하고 해석할 능력이 생기면 정말로 제 삶의 주인이 된다. 전문지식이나 특별한 스킬 없이도 누구나 이 능력을 계발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더욱 철저히 내 감정을 만났고, 갈 길을 찾지 못해 맘 속에 둥둥 떠 방황하던 각각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 과거와 현재 그가 가진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 실제 적용가능한 개선법을 탐색하는 과정을 적어보았다.


지금부터 내가 할 15편에서 20편가량 아니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세 과정을 담은 이야기는, 장소나 나이, 사는 곳, 성별, 직업 등과 상관없이 마음이 공허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무 문제 없는, 적어도 한 부모에게서 성장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연인의 사랑, 사회적 성취, 인정, 따스함 등 그 어떤 것도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는 고질병에 걸린 자신을 인식할 겨를도 없이, 그저 스스로의 노력을 탓하며 더더 높은곳에서 언제나 더더 많이 갖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이다.


지금 이 시간, 자신의 감정을 만날 준비가 된 독자라면 앞으로 이어질 내 글과 함께 하면 더할나위없이 감사하며 그와 그녀의 용기를 응원해주고 싶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내 글을 그만 덮어도 좋다. 각자만의 적당한 때가 존재하니 그 때에 다시 만나자.


이제는 어린시절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고 싶은 용기있는 사람들은 이제 모여 나와 글로써 감정을 공명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프롤로그]



모두 어려움이 있었다.

누구도 온전하기만 한 시간이란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개인의 병이나 피할 수 없어 당한 사고로 인한 어린 환우가 있는 가족이 겪는 고통, 어린 환우의 자매였던 캔디(나) 겪는 고통은, 경험치 않았던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좀 다른 성격을 띄고 있다.


그건 바로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부모에게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거나, 자매, 친구, 가까운 사람 등 개인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진정한 사과를 받아 해결하거나, 특정 대상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면 된다. 이 또한 쉽지 않지만 문제 대상을 차단하면, 적어도 과거와 현재가 선이 그어지며, 잘함과 못함의 시비를 따질 수가 있어 회복도 재생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누구의 잘못도 아닌 천재지변, 자연재해에 가까운 어린아이와 가족을 순식간에 덮쳐버린 혈액암이라는 질병에는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고, 피해자만 존재할 뿐이다. 잘못을 한 사람이 없기에 사과를 주고 받을 수도 감정의 경계를 그을 수도 없으며, 그저 환아와 부모님은 물론 환아의 형제, 자매 등 가족 모두가 함께 아픔을 당하고 감내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 시점 전까지 착하고 성실하게만 살아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병 앞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무력하다. 예고도 없고, 예방책도 없다. 쾌속모드도 없고, 느리게 재생할 수도 없이 그저 온전히 받아들이고 감당해야하는 운명이 되어버린다.


빛은 그림자와 늘 함께이다.


나는 여덟살에 급성 림파구성 백혈병을 만났던 환우의 18개월 빠른 아홉살 친언니였다. 우리 외에 다른 형제, 자매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30대 중후반의 어린 부모님과 오손도손 네 식구가 서울에서 단란하게 살다, 동생의 갑작스런 피토를 목격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서울대병원을 거쳐, 아산병원 61병동으로 1주일만에 직행한 소아혈액암 환우의 가족이기도 하다.


동생이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근 20년간 우리집의 대외적 '당사자' 자리는 늘 동생 몫이었지만, 지금부터 내 글에서만큼은 환우의 자매였던 '내가 당사자'가 되어보고자 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건네오는 인사말은 ' 별이 몸은 좀 어때? 에구.. 다행이당 ' 사실 이 장면 안에서 남 몰래 가슴 한쪽 시큰한 아이가 하나 숨어있음을 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거라 확신한다. 이 글을 공개적으로 쓰는 이유이다.


지금 나의 글을, 현재에도 아픈 아이가 있는 환아가족이 읽는다면 좋겠다. 그래서 아직 어려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거나 타인에게 단어로 표현 할 수 없는 당사자들의 마음이 부모님 및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읽히길 바란다.


부모님께 의존해 생존해야만 하는 어린아이로서, 상황을 견뎌내는 것 이외에는 도무지 수책을 찾아 낼 수 없는 아직 어린 당사자는 절대로 부모에게 자신의 상황을 호소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 주변의 누군가가 내 글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를 엿보고 '나와 같은 당사자들에게' 적시에 맞는 개입을 할수 있도록 도울 참이다. 생업이 바쁘고, 죽음을 문턱에 둔 환아를 보살피느라,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마주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는 환우 부모님에게 당사자의 마음속을 충분히 말해볼 참이다.


하루밤에도 갑작스레 생사를 오가는 병동 안의 상황을 보며 환우만을 보살필수 밖에 없는 부모의 한계를 인식하기에 그들에게 사과를 원하지도 않으며, 내가 겪은 고통에 대해 부모를 포함한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부모 말고 일가친척들이 심적으로 좀 더 도움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혈액암이 그리 흔한 병이라 볼 수 없기에, 자신들의 경험과 감정이입 할 수 없음을 잘못이라 여겨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죄인은 없다. 그래서 더 외롭다.


감정이라는 놈, 오랜기간 참고 있던 그들이야말로 마음속에서 영원히 사그라지면 좋으련만, 눈에 보이지 않아 숨겨버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그들은 나중에라도 처리되어야 마음속에서 개인이 가진 자원으로서 환산될 수 있다는 한계 또한 내재하고 있다.


감정을 마주하고, 처리하는 것에 대해 덜컥 겁부터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 숱한 편견들과 달리, 묘하게도 감정이라는 이 녀석은 남이 알아주고 적시에 반응을 받을 수 있었다면 제자리를 찾아가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며 삶의 여러경험과 생각을 덧붙인 내가, 한층 빗겨난 시각으로 과거의 나를 바라봐주고, 돌봐주어도, 그 때 그 시각에 남이 알아주는것 만큼으로, 어쩌면 그 보다 더 정확하게 치유라는 목표에 적중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단순한 고백이 아니다. 어린 나에게는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비밀이 존재했고, 그 비밀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 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이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해, 그리고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숨죽여 참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이제 과거보다 유능한 어른이지만 감정 읽기에 서툰 어른들을 위해, 마음을 더 이상 침묵속에 뭍어두지 말고 꺼내 뱉어보려한다.


이제 어린 캔디를 알아봐주고 느껴줄, 용기있고 따스한 성인 캔디가 되었으니 이제 내 마음과 차근히 공명해보려고... 나와 같은, 용기있는 사람들과 손붙잡아보려고...


그 시간을 버티고 생존해 온 한 명의 승리자로서 내 몫을 해 볼 참이다.


P.S. 11편안에 내 어린시절 감정을 부르고, 읽고, 이름붙이고 나서,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참고 자료를 보기보다는, 내 감정 먼저 살피고 도움되는 외부자료를 보는, 저와 같은 순서로 진행해보시면 도움이 될거라 확신합니다.


독자의 여정에 따뜻한 등불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