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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하다는 독약

by 후루츠캔디

동생의 2개월간의 입원기간동안 (내가 기억하기로는 2달인데, 나중에 동생에게 듣고 보니 6개월도 넘게 병원에 있었다고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내 몫을 했다. , 낮, 그리고 새벽없이 일하는 아빠를 위해 빨래도 돌리고, 어린아이의 손길로나마 청소도 하고, 숙제도 열심히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말 모범생인 반의 한 두명을 제외하고 다들 놀기 바쁠 시기에, 학교에 예습도 복습도 열심히 해와 사람들에게 '나는 늘 부모의 보호 아래 사는 아이'라 보여지는 부분에 안정감의 허상 위에 앉아 그나마라도 위로를 받았었다. '캔디는 모범생, 캔디엄마는 늘 캔디를 사랑해, 엄마는 캔디를 얼마나 뿌듯해하실까'라고 말하던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의 칭찬에 나 자신을 겨우 위탁해야만 숨을 쉬고 살 수 있을만큼, 그 만큼 혼자였으니까...


사실, 나의 현실은 이러했다.


주중에 꼬박 캔디에게 전화 한통 안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에만 겨우 만나는 엄마는 집에 오는 날에도 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원래 그런건 줄 알았다. 동생을 간호하다보면 엄마는 나를 잊는 것이 당연하며, 하루 한통 전화 10분에 걸리는 시간마저도 동생에게 최선을 다해 양보해야 동생이 하루 속히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혼자 이해하려 애썼다. 나의 감정과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현실을 바꿔치기 거래 하며 버텼다.


일주일동안 병원에서 동생 병간호를 하느라, 꾸역꾸역 참았던 슬픔을 집에 오면 몰아서 터뜨리는 듯한 불쌍한 엄마를 봤으니까...




동생이 입원한 후, 엄마를 처음 본 건, 약 2주 후였다. 파래한 얼굴로 집에 온 엄마는 '캔디야' 하며 힘없이 나를 불렀다. 엄마가 너무 반가웠지만 기쁜 내색을 마음놓고 할 수는 없었다. 아니, 한번은 엄마가 퇴근해서 집에 올 때 해바라기가 되어 엄마를 반겼을, 이전의 캔디처럼 그렇게 엄마에게 안겼던 것 같기도하다.


엄마는 혼자 있었을 내게, 아산병원에서 집에 도착하시자마자 매콤한 닭도리탕 한 그릇 끓여주셨다.


'병원음식이 니글니글해서 말이야, 아우 이렇게 얼큰하고 매콤한걸 먹으니 이제 좀 살것 같네, 후후후'


청량고추를 팍팍 뿌려 엄마가 나를 위해 끓인 닭도리탕을 나는 사실 두 스푼도 채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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