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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억압과 정서적 고립

by 후루츠캔디

"퇴원."


그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땐, 자유가 올 줄 알았다. 병원 밖으로 나가는 순간, 동생은 환자가 아니게 되고, 우리 가족은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항암치료는 백혈병만이 아니라 건강한 면역세포까지 쓸어버렸다. 퇴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면역력이 약해진 동생은 퇴원 후에도 병원에 있을 때처럼 보호받아야 했다.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도 놀이터에 나가 놀지 못했고, 감기 하나에도 병세가 악화될 수 있어서 늘 긴장해야 했다. 특히 나처럼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는 학교 생활 안에서 여러가지 잡균과 바이러스를 가지고 집에 들어올 수 있으니, 가족 안에서 '위험 요소'가 되었다. 감기라도 걸린 날이면 나는 '대왕 병균'처럼 취급받았고, 가족들과 수건도 따로 쓰고, 공간도 분리되어야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이 서운해짐은 어쩔 수 없었다.



건강한 나와,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항상 보호받아야하는 동생. 우리 둘은 같은 나이대지만 전혀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동생은 체력도 부족하고 공부도 힘들어했다. 학교에 가도 시름시름 앓다 돌아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이전에도 사실 이해력이 빠른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읊는 성향은 아니었거니와 입원중에 학교를 가지 못했으니 학습결손에 이유가 있기도 하고, 체력이 뒷받침이되지도 않으니, 어쩌다가라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학교에 가면 시름시름 골골 앓으며 시간을 보내다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언니인 내게 산수며 국어며 배울법도 할텐데, 내 동생은 나와 달리 두 학년 빠른 나에게 공부를 배우기는 누구보다도 싫어했다. 아프기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옆에 앉아 책을 펴는 순간 동생은 '머리가 아파, 졸려' 라는 말로 스스로를 나로 부터 방어했다.


나는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동생의 병과 학습성취도의 관계를 생각하니, 맘놓고 공부 잘하는 내 스스로에 대해 예전처럼 맘대로 내가 만든 성취 결과를 기뻐하는 일조차와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열심히 선생님을 따른 끝에 100점을 받으면, 째지게 기뻐할만도 한데, 성취에 대한 환호는 맘대로 공부할 자유가 억압된 아픈 동생이 있는 집에서는 금기사항이지 않을 수가 없다.


예전같으면 칭찬을 받았을 점수도 지금은 말 없이 서랍속에 넣는 일이 많았다. 엄마, 아빠도 나에 대한 칭찬을 집안에서 자중하는 눈치였다. 친구집에서 혹은 예전 우리 집에서 이 점수라면 외식도 하고, 칭찬도 받고, 우리 딸이 최고라는 말도 들을텐데... 동생의 상태에 엄마 아빠의 학업에 대한 아쉬움까지 고려하여, 나는 내가 누구와의 말싸움, 글싸움, 논리 싸움 그리고 현장겨루기에서 이기는 것이 늘 좀 죄송해 나 자신을 죽이며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노릇이지만,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사실 부모님의 지적수준을 압도했음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다고 스스로 자부했었던 나는 괜히 부모님을 초라하게 할까봐 언제나 조심했고, 동생과 부모님의 열등감이 혹시나 건들여지지 않을까 늘 노력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나는 단순한 기쁨도, 감동도 마음껏 느낄 수 없었다. 방사선 치료의 결과로 동생이 미래에 건강한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는, 스스로의 감정을 더더욱 억누르게 되었다. 십대 소녀로서 자연스러운 감정의 움직임조차 나에겐 사치였다. 이성에 대한 관심, 설렘, 기대감 같은 감정은 동생 앞에서 감히 꺼낼 수 없었다. 보통 충격이 아니었는지, 이성에 대한 호기심 억압은 20대 초중반까지 내게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성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았으니...


삶 전반에 대한 장기적 만족인 행복감, 편안함, 풍요로움까지는 기대도 할 수 없고, 단순한 그 때 그 때 느낄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야 할 상황에서도 이 시간에도 아파하고 있을 동생을 생각하며 죄책감이 느껴져 최대한 억제하며 살았다.


우리가족 주변에는 분명 나와 가족의 상황을 돌봐주고 위로해주고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상호 얼추 동등한 상황에서 나를 위해 준다면 나는 분명 '감사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기반으로 사회구성원을 신뢰하고, 나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애썼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내가 받은 도움은 족족 다른 집은 멀쩡하고 '우리집만 백혈병걸린 환자가 존재한다'는 각인과 상대적 박탈감이 되어, 상대의 귀한 마음도 감사함이라는 감정으로 마음 놓고 누리기보다는 '동정'이 싫어 '내 동생이나 부모님과는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와는 연관 없는 일'이라 모른체했다.


내가 가장 외향적이고 호기심 많았어야 할 시기에, 나는 조용히 나를 닫았다. 나의 진로, 나의 선택, 나의 꿈은 죽음을 상상하는 동생 앞에서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가장 익숙했던 유치원 선생님을 꿈꾸었다. 그게 현실적이고, 안전하니까.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족에 백혈병이라는 놈이 침입해 들어오기 훨씬 전과 관련된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건강한 나의 아픈 너에 대한 죄의식을 건들일수 없는 유일한 회피책일테니까.


다른집들에게는 참 흔하디 흔한, 그 자연스러운 평온함은 아무렇지 않음이 장기간 병석에 있는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감정임은 말할필요도 없는 현실이다. 평범한 일상, 평범한 대화, 평범한 웃음... 이 모든 것은, 일주일, 2주일이 머다하고 외래진료와 혈액검사를 통해 백혈구 수치를 체크해야하고, 혹시나 이번주에 재발된것은 없나, 백혈구 수치가 지나치게 높지는 않나, 혈소판 수치는 어떤가 조마조마하며 검사결과를 기다려야하는 10년간의 가족 스케줄 앞에 자연스럽게 뭍혀버렸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신분에 맞지 않은 다소 높은 의학지식이 자연스럽게 축적되며 나는 가족이 아닌 어른이 되어갔다.




사춘기란, 아이가 서서히 부모의 보호막을 걷고 자기만의 갑옷을 만드는 시기라고들 한다. 사랑과 반항 사이를 오가며, 실수와 갈등을 통해 ‘나’를 빚는 과정. 그러나 내게 사춘기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오기 전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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