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같아지는 시기가 온다

많은 사람들을 보며 드는 생각

by 후루츠캔디

병원에 앉아서 생각했다.


사람들은 죽으면 모두 천국에 가지, 아니 그 전에 육체가 썩어서 흙이 되지. 모든 사람이 종교나 인종, 성별, 사회적 지위, 배움의 높낮이, 내면과 외면의 성숙함 등 그 모든 조건이 무색하게 평등해지는 때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


그 때가 '흙이 되어서' 라면 좋으련만, 늙고 병들고 힘없는 노인이 될 때라서 문제이다. 아니, 새파랗게 젊은 날에 병을 얻게 되어서일 수도 있다. 혹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는 날 일 수도 있는거다. 심지어 누군가는 자신이 공들여 키운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로부터 독립이 되어버리는 때 일 수도 있다. 운이 상당히 좋다 치자. 좋게 말해 삶의 아무런 굴곡이 없다 쳐도,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이 아무리 내게 주어져도 그것이 있건 없건 별다르지 않은 상태, 어차피 누구나 겪어내야하는, 세상 사람이 공평하고 평등해지는 그 시기가 반드시 모든 사람들에게 오고야 만다.


내가 걸치고 살던 권세와 영광..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에게는 없고 나에게는 있는것이 영원할 줄 알고 함부로 나보다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잰 체 하고 살았다면, 사람은 모두가 같아진 이후의 삶이 한 없이 초라할테다.


꼭 천국에 가기 위해서나 착한 사람이 되어 후에 복을 받기위해서가 아니라, 당장 나의 그 때가 비참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기적인 이유에서라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평소에 늘, 나보다 힘없고, 약하고, 여린 사람을 진심으로 위해주어야한다. 모두가 호의를 원하는 상태라면, 늘 그 중 가장 약한사람, 소외된 사람을 먼저 위해주어야 마땅하다. 어느정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상대가 내게 주는 친절을 마음에 깊게 새기고, 의미를 기억한다. 추운 겨울 언발을 녹이는 따뜻한 난로가 된다. 이것이 나의 삶의 원칙이다.


간혹 정말 1/100, 나의 진심을 삐뚤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나와는 무관하다. 받는 그릇의 문제임으로 그건 내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아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하는 이유는, 나의 태도가 그대로 그 때의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든 실제 삶 속에서든 말이다. 타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긴대로 상대의 의도나 목적을 거울처럼 반사해 해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타자란 사실 존재하지 않으며, 내 마음의 투영인 경우가 많다. 노인이 된 나에게 젊은이가 베푸는 친절의 값어치가 진귀하고 품격있으려면, 젊은 날의 내가 노인을 비롯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형식이나 동정이 아닌 진심으로 상대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시점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질텐데, 어떻게 사는것이 옳은 것일까. 아직 힘이 남아있지만 어차피 늙으면 같아질 껄 이라며 공연히 힘들여 살지 않는것이 옳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신의 섭리인데, 닳아 없어질 몸이긴 하나, 방치하지 않고 끊임없이 계발시키고 단련하고 가꾸어야한다고 생각한다ㅡ 그것이 나 개인에 대한 의무이자, 책임 그리고 권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 혹은 내일이 나의 마지막 젊은 날이 될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목숨이 붙어있고 사지가 건강하며, 머리가 돌아가는 한, 열심히 사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에 대한 의무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나 스스로를 계발시키고 단련하고 가꾸어야할까. 한 배에서 나와도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다르며, 성향이 다르다. 잘 관찰하고 나답게 살아야한다.


나답게 재미나게 살기에 일 분 일초가 귀한데 굳이 다른곳에 에너지를 빼앗길 필요가 없다.


내 삶을 갚지게, 귀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