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개방성의 폭과 깊이에 대한 고민

감정과 정서를 함께 자유로이 나눌 친구 찾아요.

by 후루츠캔디

매 년 열리는 브런치 공모전에서 또 우리들을 초대한다는 공고문을 읽었다. 내가 맴버쉽 전용으로 그동안 정성껏 기재한 22편의 글을 책으로 다시엮어 공모에 도전해볼까 하는 기대로 어제 글을 1편부터 쭉 읽어보았다.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읽히기에는 아직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유료 멤버쉽으로 묶어놓는다는 선택이 역시 맞았다.


아무리 내가 쓴 글이라도 다시 읽으면 새로운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그 때의 감정을 최대한 자세히, 사실적으로 재현해보자는 마음으로 최선으로 다해 사실을 따라가는 데에 집중했다면, 어제 다시 읽으면서는 어린 시절 그 아이가 겪었던 어려움이 생각보다도 더 컸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압도될 수 밖에 없을법한 어려운 경험이 나에게 꿍 하고 떨어져, 그것을 처리해나가느라 애를 쓰는 삶의 과정속에서 성장한 나를 본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을 발견한다. 나의 성격 형성 과정을 엿본다. 내게 속한 여러가지 역할 들 중, 내가 현재 치중하는 역할이 무엇이며, 왜 그것의 중요성을 다른 역할들 보다 더 우위에 두는가, 혹은 앞으로는 어떤 역할에 더 무게를 두고 싶은가 등 미래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 혹은, 모든 역할들에서 자유로운 상태의, 진정한 나 자신은 무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페르소나. 사람들은 페르소나에 대해 말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자신의 역할을 말하는데, 정답도 없고 각 지역의 혹은 시대의 문화마다 다르므로, 정답이 없다. 오직 나만의 내가 맡은 역할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뜻한다고도 할 수 없는 동시에 있다. 어느정도 사회적 합의점은 있지만, 개인의 상황이나 개성에 맞게 어느정도는 절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삶의 유연성을 획득할 수 있다. 오해없이 타인을 재단하지 않는, 진정한 소통을 맛볼 수 있다. 어린시절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 그리고 우리 가족의 경험은 나의 페르소나 형성에 특정한 방식으로 기여했다는 결론 또한 도출해낼 수 있었다. 다음에는 이 이야기를 연재해 볼 까 하는데 날짜를 기약할 수는 없다. 내적인 탐색과 성장 만큼이나 사회적 성숙 또한 같은 무게로 염두하는 나의 가치관을 고려해서이다.


지난 경험에 대해 비밀리에나마 맴버쉽 서비스를 이용해 글을 쓰며, 획득한 가장 큰 자산은 정서개방의 폭과 깊이가 커진 점이다. 나의 감정을 수용하게 되는 폭, 그리고 글을 통해 공개하는 넓이와 깊이가 커지면서,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 기쁘다.


기쁨, 행복, 짜릿함, 개운함 등 긍정적인 감정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감추고 사느라 진짜 나와 헷갈렸던 감정인 책임감, 죄책감, 수치심 그리고 당혹스러움, 외로움등의 감정을 혼잣말로 이 곳을 거울삼아 털어놓으며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바라보며, 느끼며, 또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정체된 에너지를 풀어내니, 그동안 꽁꽁 뭉쳐 마음 깊은 곳에 숨겨놓아 형성된 나와 내 주변을 지배했던 펜듈럼이라는 것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유하게 된 지금의 나를 느낀다.


한편, 이것이 꼭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 개인에게는 좋지만, 정서개방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질수록, 비교적 타인들의 정서개방의 폭과 넓이에 괴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의 정서표현과 깊이에 대해 낯설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상대가 자신의 내면이 스스로의 방어막도 거치지 않고 나로 인해 뚫려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줄까봐서이다. 무슨말이냐하면, 나는 정서개방의 폭과 깊이가 이 만큼인데, 이런 나를 모르고 만나는 상대는, 인간은 모두 자신을 중심에 두므로, 이런 나의 정서 개방 폭과 깊이에 대한 인식을 할리 없다가, 나와 대화 도중에 나의 개방성 정도를 알아채고, 순간 방어모드로 돌변하는 상황을 뜻한다. 깊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 관ㄱㅖ의 묘미를 느끼기 때문에, 진솔한 대화를 시도하는 나 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과거의 나처럼 마음 깊은 곳에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뭉쳐준 감정 덩이가 존재해, 마치 그 감정이 자기자신인 것처럼 인식하는 단계인데 그 상태에서는 여간 깊은 대화 시도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종종 있다.


이렇게 브런치에서 함께 글을 쓰고, 자신의 정서를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오히려 자유롭고 의미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에 바빠 자신의 감정과 느낌, 그리고 생각을 골똘히 그리고 부지런히 들여다보며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혹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자신안으로 깊숙히 들어가 자신의 정서와 느낌 그리고 생각에 잠긴 글을 쓰는 한편, 어떤 이는 블로그 형식의 사실과 정보 중심의 글을 남기니 브런치 안에서도 정서개방성의 정도가 나뉘는 것 같다.


내 감정은 나 자신이 아니며, 나의 상처는 나 자신이 아니며, 나의 어린시절은 현재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획득해 과거에서 나의 느낌과 감정의 표현에서 나 스스로는 자유로워져ㅆ지만, 이런 나 일 수록 감정표현을 절제하며 살아갔던 사람들은 나와의 대화를 부담스러워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해한다. 그것을 내 진심이 거절당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되, 상대를 바꾸려고 할 필요도 없되, 상대의 방어막을 애써 벗기려 할 필요도 없되, 서로가 다른 감정 개방정도 안에서 공존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사람과의 소통안에서 단계적으로 나의 생각과 느낌, 정서를 어디까지 개방하는 것이 좋을지, 사람마다 얼만큼 차등을 주는 것이 좋을지 그런 부분들에 대해 생각하게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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