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내가 느낀 어린시절 외로움을 위해
우리는 각자의 방, 각자의 시간 속에서 혼자 울던 아이였다.
그때는 외로움이 너무 커서, 나만 세상에서 벗어난 듯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되었다. 그 고요한 외로움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누군가의 외로움에 다가가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그리고 끝내 나의 외로움에 다가가 원인을 용감히 캐내고, 나 스스로를 치유하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었음을...
나의 이야기를 고백하며,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를 확인했다. 외로움은 끝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갈라놓지 못했고, 오히려 서로를 알아보게 했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나와, 어른의 내가 서로를 바라본다.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이 글은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작은 손을 위한 다정한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외로움 속에서 오래 기다린 우리에게,
이제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괜찮아. 너는 외롭지 않아.”
우리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현재 혹은 미래에 내가 꾸릴 가정과 아이에게 대입시켜본다.
1. 공허감을 채움으로 바꾸고 : 삶에서 이따금씩 느끼는 공허함은, 어린시절에 나의 감정과 정서상태에 대해 누구도 정당성을 반영해준 지속적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그러들어버린 마음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하루 3번 내 감정을 스스로 느끼고, 원인을 파악하며, 내 마음속을 채워넣는 작업을 하자. 1개월 그리고 3개월후면 공허감이 충만감으로 채워짐을 경험할 수 있다.
2. 의존하지 못하는 성향을 상호의존으로 : 나는 어린시절부터 무조건 부모도움없이 혼자서 다 하려는 경향이 있어, 내 아이가 나에게 의존하려고 함을 두려워했었다. 혼자서 할 수있지만 미루는 것 이외에는 아이의 나에 대한 의존을 반기자. 상호의존을 배움은 상호신뢰를 배울 수 있는 길이며, 아이러니하게도 허구의 독립심이 아닌, 진짜 독립심을 기르게 되는 유일한 길이니까.
3. 나 자신에게 향하는 가혹함을 사랑과 엄격함으로 : 나 자신에게 향하는 비수꽂히는 말 대신, 강력하지만 사랑이 담긴 말로 나를 늘 재양육하고 살살 살래주자. 일을 하기 전에, '이거 망하면 너 끝장이야, 잘해' 라는 평소에 내게 하는 말 대신, '모든 것은 삶의 한 과정이라' 말할 수 도 있겠다. 실수했을때에는 '괜찮아' 라고 말하고, 배울 점을 찾으면 된다. 긴장했을 때에는 '숨을 크게 한 번 쉬어봐' 라고 스스로에게 크게 미소지어주면 된다.
4. 남을 향해 건네던 지혜와 위로를 나를 향한 긍휼로 : 남들은 고민이 생기면 무조건 나를 찾는다. 남에게만 지혜와 위로를 배풀지 말고, 나 자신을 향해서도 지혜와 위로를 똑같이 베풀자.
5. 흐릿했던 자기 취향을 좋아하는 것·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못하는 것으로 자주 업데이트하며: 내가 현재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무엇을 싫어하고 못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건,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나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나를 직시하고 독해해주는 부모의 면밀한 눈이 부재했음에 분명한 원인이 있다. 24시간 아이곁에 상주하는 부모라도 그 눈이 아이가 아닌 자신이나 자신의 관심사에 빠져만 있으면, 그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이에게 투사될 뿐, 정작 아이를 비춰줄 거울이 되어줄 수 없다. 가장 신뢰로운 사람인 부모가 정직하게 비춰주는 내 모습 거울이야말로 아이가 성인기 이후에 지속적으로 스스로의 몸값을 키워갈 가장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 스스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잘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최대한 꼼꼼히 적어줄것이다. 바뀌면 바뀌는 것도 관찰해 줄 것 이다. 나 자신을 보는 섬세하고 정직한 관점을 확보한 사람만이 내 아이에게로 향하는 정확한 눈을 가질 수 있다.
6. J 혹은 P 성향따위의 분류에 속지말고, 하루 할 일을 정하며 지키자 : 혼자서 뭐든 해야했던 사람은 지나치게 계획적이거나, 지나치게 스스로를 방임한다. 뭐든 뒤로 미루는 습관이나 매사 완벽하게 정돈되어야한다는 강박은 부모의 적절한 개입이 부재한 사람들의 양극화된 특징이다. 자신의 문제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자녀를 양육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할지, 양극단에서 매번 헷갈려 적절한 자기규율을 가르치기 쉽지 않다. 어린시절 자신이 겪은 고통과 지금의 내 아이를 무의식중에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싫지만, 꼭 해야하는 일을 하루 3개만 정해서 반드시 지킬 수 있도록 나와 아이를 교육시키자. 이에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말자. 생활에 필요한 자기규율의 가르침을 학대로 헷갈려할 필요는 없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