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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에게로 도착하다.

by 후루츠캔디

어린시절 가족의 어려움은 나도모르는 새 나 자신과 감정적으로 동일시된다. 부모의 이혼을 시간과 숨결로 경험한 아이는, 나는 결혼은 하지 말아야지/ 혹은 좋은 사람과 결혼해야지, 하고 생각하며, 경제적 강박에 힘들어하는 부모를 겪으며 큰 아이는 부모의 경제적 강박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여 '부자가 되려는 열망'이 곧 자신이라 여기며 충분히 돈이 있어도 조급하게 산다. 공부가 아쉬운 부모에게서 성장했다면,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맞물려 '공부에서만큼은 결코 남에게 뒤질수 없다'는 열망이 내 것이라 착각하며 정작 중요한 내가 좋아하는 것의 발견, 잘하는 것에 대한 탐색과 계발의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누구나 머리로는 '내 일'이 아니라 '내 부모 혹은 내 형제, 자매의 일'임을 분별하나, 감정적으로는 한 데 뭉쳐 모든 것이 어느새 '나'가 되어있다.

나는 동생의 병과 나 자신을 동일시했다. 병에 정복당해 죽을 고비를 넘기느니 내가 의료진이 되어 병을 정복하겠다 생각했다. 부모의 초조한 마음과 그로 인한 갈등을 피부로 매번 들이마시며 성인이 되어 부모곁을 떠나 타국에 거주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 때 들이마셨던 그 공기 안에서 나도 모르게 숨쉬고 있었다. 그 때의 감정이 내 안에 짱박혀 든 채로, 감정 그 자체와 나의 자아가 맘껏 뒤엉킨 채, 나는 늘 타인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이라는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정작 나 자신은 공허하고 허무한 그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내 삶을 정의한 셈이다. 과거의 사건 그리고 사람, 감정과 나를 동일시한 채, 지금의 나 자신을 완벽하게 항복해버리고 살았던 나 스스로가 20편의 글을 혼신의 힘을 다해 아픔과 마주하며 쓴 노력끝에 이제야 보인다. 이런것이야 말로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고 정의할 가치가 있는 노력이 아닐까 확신한다. 이를 인식한 이제는, 나 스스로로 충분히 살아가고 싶다. 이제는 내 삶에서 나 답게 괴롭고, 또 나답게 행복할 수 있게 된 것같다. 나 답게 성공하고 또 나 답게 실패할 수 있게 된 내 몸의 뜨거운 피를 느낀다.

감정을 인식하기 위한 글쓰기의 힘은 절대적이다. 지난 2년간의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는 나의 참 자아에 가까워지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마음속의 감정을 꺼내어 햇빛에 말리며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될 때 짜릿하다는 나의 프로필 소개글은 내 브런치 페이지, 내 글들 그 자체이다. 현재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1), 그것을 인정, 받아들이고(2), 그것의 뿌리가 어디에서부터였는지를 자발적으로 회귀하며 그 당시 내가 느낀 감정과 있었던 일, 대화 내용,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묘사하는 작업(3)은, 가족구성원의 경험과 나 자신의 자아가 같지 않음을 알려주었고, 나도 모르는 새 지난 수십년간 나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트랩에서 나를 해방시켜주었다.


마치 나뭇잎과 가지들을 최대한 자세히 탐색하고 떼어버린다고 하여 나무 자체를 파악할 수 없듯, 단지 표면적인 사건사고의 기록만으로는 이 정도 정신적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 적극적이고 치열하게 땅 속 최대한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각 뿌리에 이름을 붙이고, 심각성을 인식한 후, 대체 어디까지, 왜 뻗어있나 파악하며, 나 자신의 현재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최대한 감정적으로 느끼려 혼신의 힘을 다하면 다할 수록 그에 대한 결과로서 과거로 부터 뻗어나와 정착한 무의식적 사고패턴과 감정(패턴)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 당시 아팠던 건, 내가 아니라, 내 동생이며, 그 당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하는 주체자는 미성년자인 내가 아니라 내 부모이자, 의료진 그리고 하늘에 계신 신을 비롯한 자연의 섭리였던 것이다.

또한, 내 스스로의 경험인 '감정'은 나 자신이 아닌, 나와 독립된, 자연스럽게 내게 머물다 가는 흐름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며, 감정은 곧 나 자신이라고 묶어 은연중에 동일시하던 나 스스로를 발견하며 그것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과거는 반복되며, 현재의 우리를 형상화한다고. 그리고 그것을 카르마 혹은 업보라고 하며, 누군가는 운명이라 말한다. 나는 이것에 내 맘대로 나만의 전제를 붙이고 싶다. '과거와 현재의 나를 분리하지 못한다면' 이라고 말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기회비용을 줄이고 싶어한다. 나처럼 감정적 방임상태로 어린시절을 살아온 사람은 누구도 내 마음을 인식하고 반영해준 경험이 없기에 감정을 뭍어두고 모른 채 하는 것이 누구보다 익숙하다. 여태 그렇게 살았기에 나 자신의 필요를 인식하기 보다 나를 뺀 다른 이들의 필요를 인식하며, 나 자신에게 가혹할지언정 남들에게만큼은 더할나위없이 친절하다. 내 감정을 남에게 드러내면 나는 그 순간 상대와의 관계에서 약자가 될 것이 분명하며, 사람들은 그 순간부터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될 거라 생각해 감정을 담은 말이나 글 등에 스스로를 표현함을 억제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바로 대답하지 못할만큼, 여유와 휴식을 허락하기를 두려워할 만큼 스스로에게( 혹은 아주 가까운 사람과 사물에게) 처참하게도 무관심한 반면, 남에게 'NO'라 말하기도 어려워한다. 내 감정을 털어 놓으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것이라 생각하는 한편, 상대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사자보다도 먼저 해결을 위한 선두주자가 되어있다. 문제를 말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것을 개선하는 행동을 하는 것만이 정답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모두 그렇지 않다. 다만, 상대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감정적으로 방임당한 어린시절을 경험했을 때에는 위의 자신의 가정이 진실인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은 서로가 아직 스스로를 구원하기 전 상태여서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는 바, 주변 사람 모두가 방임의 어린시절을 보냈고, 벗어나지 못했다면, 나의 삶도 황폐화되기 짝이없기에, 나와 너 모두 지금 그 곳에서 같이 벗어나자고, 다음세대의 사람들이 읽고 따라하며 행복할 수 있도록, 길을 잃은 사람들이 길을 찾을 수 있게 이 글을 쓴다.

최대한 자주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자. 그리고 그 감정을 인정하며, 감정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글로 옮겨보자. 그러면, 우리 모두는 과거의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쓰다보면, 사실 사건의 원인은 의외의 곳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수 있다. 지난 감정을 거두고, 훈련을 통해 현실에 무뎌진 감정을 다시 재생시킬 기회를 잡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처음부터 이것이 쉬운 경험이 아닐 수는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도전하다보면 가능하니, 도망가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조바심 내지 말고, 하루 한줄 아니 한 단어라도 좋으니 내 감정을 기록하자. 무척 괴로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감정의 문이 열리며, 마음이 6개월에서 1-2년간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동시에 슬픔과 괴로움 우울과 고통, 절박함, 모든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찾아오는 감정 변화에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수 있다. 축하한다, 1-2년의 괴로움으로 앞으로 남은 생의 주도권을 진짜 주인인 내가 되찾게 됨을. 비로소 내 삶을 살게 됨을. 마침내 나에게로 가는 유일한 길을 걷게 됨을.


후에 알게된 놀라운 사실은, 내가 위에 밝힌 글쓰기 작업의 3단계가 심리치료사들이 주로 쓰는 치료기법과 상당부분 맞닿아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혼자서 힘든 사람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위의 방식을 그대로 삶에서 적용하면, 일주일에 단 한시간 전문가와 함께하는 심리상담보다 더 크고 깊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나의 체험을 통해 증명한다. 과거 트라우마 치료 이외에도 나와 세상을 보는 시선이 한층 더 깊어지게 된다. 이전과 달라진 나 자신이 된다. 남에 눈에 들지 않아도 내 스스로 충만한 삶이 무엇인가를 곧바로 알게된다. 진짜 행복과 매력이 넘치게 된다.

그럴 시간이 없나? 무엇으로 인해 그리 바쁘길래 1분도 내 삶을 살지못하며, 앞으로의 삶도 누군가에게 속박되어야만 하는가. 당신의 영혼이 잠든 채로, 죽은 목숨으로 살길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


똑똑한 사람은 감정적이기보다는 논리적이며, 차가운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 흔히 생각하지만 사실 더 지적능력이 우수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를 위한 자원으로 활용한다.

마음의 상처는 신체의 외상과 같다. 치료법도 같다. 외과 증세치료법으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또 운동도 열심히 하듯, 마음의 상처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과소평가하지 말고, 충분히 회복할 때까지 스스로를 대접하자. 남보다 나 자신을 먼저 대접하자. 나 자신에게 친절한 동시에 나를 훈육하며, 나의 일상을 조절하자.

과거와 감정에서 벗어난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은,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는 것과 같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듯,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라는 자신에 대한 기초적이며, 본질적인 질문을 비로소 시작하게 될 수 있다.

상처 혹은 과거의 경험은 이제 더 이상 나를 규정하거나,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않으며, 적성에 맞지도 않는 왜곡된 학과선택, 직업, 버팀을 강요하지도 않으며, 감정 또한 나를 붙잡아 두지 않는다.

오늘의 나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현재' 라는 이름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단 하루, 단 한 문장으로 시작하면 된다.

그 문장이 당신을 당신에게로 데려갈 것이고, 당신의 이야기가 곧 당신 자신을 회복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