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흐르게 하되 소진되지 않게 하는 법

내가 글을 쓰고, 춤을 추는 이유

by 후루츠캔디


(이 글은 감정을 흘리되 소진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관계를 해치지 않기 위해 내가 도달한 하나의 결론에 대한 기록이다.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이 두 가지, 사회적 명성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고, 감정과 관계.. 이 둘을 지켜내기 위한 내적 고군분투의 흔적이다. )


감정은 흐르고 싶어한다.


감정을 흐르게 하되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도록 보존하는 방법이 있을까, 나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상대와 굳이 대립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감정을 소통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친구를 만나 수다떠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민이후 관계의 성격이 달라지다.)

이민을 오고 자연스럽게 이 전에 주변관계가 정리되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보다 아이의 성장단계와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고, 중간에 아이들이라는 매개체가 있다보니, 이전처럼 내 감정에 충실한관계를 맺는 것은 무리이기에 자주보는 인간관계 안에서 감정을 소통하는 것이라는 이전 나의 습관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감정을 노출시킬 수록 사생활이 드러나고, 내 주변에 아주아주가까운 사람들의 성향과 성품이 내 관점에서 드러나게 될 텐데, 그렇게되면 상대에게 비친 내 주변 사람들이 왜곡되게 마련이므로 내가 마음말을 할 수록 내 손해라는 것을 내 큰 아이 유치원 시절에 깨닫고, 나의 감정소통과 삶의 방식에 대해 좌절한 경험이 있다.


(관계는 남고 사람은 달라진다.)


아이들이 엄마 없이도 취향에 맞는 친구를 사귀고, 더 이상 아이 친구관계에 엄마가 대동되지 않아도 될 무렵 쯤, 이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지만, 이미 서로 살아오는 5-6년 동안 삶의 색채가 저마다 달라져, 이미 멀어져버린 상대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 이 길이 아닌가 보다." 하며 잠시일지 영원히일지 그 길로 혼자가 된다.


(부부라는 가장 가까운 대화 상대)

나의 경우, 남편과의 이민생활을 시작으로 결혼초보딱지를 뗀 터라, 무의식적 사고의 흐름을 비롯해, 싸움을 불사하고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지만, 이 도 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상대의 생각과 깊이, 방향 그리고 나의 그것 중간에 서로의 과거 경험들로 인한 잡음이 끼게 되면, 아무리 맞서는 모드로 시작되지 않은 대화도 끝은 꼭 굳어진 얼굴과 답답하게 더욱 뭉쳐버린 딱딱한 상태로 대화를 마무리 하게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남편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평균잡아 서로의 대화가 이루어진 지 딱 3일이 지난 후에는, 나의 의도와 진심을 자신의 사고흐름과 구분해 받아들이는 패턴을 보인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내린다.


즉각적 대화보다는 시간을 둔 대화가 통하는 관계도 있다. 그리고 에너지를 아껴야하는 바쁘거나 복잡한 기간에는 대화를 미루는 것이 에너지효율에 유리하다.


(감정을 처리하지 않으면, 나는 망가진다.)

감정이라는 놈이 아주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라면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파도파도 나오는 샘물처럼, 아니 어떨때에는 저 넓은 태평양 같은 감정의 바다가 존재하는 사람임을 인정해야한다. 내 스스로를 일단 받아들이자. 이를 처리하지 않고 두면 마음의 뿌리가 과습되어 본디의 내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까지 훼손시키는 모양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나 자신을 본다면, 건조한 사람보다 매우 효율이 낮은 사람이라 볼 수 있겠으나, 문화적 관점에서는 풍요롭고 섬세하며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깊은 감정 소통과 공감, 즉 감정적 질이 높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질만큼 힘들어진다말이다.



(감정과 관계를 분리해서 생각하다.)

심리 컨텐츠를 다루는 유튜버들이 제각각 하는 말도 모두 사람조심해라, 가까이하지마라, 손절해라 로 왠만하면 심플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 모양인데, 인간삶이 그리 단순하다면 사람들이 왜 그리 관계고민을 하나,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감정과 관계를 한데 묶어 생각해온 나의 방식.



모두 각자 감정소통을 해야 마음의 숨통을 틘다는, 또 혼자서는 이 세상 어느나라든 살 수 없다는 스스로의 니즈가 있기 때문에 ' 감정 그리고 관계' 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 아닐까.



사실, 감정은 감정이고, 관계는 관계이다.


감정소통을 하려면 관계를 흐트러뜨리고, 관계를 생각하려면 감정을 절제해야한다고 내 몸은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관계와 감정의 바운더리란 무엇인가)


바운더리는 감정을 억누르는 기술이 아니다.


내가 감정을 털어놓은 깊이만큼,

상대의 감정도 감당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기준이다.


에너지의 총량을 고려하지 않은 감정 소통은 결국 관계를 소모시킨다.


이 경계를 인식하기 서툴러서 난, 나는 감정소통과 관계를 늘 한데 묶어 다룬데에 내 한계가 존재했엇던 것 같다. 그렇다고 감정에 관계적 맥락을 배제해야한다거나 관계안에 감정을 배제한 채 나와 상대에게 유리하게 이성으로만 대하자 뜻은 아니고, 적절한 바운더리를 두고, 무엇이 주 인지 봐야하는 것 같다. 일방적 관계는 없으므로, 내가 감정을 털어놓은 그 깊이와 넓이만큼 상대의 것 또한 당연히 공평하게 수용해야하기에, 거기에 쓰이는 에너지도 고려한 상태에서 감정의 바운더리를 정하는 것이 바운더리의 기준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오래갈 관계에서는 감정보다 관계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어야한다. 그리고 깊고 깊은 심연의 감정을 드러내야하는 상황에서는 관계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어야한다. (정규직으로 묶여있고 사회적 끈을 잡고 있어야하는 상황에서는 관계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퇴근후에도 없기때문에, 묶어만 둔 채 처리되지 않은 감정때문에 번아웃이오는 것 같다.)


배제해도 되는 관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감정을 맡길 곳은 인간이 아니라,


글, 춤, 그리고 나 자신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