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배운 이야기

인정, 고백 그리고 보호

by 후루츠캔디

성인이 된 후 20년간 나는 스스로를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켜왔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단순히 어려서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법을 누군가에게 배운 적이 없어서, 나에게 위험한 상황이 와도, 마음을 얼려버리고, 아무일 아닌 척 할 뿐, 구체적인 대안이나 상황을 피하는 것, 혹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그것으로부터 나를 지켜나가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다. 상황이 불합리하거나, 누군가의 사사로운 계략에 의해 누구라도 곤란해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나는 단지 '내가 약해서, 혹은 내가 온전하지않아서, 내가 미성숙해서' 상황을 어렵고 버겁게 받아들이는 것이며, 내가 강해진다면 극복해낼 수 없는 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상황과 사람에 밀어붙이며, 그것이 나를 비참하게 하거나 죄의식이 들게 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갔던 사람이다. 상황을 안으로 삼키며 당황하는 나를 자책하며, 또 자책하는 내가 싫어 상황을 얼른 잊고, 또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나 스스로에게 너무나 비겁했던, 내가 나를 이렇게 방치하니, 눈치 빠르게 약한 사람을 잡아 먹고 싶어하는 그 누군가가 내게 와도,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되도록 열어놓는 그런 사람으로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기분나쁜 일은 금방 잊고 사는 단순하고 밝은 이로 스스로를 정의하면서, 이런 성향을 컴프로마이징 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반짝 반짝 빛나는 것들로 내 표면을 덧칠해가며 그렇게 남의 시선을 엄한 곳으로 유도했는지도 모르겠다.이 덧칠이 지독하게도 유효한 것이, 속이지 말아야할 내 자신까지도 속여버리고 만다. 내가 진짜 그 덧칠같은 것이라며 쉽게 믿을 수록, 진짜 나는 작아지고 초라해져 더더욱 눈에 들키지 않으려 강도를 높여가고 또 높여가며, 그것을 번아웃이라 정의한다. 그런 나 자신과 타인들을 자책하거나 타책하고 싶지 않다. 글도 글이지만, 한국과는 다른 캐나다, 그 중에서도 아무런 매력없는 소도시라는 또 다른 사회에서 살아보니, 개인을 그런식으로 위장하게 만든건 '공동의 목표인 경제발전과 대의명분을 위해 개인의 아픔이나 사사로운 감정은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티내지도 말고, 참고 인내하며, 그럴 수록 더욱 굳건히 더 멀리, 더 높게 날 것.' 이라는 대한민국 서울의 암묵적인 압의가 나의 목을 조르고 있던 것임을 그곳을 떠난지 약 15년이후에야 진정 머리아닌 가슴깊이 깨닫게 되기도 하니까... 개인은 오롯히 개인적인 존재라 느낄 테지만, 사실 이 미개하고 연약한 한 개인들은 사회의 끊임없는 지배를 받으며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타고난 것이 50이라면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50이라 믿었었던 나 이지만, 나이가 먹고 또 다른 사회에 속해본 경험으로 체득한 바, 개인으로서의 자아는 사실 1%나 될까 싶다. 사실 '나'라는 개념자체가 허상이며, 육체마저 사회적 환경적 산물에 가깝다는 생각이든다. 그래서 20대때 줄창하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는 원래 정답이 없으며, 나와 너 따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그 과정까지만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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