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엄마에게 오는 전화가 그렇게 반갑지는 않다. 1

캐나다에 살면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

by 후루츠캔디

나의 원가족은 모두 한국에 거주한다. 결혼과 동시에 한국인 남편과 한국인 여성인 나는 캐나다로 이민을 왔으므로, 삶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 과정을 한국에서가 아닌 캐나다라는 타지에서 시작한 나 이다. 이민, 결혼, 출산, 육아, 이 곳에서의 대학학위와 취업 이 모두가 한 개인의 인생에서 크고 중요한이벤트인데, 아무 연고도 없고, 언어도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낯선 이 나라에서 시작했으니, 아마 지금 다시하라면 나는 못했을 것 같다.



누구나 그러하듯 인생은 계획대로 흐르지 않고, 나의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졌다지만 사실상 내 맘대로, 계획대로 되는게 손에 꼽을 정도라면 상당히 감사해야한다. 그 당시 틈만 나면 멍한 기분의 원인을 이제는 똑똑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지 과부하, 정서 과부하, 육체적 과부하...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약 3년간, 결혼, 이민, 출산, 육아의 동시복합체가 내 몸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으니, 틈만 나면 고개가 목 앞으로 빠져나오고, 고개가 숙여지며, 멍한 것은, 생존전략상 당연한 상황이었다. 내 인생은 항상 나에게 충격적일만큼, 나라는 개인에게 할당된 능력 초 이상의 과제가 주어져 나의 의식을 압도하였으며, 나는 또 그 안에서 살아보겠다고 팔도 다리도 허우적거리며, 다민족이 모여 풍기는 냄새도, 지금은 많이 옅어졌지만 10년전만해도 어림 없었던 민족 차별, 인종차별도 눈물범벅된 된장냄새와 함께 꿀꺽꿀꺽 삼키며, 내게 하나 있는 '깡'하나로 2026년 지금, 이 만큼 왔다.

이민 후에, 나도 좀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라면 부끄럽지 않을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니, 뼈를 깍는 노력을 하느라 최선을 다했다. 항상 감정이 문제라 생각했기에 최대한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약해지지 않으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을 자주하지는 않았다. 일 년에 한번하면 많이했을까? 이민 15년차인데도 총 전화나 카톡 횟수를 따져보면 채 5회가 되지않으며, 단 한번도 한국에 방문한 적이없다. 내 스스로를 봐도 여간 쌀쌀맞고 독하지 않을 수 없음이, 무섭게도 한국에 방문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에 있는 엄마는 나에게 연락을 자주 시도했다. 매번 연결에 실패한 엄마에게는 고질적 패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예지몽으로 꾸고 그 다음날 나에게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맞다, 중요한 날, 한마디 예고가 없어도 엄마는 꼭 꿈속까지 쫓아와 내 삶을 직감으로 알아챈단 말이다. 내가 물려받은 엄마의 그 예지몽, 직감이 또 통한다.


그런 날은 실제 어김없이 나에게 중요한 일이 있으므로, 긴장이 풀어지거나, 엄마 목소리와함께 쓸데없이 줄줄이 딸려오는 과거의 상념에 사로잡혀 현실에서 데미지를 입을까봐 연락을 차단하는경우가 있는데, 엄마는 딱 그럴때마다 전화를 시도하니, 실패할수밖에.


이민와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응원이나 해 주신다면 좋으련만, 엄마는 이민간 딸을 아직도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미안한데, 나는 엄마와아빠를이제는 내 가족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전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챙겨야할 내 아들들과 남편이 있는데, 친정식구를 챙기거나, 그쪽 때문에 수시로 마음아파하거나 하면, 그 에너지가 내 '현가족'에게 옮겨가 현재의 행복을 그르칠 것이기때문이다. 서운할 때마다 '그럼 너 캔디 엄마랑 연락 끊어, 엄마 없는 샘 치고 살아' 라는 유치한 말에 대답도 하고 싶지않다. 내가 원하는 것은 거리유지이지, 애처럼 픽픽 삐치고, 내 엄마가 아닌 동생같이 행동하는 나보다 스물 네살 늙은 여자의 행위를 나는 쳐다보고 싶지않다. 자신의 맘에 안들면 '연을 끊자'는말을 어쩜 그리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지, 이미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마음 정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좀 의젓하게 응원해주고 진득하게 거리유지하는것이 그렇게 어렵나? 왜 나이가 들어도 애는 애인가. 인간이 나이에 따라 성숙하는 것 같지 않고, 인간의 감정적 성숙또한 인지능력과 상당히 관련있는 것 같다. 감정이 어려워도 이성적으로 납득이 된다면 감정도 머리로 해석해서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앗으면 좋겠다.


여하튼, 예지몽을 꾸는 것은 좋은데,그렇다고해서 나한테 뽀로로 전화하지좀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쩔거고, 없으면 어쩔건데, 어차피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태평양 멀리 떨어진 엄마 전화를 받거나 도움을 요청할 마음이 없으며, 이상한 말로 불길한 징조를 받기도 싫으며, 나쁜 기분에 해를 입을까두려우니, 그런 불안감 정도는 혼자삼키는 것에 대해 이해할수 있는, 그런 예순몇살의 이 여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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