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장례식, 자존감
엄마의 인생도 예외없이 본인의 예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엄마는 스물 네살에 둘째이모의 중매로 아빠와 결혼을 하고, 그 이듬해에 나를 낳고, 그보다 1년 반을 더 지난후에 내 동생을 낳았다.
아빠는 가장으로서 나름 경제력과 총각때 첩첩히 모아 둔, 그리고 부모에게서 받은 재산을 가진채로 가장역할을 시작했지만, 엄마는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살았다. 스스로를 지키며 살겠다는 모습으로 늘 일을 했으며, 예순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자신의 일을 지키며 살고 있다.
항상 다른 엄마들보다 바빴고, 집에서도 밖에서도 늘 분주했으며, 힘들법도 한데 그러면서도 아빠 뒤에 숨지 않고, 늘 경제력을 유지하던 엄마가 다소 의아하던 순간이 있기도 했다.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집에 있지않을까...아빠가 벌어주는 돈으로도 충분히 살고도 남을거라고 하던데.' 그러면서도 어린 나는 남들은 하나 갖는 선물꾸러미를 둘 셋 실컷 가질 수 있으니 일하는 엄마가 서운하기보다는 늘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일을 해도, 우리에게 사랑이 적은 것이 아니고, 늘 밥도 반찬도 맛있게 해 주시고,집은 늘 깨끗하니 부족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외벌이 남편 눈치본다는 다른 아줌마들 같지 않고, 늘 당당하게 부부사이 힘의 균형을 지키는 엄마를 마음 속 깊이 같은 여자로서 든든하게 여겼던 것 같기도하다. 돈을 버는 것이 유세는 아니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 엄마의 노고, 두분의 힘의 균형에 대한 기억 때문에, 현재 나의 결혼생활에서 자존감을 지키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십년 이상 쌓인 생활기록때문에 누가 뭐란대도 픽 하고 쓰러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니까.
주변의 못된맘을 먹는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본인의 욕심'이라느니, '친정의 돈을 보태줘야하나' 등의 말로 엄마를 남몰래 질투를 섞어 비난하기도 했겠지만, 본인들의 자격지심 투사를 내 알바 아니며, 우리 엄마는 그런 종류의 이유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엄마 친정의 각 식구들은 모두 자립상태였고, 엄마보다 더 부지런했던 외할머니도 경제적 고민없이 사셨으니 돈의 액수보다 버는 행위자체에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요구받은 적도 없고, 요구한 적도 없이 외갓집 식구들은 그렇게 늘 부지런했다. 나도 엄마를 닮아 '결혼 후에도 남편이 경제력이 있든 없든, 내 부모의 재산이 얼마든 관련없이 내 일은 나를 지키는 수단이자, 성인 사람으로서 꼭 갖춰야할 충분조건같은 것'으로 자리잡은 것이, 10%정도는 내 가슴을 조이기도 하다만 , 대부분은 그 생각이 말 그대로 나 자신을 지키기도 하는 것 같다.
엄마의 엄마는 엄마가 서른 두 살이 되던 해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우리가 어릴때에는 매주 귀여운 손녀들을 보여주러 외할머니댁에 방문하다가 어느날 부고소식을 듣고 외갓집에 간 것을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7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난 엄마는 태어났을때부터 이미 나이 든 엄마에게서 자랐고, 언니들을 엄마삼아, 오빠들을 아빠삼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세 살 무렵이며 엄마가 채 서른이 되기 전, 외할아버지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셨으니 엄마에게는 부모님을 떠나보낸 경험이 서른 두 살에 벌써 두번째인 모양이다.
마흔살이 된 지금의 나는 두 부모님이 모두 건강하게 살아계신다. 남들보다 젊은 나이에 결혼하신 그들의 큰 딸로 태어난 나로서는 감히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슬픔이며 상실이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내가 워낙 어린탓에 정황을 알 수 없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 방에서 들렸던 곡소리와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바로옆방에 친척언니들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던 어린 나에게 가슴속 울림으로 남아있다.
엄마는 거의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울고 있었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아이처럼 소리를 내며 울었다. 어렸던 나도 지금의 나도 그 마음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첫번째로는 엄마의 마음에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고, 두번째로는 그 날 처음으로 엄마도 원래는 엄마가 아니라, 누군가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조금 옅본 느낌이 들었었다.
나는 생각한다.
내 엄마가 나보다 어른인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이 것이라고. 서른 두 살에 부모를 모두 떠나보낸 딸로서의 시간. 그 감정만큼은내가 아직 모르는 세계이다.
내 결혼 때 40대 후반이던 엄마와 현재 40인 나의 인생 그래프를 놓고 볼 때, 엄마만의 가장 큰 경험은 서른 둘에 부모님을 모두 하늘로 보내신 것. 내가 모르고 엄마가 아는 감정 중 가장 큰 것은 이것이다.
물론 엄마는 이민이라는 과정을 겪어본 적 없으니, 이민 15년차 딸래미의 삶과 감정, 생각을 이해할 리 없지만 말이다.
내 부모를 언제든 볼 수 있는것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건 분명 다를거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한국에서 캐나다까지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이제는 받도록 노력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