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발동

해외에서는 같은 언어를 쓰는 것 만으로도

by 후루츠캔디

아이스링크 앞에 두 아들들의 채비를 마치고 서 있었다. 헬멧과 장갑을 다시 확인하며 아들들의 이름을 부르며 잘 타고 오라고 격려해주고 있는 일상의 평범한 순간이었다.


그 때, 누가 빤히 놀란 듯 내 얼굴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열살이 채 되지 않아보이는 한 동양여자아이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동그란 눈망울이 조금은 긴장된 듯, 그러나 확실한 기대를 담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이 종종 찾아 온다. 같은 언어, 같은 얼굴의 결, 혹은 미묘한 문화적 흔적만으로도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나는 이것을 '거울의 발동'이라고 부른다. 자신과 닮은 존재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는 신호를 확인한다. 그 확인은 단순한 반가움을 넘어, 마음 속 안정감을 준다.


한국에서는 유사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훨씬 촘촘하다. 나이, 학교, 직업, 취미, 관심사에 성격까지 겹쳐야 마음이 열리고, 마음의 거리를 좁히지만, 해외에서는 그 기준이 바깥으로 이동한다. 인종, 국적, 언어 단 세 가지 조건만으로도 두 사람은 금새 '우리'가 된다.


그 아이의 눈빛에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자신을 발견해 줄, 혹은 자신이 속할 범주를 찾고 싶어하는 작은 긴장말이다. 나는 미소를 지어 주었고, 그 순간 아이의 긴장이 조금 풀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의 시선은 나와 내 아이를 향한 단순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시선이었음을 느낀다.


문득 생각이 이어졌다. 사람은 왜 이렇게 자신과 닮은 존재에게 끌리는 걸까?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친근감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을 납득시키는행위이다. 타인의 존재감을 통해, "나는 이곳에 있어도 된다."는 신호를 받고, 마음을 놓는다.


그 신호가 충분히 강하면,사람은 상대적으로 우리와 다른 존재에게는 반대로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그 때 우리는 흔히 '차별' 이라는 단어를꺼낸다. 하지만 모든 거리를 차별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판단이다. 명확한 구조적 제한이나 제도적 장벽이있는 경우만을 차별로 정의 할 수 있다. 그 외의 미묘한 인간관계의 긴장은, 사실 자기 보호의 신호일 수 있다.

나 역시 이민 초반에는 그런 과정을 거쳤다. 타인의 시선이나 행동을 쉽게 '차별' 이라는 이름으로 단순 이름표를 붙이며, 내 마음을 방어하려 몸부림쳤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가, 내가 그렇게 질투나나, 누가 자신들 자리 뺏는데?' 하는 작은 심리적 장치, 일종의 자기만족적 암시, 스트레스 상황에서 스스로를 살리고자 내뿜는 자가 도파민 치료가 부분적으로는 나를 지켜준 것 같기도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내가 귀여운 것이, 영어를 매우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단순 시험점수가 잘 나왔던 것 뿐, 문화적 이해는 맹구리였고, 사람의 악한 본성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나 자신의 불안을 합리화하는데 나도 모르게 집중했던 것이다. 이민을 막 왔던 20대때만 해도, 캐나다에서의 삶이 '한국에서의 삶' 이라는 내 메인삶의 곁가지쯤 되는, 그저 잠깐동안의 외국생활 즉, 일탈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내 인생 40년 중, 반절과 가까운 시간이 이 곳 캐나다에서 흘러가게 되었다. 과거 한국에서의 삶은 더 이상 내 삶의 중심이라기보다는, 내 성장과정, 나를 형성한 한 조각이 되어버렸다.


그 아이 역시, 어쩌면 비슷한 경계위에 서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 지, 누구와 함께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며, 나를 거울 삼아 자신을 확인하는 순간 말이다. 나는 단지 아이를 안심시키는 웃음을 지은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함께 바라보는 행위였을 지도 모른다.


아이스링크 앞의 짦은 순간, 나와 그 아이 사이에는 언어와 나이를 초월한 작은 다리가 놓였다. 그 다리는 '닮음'과 '존재확인'을 통해 서로를 지켜주는, 인간에게만 허락된 은밀한 연결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연결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자기 이해, 타인과 나 사이의 경계를 조금 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