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소개팅의 전말

100번이 넘는 소개팅에서 결정사에 이르기까지

by YouOn

이렇게 알콩달콩 리얼리티 체험을 하기까지 지나온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전편에 이어서)


한국에서 결혼 적령기이자 일명 '노산의 끝자락 나이'로 일컬어지던 나는 불안에 휩싸여, 기계처럼 사람을 만났다. 최근 몇 년 간 반복된 나의 일상, 일-집-소개팅-일-집-소개팅. 주말이 없었다. 하루에 세 탕을 뛴 적도 있었다. 계곡에 넓게 고기잡이 그물을 펼치듯,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마음에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얼굴만 봐도, 심지어 카톡 첫인사만 해봐도 느낌이 올 정도였다.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만나기 전에 통화를 제안하며 대화를 먼저 해보고 아예 만나지도 않았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반경 몇 km 안 80년대생 남자들은 거의 다 만난 것 같은데... 아무리 만나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도무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어쩌다 누군가에게 단 10%, 아니 1%의 마음이라도 생기면, 그 희미하게 생긴 마음, 그 소중한 것을 꼭 부여잡고서 주문을 외웠다. '그래, 좋아 죽겠어서 결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살다 보면 좋아지겠지,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그리고 나도 부족한 점이 많은데, 너무 완벽한 사람을 기대해서는 안 되지.' 그렇게 작은 호감을 큰 사랑으로 발전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참 많은 노력을 했다.



아예 첫 만남에 자기 건물로 초대하여 장밋빛 미래를 그려주던 건물주, 자산과 매출 내역을 투명하게 보여주며 같이 여유롭게 살자던 사업가, 증여받은 반포 아파트로 신접살림을 이야기하던 포르쉐와 벤츠를 번갈아 몰던 골프광 남자... 세상에는 이렇게 돈 잘 버는 사람도 많고, 돈 많은 사람도 많았구나. 나만 마음을 고쳐 먹으면 되겠구나, 내 삶이 편해질 텐데 조금 맞춰주는 건 일도 아니지. 이런 '애먼' 마음으로 또 열심히 '헛된' 노력을 해보았다.


그런데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많이 좋아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목소리에, 얼굴에, 글에 숨길 수 없이 다 티가 나서 도저히 연기를 할 수가 없었다. 안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나오는, 무척이나 사무적인 로봇 같은 나의 모습... 매주 포르쉐를 타고 픽업하러 와도,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100평 펜트하우스를 보여주며, 명품 사고 관리받고 다니며 살라는 말을 들어도, 정말이지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등의 관심도 없어서 사본 적도 없는 명품을 위해서, 다녀본 적도 없는 피부과를 위해서, 지금 내가 나의 소중한 인생을 걸려고 하는 건가?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면 과연 행복할까?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 이렇게 살면 대체 무슨 소용이지?



언젠가부터 사랑 따위 믿지 않았다. 한 현실주의자인 내 성향 때문이기도 했고, 몇 번의 배신과 상처로 얼룩진 경험, 주위에서 들려오는 바람과 이혼 같은 소식은 나를 냉소주의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 장사, 원투번 해보나. 그 장사, 이제 지겨워 더 이상 하고 싶지도 않다. 화내고 싶지도, 싸우고 싶지도 않다. 만남은 지겹고, 이별은 지쳤다.


옹졸한 마음, 잘 알아보지도 않고 내리는 판단, 내 의식의 흐름대로 결론 내어버리는 성급함, 이 모든 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할 텐데 무슨 또 연애를 하겠다고. 그리고 사랑이 밥 먹여주나, 밥 먹여주는 건 돈이지. 사랑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되겠나, 결국 남는 것은 물질이지. 이런 생각들로 비장하게 무장한 채 조건으로 고르고 골랐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하나 잘 될 일도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자기 객관화가 안 되었던 걸까. (아니,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는데 아무렇게나 만날 수는 없지 않나. 나도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를 지켜보던 친한 지인들은 속이 터져했다. 집 있고, 차 있고, 벌 만큼 벌고, 모을 만큼 모았는데, 너 정도면 충분히 잘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조건을 보고 만나는 거냐고.



나의 까다로운 조건들 앞에서 혀를 내둘렀던 친구와 지인들이 '넌 소개팅으로는 안 된다며, 결정사가 잘 맞을 것 같다'라고 팩폭을 날렸다. 나 역시도 내가 항목별로 만들어놓은 삼엄한 체크리스트를 보며, 나는 결정사가 제격일 것 같다고 확신했고, 씩씩하게 결정사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웬걸, 상담사가 회원들의 빼곡한 정보를 담은 엑셀 파일을 보여주는데, 갑자기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결정사에서 설득 전화는 계속 이어졌고, 내가 미동도 하지 않자 자기 딸 같아서 너무 안타까우니 그냥 만나보라며 몇 번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도 했다. 결정사 사람들은 그래도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희부윰한 희망을 품고 나갔는데 역시 여기에도 없었다,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구 밖에 있는 것인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