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부록] 발리에서 생긴 일 2 - 동심(童心 同心)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천진한 아이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포개다

by YouOn

그렇게 잔잔한 와인 한 잔에 부끄러움을 녹여내며, 우리의 아이스브레이킹(?)이자 워밍업(?)이 어느 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전편에 이어서)


새벽이 깊어지며 서서히 밀려오는 졸음과 다가올 소중한 하루를 망치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우리는 드디어 잠을 잘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도 서로를 보며 무척이나 부끄러워했지만, 우리 사이에 놓인 건 통통배 하나뿐. 그 배에 사이좋게 올라타 우리 둘은 이제 '한 배를 탄 사이'가 되었다. '이불 밖은 위험해' 같은 말이 이렇게나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우리는 방 안을 감돌던 차가운 에어컨 기운을 피해 너나 할 것 없이 하얗고 포근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가 그 이불속의 하얗고도 까만 세상에서 예고 없이 조우했다. 곧이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서로에게 파고드는 우리 둘. 옆으로 눕자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던, 갈 곳 잃은 두 손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손은 여기에 두는 거야'라는 의미로, 손을 잡아서 서로의 몸 위에 얹어둔다. 마치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익숙한 체취와 세상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서로를 꼬옥 껴안아본다. 두 조각의 퍼즐이 맞춰지듯, 맞춤복을 주문한 듯, 포근하게 잘 맞는 그 느낌이 너무나 완벽하다.


다시는 사랑 같은 건 안 하겠다던 굳은 다짐은 순식간에 이렇게 말랑말랑한 인절미가 되어버린다. 반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안기고 싶던 그 커다란 품이 지금 나에게 다가와 나비의 날개처럼 품어준다.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순간이 현실이 된 지금, 이 소중한 순간을 가슴깊이 박제하고만 싶어진다. 눈꺼풀은 감겨있는데 심장은 두근대서 쉽게 잠에 들 수가 없다. 그렇게 아늑하고 부드러운 공간에서 하나가 되어 우리의 첫날밤을 보냈다, 아니 지새웠다. 진짜 잠에 빠져든 시간은 아마 고작 두 시간 남짓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의 품 안에서 그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으므로.




다음날, 푹 잠들지 못해 무거운 머리와 달리, 몸은 이온음료를 마신 듯 무척이나 가벼웠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사이좋게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휴양지에서 누군가와 같이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는 기분이 이랬구나. 너무나 오랜만이라 마치 전생에서나 느껴봤던 것 같은 그 기분이 참으로 다정다감했다. 우리는 볕 좋은 테이블에 앉아 어제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아침을 먹었다. 여전히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웃음을 참아야 하는 고난도의 미션이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설레는 추억을 고이 접어둔 채, 일주일 동안 묵게 될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 탔다.


그의 리스트에서 내가 골랐던 여덟 번째 숙소는 꽤 긴 시간 북쪽으로 이동해야 나오는 곳이다. 택시 안에서 두 손을 꼬옥 잡은 채로, 처음 만난 날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의 대화. 그 흐르는 물결이 깊은 안정감과 묘한 흥분감을 동시에 선사해 주었다. 이윽고 외따로 떨어진 우리의 리조트에 도착했다. 새로 생긴 곳인 데다가 도시 자체도 신개발을 하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정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만 자체적으로 흘러가는 자급자족의 공간 같아 보였다. 다양한 룸 타입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한 숙소 내에서 트리하우스와 오션뷰 룸을 반절씩 예약했었다. 하여, 첫 사흘은 실제 나무로 만든 통나무 다락방에서 속닥속닥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소년소녀가 되어 예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 진고동색 통나무로 만들어진 방은 참으로 아늑했다. 누우면 바로 앞에 보이던 푸릇푸릇한 나무들을 눈에 가득 담은 채, 우리는 또 재잘재잘 이야기를 해나갔다. 정말이지 세상에 우리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 동심의 트리하우스에서 느꼈던 세상 끝의 고요함과 함께, 이 날은 조금 일찍 잠에 들었다. 이제는 조금은 익숙해진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고서. 어두컴컴한 나무 안에서 겨울잠을 청하는 다람쥐가 된 것처럼 단잠에 빠져들어갔다. 잠에 든 지 얼마쯤 지났을까. '톡톡' 통나무 지붕을 두드리는 귀여운 빗소리가 들려오더니 금세 '솨아솨아' 세찬 빗줄기로 바뀌었다. 그가 옆에 있어서인지 그 소리마저 자장가로 들리며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후두두' 떨어지는 빗소리 이불 삼아 곤히 잠들고, '짹짹짹' 지저귀는 새소리로 눈뜨던 아침.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신비로운 초록빛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산뜻한 숲내음이 이내 발코니로 발길을 안내했다. 온몸으로 싱그러운 자연의 기운을 느끼며, 이 순간을 영상으로도 담아야겠다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와 오빠 이거 영상으로 담아야 해" 하니 옆에 서서 발코니 문을 열어주는데, "그럼 오빠 손이 보이잖아" 한 소리 듣고서 곧바로 쥐 죽은 듯 바닥에 엎드려서 조용히 문 열어주던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열려라 참깨!' 저절로 열리는 재미있는 자동문의 비밀을 간직하고서, 함께 숲길을 지나 조식을 먹으러 라운지로 향했다. 빗방울을 머금은 연둣빛 나뭇잎들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갓 서로의 마음을 생생하게 확인한 우리 두 사람 같았다.



영화 세트장 같이 너무나 반듯하고 깔끔하게 꾸며져 있던 민트빛의 라운지. 우리는 그 한가운데 앉아서 세상의 모든 예쁜 것들을 차분히 눈에 담았다. 매일 누가 이렇게 맛있고 예쁜 브런치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던, 정말 천국이 따로 없던 호캉스가 시작되던 두 번째 날이었다. 예쁜 바다랑 하늘 보면서 맛난 것 먹고, 서로를 관찰하고, 맛난 것 먹고, 서로를 관찰하고. 우리는 각자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재미있는 탐구 대상이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로 얼굴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와 같은 천진한 마음을 포개며 서로의 열렬한 탐구자가 되어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