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부록] 발리에서 생긴 일 3 - 시절인연

반대인 우리가 끌리는 이유를 넘어, 상생할 수 있는 이유

by YouOn

우리는 아이와 같은 천진한 마음을 포개며 서로의 열렬한 탐구자가 되어갔다... (전편에 이어서)


우리의 열렬한 탐구활동에 챗 지피티 녀석도 일조했는데, 철저한 현실 고증을 해주는 덕에 한바탕 웃음을 짓는다. 이 녀석은 객관적인 업무 처리를 넘어서, 사람처럼 심리 상담에 사주궁합까지 봐주는데 이미 그 명성이 자자하다. 나는 사주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재미 삼아 첫 사주궁합 결과를 받아봤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나도 그도 사주 내용의 90% 이상이 부합하는 것을 보아하니, 역시 용하다(?)


궁합 결과 또한 그 '적확한 현명함'이 웃음을 자아낸다. 기본적으로 그는 물(水)이고, 나는 금(金)인데, 금이 물을 생(生)하므로 (金生水), 여자가 남자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 형태라고 한다. 또한, 남자는 감정형, 여자는 이성형인 정반대의 존재로서, “이성적 여자가 감성적 남자를 살리고, 감성적 남자가 이성적 여자의 마음을 녹인다.”라고 야무진 총평을 내린다. 이에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면 서로의 인생을 끌어올리는 아주 강한 '상생 궁합'이라고. 즉, 서로 다르지만 완벽히 보완되는 궁합, 장기적으로 든든한 인생 동반자형 커플이라고 한다.


우리가 반대인 것이 이뿐만이랴. MBTI도 그는 해맑고 자유로운 영혼 ESFP(ENFP), 나는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 ISTJ이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도,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그는 '에겐남', 독립적이고 강단 있는 나는 '테토녀'라고 볼 수 있겠다. 성격적으로 보면, 사근사근한 강아지와 시크한 고양이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발리에서 동고동락하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참으로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 중의 하나가 '동적인 남자'와 '정적인 여자'로서, 그는 몸을 움직여야 행복하고, 나는 가만히 있어야 행복한 사람이다. 어쩜 이렇게 반대일까!


더우면 풍덩 입수해 수영하는, 흐르는 물 그 자체인 사람


그는 말 그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다. 아침에 눈 뜨면 해변가를 조깅하고, 돌아와서도 내가 일어나기까지 방에서 조용히 맨손운동을 했다. 하루 중에도 틈만 나면 팔 굽혀 펴기를 했고, 더우면 그저 물에 풍덩 들어가 헤엄을 쳤다. 부티크 리조트라 그런지 gym이 부실했는데, 그런 소꿉장난 같은 공간에도 함박웃음 지으며 운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어느 곳이든 머리만 대면 어느새 새근새근 잠에 들곤 했다.


반면, 내가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딱 요가와 필라테스, 산책까지다. 고강도 운동의 필요성을 익히 듣고, 나도 언젠가 나의 루틴에 그런 활동들을 욱여넣어보았지만,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너무나 힘이 들고 피곤했다. 내가 운동을 하는 것인지, 운동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시들어갔다. 하지만, 다시 정적인 활동에 집중하였더니, 나는 나만의 리듬을 되찾고 심신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우스갯소리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면서 뱁새가 황새 따라가지 말자고 다짐했었더랬다.


발리에서도 그가 '열심히' 움직이는 동안,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저 부지런한 그를 요모조모 관찰하면서. 그가 조깅하고 올 동안 아침 늦게까지 곤히 잠을 잤고, 물에 뛰어들어 수영할 동안 선베드에 가만히 누워 해달 같은 그를 바라보았고, 아령을 들었다 놨다 팔을 굽혔다 폈다 하는 동안 얌전히 옆에 앉아서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곤 했다.


선베드에 가만히 앉아서 그를 관찰하는 것이 곧 나의 일상


아직도 내 가슴속에는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의 대화가 살아 숨 쉬는데, 그때 나를 제일 반갑게 하던 대목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취미였다. 야구, 축구부터 골프까지 공으로 하는 건 모두 다 잘하는, 다부진 체육인인 그의 요즈음의 취미는 다름 아닌 '산책'이었다. 이 어찌나 반가운 일이던지 나는 탄성을 지를 뻔했다. 그가 서핑이나 마라톤 같은 걸 좋아하면 어쩌지, 하고 내심 걱정했는데, 산책이라니! 산책이라면 나도 잘할 수 있지!


그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땀을 흘리며 액티브하게 하는 운동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공원이든 숲이든 호숫가든 자연 속에서 걷고 또 걸으며 많은 걸 비워내는 시간이 좋다고. 그러면서 좋은 사람이 생기면 같이 손 꼭 잡고 산책을 하고 싶다는 작은 희망도 수줍게 내비치던 그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그와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마음이 편안한 관계가 좋다던 그의 이상형에 찰떡같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 같다고 '저요 저요!' 손을 들어대면서.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리듬이 있고, 선호가 있고,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그럼에도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며 존중해 주던 그가 있어 그 다름이 고유하게 보존되곤 했다. 그는 자고 있는 나를 깨워서 같이 아침 조깅을 하러 가자고 하기보다는, "잠은 많이 자야 좋아. 푹 자, 유온아" 하면서 이불을 덮어주며 더 자라고 토닥여주고, 서핑이나 마라톤 같은 운동을 해보라고 권하기보다는, 요가와 필라테스를 하는 나를 보며 "유온이는 유연성이 좋아. 대단해. 나도 배우고 싶어."라고 한다. 또, 같이 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자고 하기보다는, 물을 무서워하는 나를 안고서 물속을 거닐며, "아쿠아로빅이 무릎에 부담도 안 가고 참 좋은 운동이야."라고 한다. 이런 배려와 존중이야말로, 분명 거의 모든 것이 반대이지만, 우리가 '상생'하고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사뭇 동적인 그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더 팔팔한 2, 30대에 우리가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못 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고. 시기적으로 지금, 당신을 만나서 아주 바람직한 것 같다고. 나이가 들어가며 비록 몸의 에너지는 예전에 비해 떨어졌을지 몰라도, 오히려 마음의 에너지는 충만해진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더해가는 농익은 와인처럼, 마음의 여유와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무르익은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지금이 참 좋다. 어느덧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내 마음을 잔잔하게 물들여온다. 무릇 인연의 시작과 끝도 모두 자연의 섭리대로 그때가 정해져 있다. 거의 모든 것이 반대인 우리가 현생에서 이렇게 마주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생각하니, 이 인연이 더없이 소중해진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며, 만남은 시절인연인가 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