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부록] 발리에서 생긴 일 4 - 우붓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상처를 감싸며 아껴주고 싶은 사람

by YouOn

거의 모든 것이 반대인 우리가 현생에서 이렇게 마주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생각하니, 이 인연이 더없이 소중해진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며, 만남은 시절인연인가 보다... (전편에 이어서)


더없이 소중한 인연, 한시라도 떨어지지 말자며 우리는 딱풀처럼 달라붙어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는 밴을 빌려 택시 투어를 계획했다. 내게 발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뭐니 뭐니 해도 푸릇푸릇 계단식 논밭이 일품인 우붓(Ubud)이었다. 그리고 그 우붓에서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Monkey Forest로 향했다. 가는 길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무척이나 궁금했던 그의 과거에 대해서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둘씩 벗겨내는 작업이었다. 다년간의 경험과 배움을 통해, 내 과거에 대해서는 입 꾹 다물고 아무 말하지 않는 '불공정거래'였지만!



그의 컬러풀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며, 가끔 몇몇 순간에서 질투심과 아쉬움이 뒤섞인 쓰나미가 밀려오며 마음 한 구석이 쓰라리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받아들일 만했다'. '그래도 그간 내가 많이 성숙해졌구나!'하고 내 자신을 기특해하면서, 내 마음속에 그의 과거를 차곡차곡 곱게 접어두었다. 그를 처음 만났던 날, 그의 지난날을 들으며 어느새 나는 그를 보듬어주는 여자가 되어 있었는데, 이 날 역시도 '대체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그의 과거'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너른 바다가 되어 그를 포옥 안아주고 있었다...


그래도 한 번은, 토라진 척하며 심각하게 "오빠, 그만 말해!" 하고 나의 울적한 심경을 토로하자, 그는 얼굴이 빨개져 어쩔 줄 몰라하며 "응...? 원숭이 한 놈 잡아야겠다ㅠㅠ"고 바깥에 있는 애꿎은 원숭이을 '잡았다'. 무척이나 당황하였지만 애써 웃음 짓던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나의 토라짐이 한순간에 풀리고 말았다. (역시 나는 콩깍지 씐 게 틀림없다는 게 이로써도 밝혀진다.)


원숭이 한 마리?저요?원숭이 어리둥절!

나는 나의 아픔, 손에 심한 화상을 입었던 일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한 달간 병원에 있으면서 두 손에 붕대를 감고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있었다. 매일 거즈 드레싱을 하며 쓰라린 고통을 참아내고, "두 손 자를 수도 있어요" 라는 의사의 무시무시하던 말을 들으며 마음도 아프던 때였다. 당시만 해도 미적으로는 어찌 되어도 괜찮으니, 기능적으로만 살려달라고 얼마나 기도를 했던지 모른다.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는지, 얼마간 시간이 흐르니 다행히도 구부려지던 손가락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던 날들.


사연 깊은 나의 두 손,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약간은 얼굴이 일그러지기도 하던 나의 두 손. 이제야 처음으로 나의 이 흉터진 두 손을 그의 눈앞에 자세히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내 두 손을 꼬옥 잡고서 "유온아, 불 근처에도 가지 마. 유온이 평생 요리 같은 거 안 해도 돼. 오빠는 스무디만 먹고살 수 있어. 오빠 당근이랑 사과 넣고 스무디 참 잘 만들어." 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 예상치 못한 큰 감동을 받았다가, 이내 너무 웃겨서 "오빠가 토끼냐고. 당근만 먹고살게!" 하며 꺄르르 웃어버렸다.



우리는 모두 생채기와 아픔을 끌어안고 이만큼 살아왔다. 그 상처를 감싸주며 아껴주고 싶은 사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당신, 여기까지 오느라 참 고생 많았어요.'라는 말을 짙은 눈빛으로 전하며, 그와 나는 우붓의 원숭이를 앞에 두고 그렇게 서로의 지난 아픔까지 사랑했다.




우붓은 교통 체증이 극강인 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보도는 보행자 친화적이지도 않았다. 원래도 없었지만 더 닳아져 버린 보도블록은 겨우 끄트머리만 남아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손을 꼬옥 잡고 찰싹 달라붙어서 그 좁은 인도 겸 도로를 아슬아슬 걸어 나갔다. 그 틈 사이사이로 유독 많이 보이던 표지판과 대문. 그리고 표지판과 문만 보면, 얼른 가서 앞에 서보라고 하는 그 덕분에, 나는 온통 표지판과 문 앞에 선 예쁜 사진들을 얻었다. 나에게 그 모든 표지판들은 행복의 길을 일러주는 이정표 같았고, 그 모든 문들은 행복으로 향하는 마법의 문처럼 보였다.


저 문을 열면, 저 표지판대로 따라가면
어떤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지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나아간다는 것
그것 하나면 충분하지

인생이란 그런 거지,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


이제껏 그토록 많은 혼행을 다니면서는 언제나 혼자 찍은 셀카만 얻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나를 찍어주는 '일 잘하는 사진사'가 내 옆에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나의 여행은 벅차오르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제 많은 것을 욕심 내지 않는다. 그저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물리적일 필요도 없다. 그 아득히 먼 존재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이 이토록 평화롭고 안정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다. 인생의 방향 설정을 할 수 있었던 발리 여행에서 우리는 어느새 '행복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