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가 수면인 남자와 셀카인 여자가 만나
인생의 방향 설정을 할 수 있었던 발리 여행에서 우리는 어느새 '행복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전편에 이어서)
행복은 '선택'이라고 한다. 어디 행복 뿐일까. 우리는 '감정'이든 '습관'이든 '사랑'이든,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발리에서 우리는 '행복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며, 매일 행복을 '선택'하기로 했다. 우리의 행복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같이 클럽에 가는 것이었는데, 마침 아주 절묘한 환경도 세팅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묵고 있던 자급자족 도시 안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는데, 그중 숙소에서 3분만 걸어가면 거대한 비치클럽이 나왔으니 말이다. 일명 '클세권'에 머무는 우리에게 밤마다 내적 흥을 돋우던 EDM은 잔잔한 명상음악으로 다가왔다. 가슴 속 공명을 일으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치 참새에게 방앗간 같은 존재였다. 제 집 드나들 듯 몇 번을 체끼라웃한 우리의 나와바리가 되어주었던 그곳.
한 번은 숙소 라운지에서 샴페인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이미 거나하게 취해서, 분명 클럽 분위기나 체크하자고 가볍게 밤마실을 나갔다. 그런데 내가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이에, 그는 어느새 클럽의 한가운데 베드를 점유하고 곧바로 잠에 들어버린 것이 아닌가. 원래도 머리만 대면 새근새근 잠에 드는 그는, 취하면 그 속도가 더 빨라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베드 차지(bed charge) 혼자서 다 소진하느라, 나는 샹그리아, 레드와인, 프로세코 같은 갖은 알코올부터 피자, 샐러드, 파스타까지 혼자서 15만 원어치를 다 먹는 기염을 토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이건 저녁 안 먹고 온 네다섯 명의 그룹이 먹을 양인데, 이미 푸짐하게 저녁까지 먹고 온 여자 혼자서 말 그대로 먹방을 찍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입에 술 한 모금도 일절 대지 않는 나인데, 이 날은 꿈 같은 분위기에 취했는지 이 모든 것이 거뜬히 가능했나 보다. 취하면 셀카를 찍는 나는, 아기처럼 곤히 자고 있는 남자를 옆에 두고 또 그 '주사'를 부렸다. 말 그대로 '주사가 수면인 남자와 셀카인 여자'가 만나, 이날 밤의 나의 휴대폰 갤러리는 온통 자고 있는 그를 배경으로 한 나의 해맑은 셀카로 가득 채워졌다. 마치 잠든 아기를 보며 '얘를 언제 키우지'하며 현실적인 사고 회로를 돌리듯, 곤히 잠든 그 한 번 바라보고, 테이블에 펼쳐진 9첩 반상에서 먹방 한 번 찍고, 소화시킬 겸 무대 한 번 올라가는 일을 반복하며, 혼자 야무지게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나의 주사가 셀카가 된 이유는,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술을 마시면 자기애가 강해져서 나도 모르게 셀카를 찍은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긴장이 풀어지고 정상적인 사고가 희미해져 가는 동안 나는 나름 나를 기록하는 방어의 행위를 취한 것이다. 무릇 사진을 찍으면 나의 얼굴 뿐만 아니라, 주변 상황, 시간, 장소 모든 것이 나오니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마치 타임스탬프처럼 면밀히 증거를 남겨놓는 것이다. 술을 마셔도 이렇게 편도체는 열일하는 나란 사람...
그러면서 그 와중에 그의 주사가 수면이 된 이유나 기대효과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았다. 술이 잘 받지도 않아 원래 일상에서는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 그렇다면, 그 역시도 나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의 행위가 수면으로 나온 것인가. 몇 모금이라도 마시면 이렇게 푹신한 곳에서 곯아떨어지며 알아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적어도 밖을 활보하며 술 때문에 사고 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럼 걱정 하나는 사라지는 것인가. 무수한 셀카를 찍다가 심심해지면 무대에 올라 명상음악에 몸을 맡기며 정신 수양을 실천했다는, 발리의 어느 비치클럽에 혼자(?) 간 한국 여인의 처연한 전설이 전해진다.
어느새 훌쩍 다가온 클럽 종료시간에 맞춰서 나는 얼마간 잠들어 있던 그를 부드럽게 흔들어 깨웠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아니 잠자는 비치클럽의 아저씨는 그렇게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다가 원기를 한껏 충전한 채 일어났다. 그리고선 '그의 곁을 알뜰살뜰 지키던' (사실은 그를 두고 혼자 놀러 나갔던) 나에게 고맙고 미안해하며 3차를 위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3차는 다름 아닌, 3분만 걸어가면 나오는 우리의 방. 나의 달아오른 흥과 그의 원기 충전이 콜라보되어 우리는 어느 장병들보다도 가열차게 밤 거리를 행군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우리는 그 시절 추억의 한국 가요들을 BGM으로 깔아놓은 채, 설렘 한 스푼 감성 충만한 우리만의 프라이빗한 밤의 문을 열었다. 디제이를 흉내내며 서로의 신청곡을 받았고, 서로를 꼭 껴안고 그 주옥같은 노래들을 들으며 추억의 다리를 건넜다. 그의 신청곡, 포지션의 <I LOVE YOU> 같은 잔잔한 발라드를 들으며 서로를 아련한 눈망울로 바라보기도 했고, 나의 신청곡, 스페이스 에이의 <섹시한 남자> 같은 도파민 터지는 댄스곡을 들으며 술기운에 끼를 부리다가 꺄르르 웃기도 했다. 밤바다의 철썩이는 파도 소리, 까만 하늘의 반짝이는 보름달, 귀에 걸려 내려올 생각을 않던 우리의 입꼬리, 방 안을 가득 채워 흘러넘치던 엔돌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우리는 오늘도 '행복 선택하기'를 완료했다. 정말이지, 참 행복한 밤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