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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금 Sep 20. 2018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다

나의 집단상담 일기 03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좋죠?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어? 하는 안부 인사를 건네듯 수업의 첫인사를 대신한 물음이었다. 누구에게 물으신 건지 몰라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보니 모두들 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양 옆을 둘러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상의 안부와는 다른 안부였다. 누군가를 특정하고 물은 것이 아니라는 점. 어떤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게 아니라는 점에서였다.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합친 숫자만큼 살아오면서 오늘 날씨 좋지? 어떻게 지냈어? 에 대답하는 방법은 익히 보고 들었어도 기분이 어때요? 라는 말에 대답하는 방법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교수님을 바라봤다. 교수님께서 천천히 말씀을 이으셨다.     


   “집단상담은 개인상담과 달라요.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대일 형태의 상담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집단상담에서는 집단원들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접촉, 교감을 통해 내 몸이 반응하는 바를 지각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는 앞으로 지금-여기에만 집중할 거예요. 내 몸의 감각과, 내 마음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한 훈련이에요.” 
    갑자기 시작된 수업 설명에 몇몇 학생들이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 적으려 급히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노트는 반드시 넣으세요. 그것은 방해만 될 뿐이에요.” 펜을 찾던 손들이 허공에서 멈췄다.

    “우리는 필기를 하지 않아요.”


   예상하지 못했던 물음 뒤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뒤따랐다. 노트를 가지고 다닐 만큼의 성실함이 없었던 나로서는 사실 꺼낼 노트도 없긴 했지만 필기도 하지 못하게 하는 수업이라니. 고백건대, 마음에 쏙 들었다.


   “첫 시간이니 몸의 감각부터 시작해보지요. 눈을 감아도 좋고 떠도 좋아요. 자신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느껴지는 것들을 자유롭게 말해보세요.”


   십 초, 삼십 초, 일 분, 이 분 ……. 어색한 몇 분이 흘렀다. 갑자기 시작된 수업이 당황스러웠는데 심지어 느낌을 ‘자유롭게’ 말하라니 더 당황스러웠다. 이러다 영영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은 채로 수업이 끝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 때쯤,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저는 좀 어색해요.”

   한 명이 입을 열자 다른 사람의 말들이 하나 둘씩 따라왔다.

   “떨려요.”

   “이 상황이 불안해요.”

   “기분이 이상해요.”

   가만히 듣고 계시던 교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래요, 좋아요. 그러나 지금은 추상적인 느낌들에 불과해요. 직접적인 몸의 감각을 느껴보세요.”


   몸의 감각? 몸의 감각이 뭘까. 그 전에, 몸이 뭘까. 무릎에 올려놨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교수님의 앞이라 예의 있는 자세를 갖추기 위해 의식적으로 모아놨던 손 모양이었다. 다리 위에 올려놨던 가방을 들어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방금의 작은 움직임으로 뻣뻣했던 허리가 자연스럽게 굽어지는 게 느껴졌다. 자세를 바꾸니 마음도 조금 편해진 듯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했다.


   “저는 손에서 땀이 나요”

   나의 반응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의 반응들이 이어졌다.

   “목이 좀 간지러워요.”

   “심장이 뛰어요.”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요.”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집단원들과의 접촉, 그리고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아주 좋아요. 지금을 기억하세요. 방금 우리가 한 것들이 바로 '알아차림'이에요.”


   두 시간이 지났고 수업이 끝났다. 의자를 끄는 소리와 함께 가방이 닫히는 소리, 겉옷의 지퍼를 닫는 소리들이 들렸다. 강의실을 나가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최대한 미적거리며 가방을 챙겼다. 그리곤 교수님께서 가방을 정리하고 계신 교탁으로 다가갔다.


   “교수님, 오늘 허락 없이 수업을 들었어요. 죄송합니다.”

   “이름이 버금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교수님께서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무어라 말씀을 꺼내시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할 것 같아 곧바로 말을 이었다.


   “저는 전공자도 아니고 수강 신청도 하지 않았지만 허락해 주신다면 이 수업을 꼭 듣고 싶어요.”

   말을 한 건 나였는데 그 뻔뻔함에 내가 놀랐다. 당황해서 허둥거리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몸을 굽히시더니 가방에서 출석부를 꺼내셨다.

   “그럼 여기, 자네 학번과 이름을 적고 가지.”


   출석부의 가장 아래에 이름을 쓰고서 가장 마지막으로 강의실을 나왔다. 방금 일어난 일들이 믿기지가 않아 얼떨떨하게 서있는데 이 수업을 추천해주었던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그 수업 어떻게 됐어? 받아주신대? 야, 당연하지. 그래서 진짜 꿀이야?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잠시 망설이다 결국 대답 대신 크게 웃었다. 오늘을 위해 그동안의 생을 견뎌온 것 같다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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