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따뜻한 것만 같았다
열일곱 번째 마음,
몇 달은 접지 않았을 낡은 전기장판을 들어 올렸다. 두꺼운 먼지 틈 사이로 곰팡이 핀 양갱, 눌어붙은 유가사탕 몇 알이 보였다. 대체 왜 버리지도 않고 여기에 두셨을까. 이해할 수 없는 할머니의 고집에 한숨부터 쉬려다, 돌아가신 분 탓해 뭐하나 싶어 도로 꾹 삼켰다.
나의 할머니는 흰머리에 부드럽게 굽은 등, 온화한 미소와는 거리가 먼 할머니였다. 대장부 같은 풍채에 큰 호통 소리, 고집스러운 걸음걸이와 단단한 뒷짐을 지닌 분이었다. 어렸을 때 함께 목욕을 가면 온몸이 벌게질 정도로 억세게 때를 밀어 나와 동생을 울리기도 부지기수. 아프다고 울기라도 하면 온 목욕탕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무섭게 혼쭐을 내시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살가운 손녀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할머니 역시 다른 할머니들이 어린 손녀에게 하듯 다정히 머리를 쓸어주시거나 과자를 쥐어주신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다면 내게 유가사탕을 주셨던 날. 그러니까 그마저도 내가 다 크고 나서야 딱 한 번 있었던 일이었다. 먼지 덮인 사탕은 툭툭 쳐보아도 제자리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언젠가 내가 울던 날 밤 할머니가 나에게 건네주셨던 그 유가사탕인 것 같았다.
할머니는 치매셨다. 긴 병이었다. 그것은 감기를 앓거나 배탈이 나는 것과 같은 일시적인 증상으로 부를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치매셨고 그래서 가끔은 치매가 할머니가 되기도 했다. 잦은 건망증, 욱하는 성격, 변덕, 망상, 의심 등 치매의 증상 중에서도 함께 사는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증상들이었다.
그 무렵 어른들 사이에서 요양원, 양로원과 같은 시설들의 이름이 몇 번 언급되기도 했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누구도 나서서 할머니의 거취를 정하지는 못한 채로 유야무야 시간만 흘러갔다. 그런 가족들의 입장 정리를 어서 돕기라도 하려는 듯, 결국 큰 결정을 내리게 한 몇 가지 일들은 그 무렵에 일어났다.
“도둑맞았어야.” 언제부턴가 할머니는 아침에 눈을 뜨기 무섭게 간밤에 뭔가를 도둑맞으셨다며 온 집안을 헤집기 시작하셨다. 주로 할머니가 그것을 잘 보관하시려 어디에 두고서 그 사실을 깜빡해 잃어버린 줄로 아시고 찾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과자, 거울 등의 작은 물건들이어서 같이 찾아봐드릴 때도, 끝내 찾지 못해 새로 사다드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목걸이, 통장, 도장 등으로 그 물건의 값이 커지면서는 가족들과의 언쟁도 점차 커져갔다. 대개의 경우 할머니의 주머니나 베개 밑, 가끔은 세탁기, 더 가끔은 냉장고에서 찾아내며 일단락되곤 했지만 그것을 찾게 될 때까지의 분위기란 파국의 분위기에 가까웠다. 아침에 눈만 뜨면 무언가 자꾸 하나씩 없어지는데 집에 있는 네가 아니면 누가 가져간 거냐고, 손을 휘두르시며 불같이 화를 내시기도 했다. 할머니는 가족들을 의심하셨다.
그 뒤로 할머니는 방 안 곳곳 깊숙한 곳에 할머니의 물건들을 숨기셨다. 그러면서 그것들을 지키고 계시기 위해 방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오시지 않으셨다. 가족들이 할머니를 피하기도 했지만 할머니가 가족들을 피하시게 된 건 그 무렵이었다. 결국 할머니를 위한 결정이라 모두가 생각했다. 할머니는 요양원을 가지도 양로원을 가지도 않으셨으니까. 다만, 가족들이 할머니를 홀로 두고 모두 떠나기로 했다.
사탕을 받았던 건 할머니가 혼자 지내시기 며칠 전의 날이었다. 속상한 일이 있어 방 안에서 몰래 울고 있는데 할머니가 방문을 벌컥 열며 들어오셨다. 저녁내 또 무언가를 찾으러 돌아다니셨는지 어수선한 얼굴이셨다. 할머니는 다급하게 무언가를 물으시려다 말고 문고리를 잡은 채로 못 박힌 듯 서계셨다. 그리곤 황급히 눈물을 닦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 방으로 돌아가셨다. 한참 뒤, 다시 들어오시더니 이번엔 내게 유가사탕 한 움큼을 불쑥 내미셨다.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사탕을 받는데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셨다.
"야아, 니도 조심혀라. 나 또 도둑맞았어야." 도둑맞았다는 건 사실일 리 없지만 어쩐지 그 말에 담긴 할머니의 마음은 진실 같아서, 나도 모르게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뭐를 도둑맞으셨어요?"
입 안에서 한참을 우물거리던 끝에 짤막한 대답이 나왔다.
"몰러."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냥 병 때문에 그러시는 거야,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나를 붙잡았다.
"나도 도둑맞아서 몰러."
할머니는 잠시간 우두커니 서계셨다. 그리고 불을 끄고 나가셨다. 나는 바로 잠에 들었던가. 아니다. 그 날 나는, 오래 뒤척였던가. 사탕을 잠시 쥐어보았던 것은 기억이 난다. 얼마나 오래 쥐고 계시다 주셨던 건지 사탕이 뜨끈했다. 사탕을 까서 하나를 먹었던가. 베개 밑에, 아니, 서랍 안에 넣어놨던가. 사탕을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우리 할머니에게 처음 받았던 그 사탕, 어디에 두었을까. 나는 그 날, 유가사탕을.
전기장판을 치우고 천천히 무릎을 굽혀 부스러기를 쓸었다. 힘을 주어 사탕을 떼어낸 자리에 그것의 둥근 모양대로 누런 자국이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물티슈를 가져다 문질러 닦았다. 여러 번 문지를수록 물기를 머금은 자국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이상하게도,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홀로 물건을 숨기고 다시 그것을 찾으러 다니셨을 모습이.
매일 밤, 잠에 들 때마다 캄캄한 밤이 또 무엇을 가져갈까 봐 다시 하나를 잃은 채로 아침을 맞을까 봐 밤새 불을 켜두고서 선잠을 주무셨던 할머니. 손쓸 수 없이 하얗게 덮쳐오는 아침이 기억을 사라지게 할까 봐 방 안에만 꼭꼭 숨어계시기를 택하셨던 할머니. 사실 할머니에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잃고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영영 모르는 채로 견뎌야 하는 영겁과 같은 시간이었을 지도 모른다.
해가 사위어가는 시간, 땅거미가 지고 있다. 납작하게 눌어붙은 유가사탕을 주워 손에 꼭 쥐었다. 아직도 따뜻한 것만 같았다.
* 매일의 감정을 기록합니다.
* 말글 ⓒ your_dictionary_
* 그리고 사진 ⓒ 2nd_ro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