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버금 May 13. 2019

네가 누구든 얼마나 추하든



마흔하나 번째 마음,

추하다



  지루한 옛말에 딴지를 걸고 싶을 때가 있다. 가령 서른 너머의 인간관계 전처럼 힘을 쏟 않는 편이 더 낫다는 식의 다소 예언적인 말들에. 이십 대의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에 비추어보면 그 말은 맞는 말이지만 그렇기에 분명히 틀린 말이다.


  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친한 친구들과도 각자의 세상으로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 사는 게 바빠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거나 결혼식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보는 날들이 부쩍 많아졌다. 말이 예언하였듯, 나 또한 인간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은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관계에 있어 반드시 얕은 태도를 유지할 거란 단언은 아니다.


  좁은 관계 오하려 얕지 않.  시간을 나누어 온 사람과 시간의 양에 관계 없이 인연을  수 있는 것처럼. 좁은 관계는 로로 넓어지는 것이 아닌 세로로 깊어지는 결 관계이다. 



  일 년이 조금 못 미쳐 친한 후배와 만났다. 이러다 못 본 지 일 년 채우겠다고 채근을 한 덕분에 만 일 년이 되기 한 달 전에 겨우 시간을 맞추어 만났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면 어색할 법한데도. 우리는 꼭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서로의 안녕과 안위를 제법 어색하지 않게 살필 줄 았다.


  만나자마자 서로의 어깨를 때리며 반가움울 표한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취직은 했는지,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에 이 근처에 맛집이 뭐가 있으며, 후식으론 뭘 먹을 건지를 먼저 의논했다. 후배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밥 먹고 저희 집 가요. 얼마 전에 이사해서 깨끗해요."     


  새로 이사 간 자취방을 자랑하느라 신이 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며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서 의자를 당겨 앉으며 후배와 얼굴을 마주 보았다. 걸어오면서 이야기할 땐 몰랐는데 어딘지 모르게 얼굴이 조금 수척해 보였다. "요새 무슨 일 있었어?" 물으니 후배는 힘 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두어 번 쳤다. 말하기 곤란한 이야기인 것 같아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그릇을 비운 우리는 차를 마시러 후배의 집으로 향했다. 나름 집들이 가는 기분으로 마트에 들러 모양이 예쁜 과일도 몇 개 샀다. 여행을 좋아하는 후배는 각국에서 모은 추억의 조각들을 집 안 곳곳에 간직해두고 있었다. 태국에서 온 테이블보, 호주에서 산 머그컵, 엽서, 여러 종류의 전통 차. 지구 한 바퀴를 둘러 온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사이좋게 잘 어울리는 모습에 빙긋 웃음이 났다.      





  향초를 피우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려놓은 우리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나란히 앉았다. 묻기도 전에 후배가 먼저 자연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작년에 몸이 많이 아팠어요. 그런데 몸이 아픈 것보다 아픈 몸 때문에 마음이 아파지는 게 더 힘들었어요. 왜 하필 나한테 이런 병이 생겼는지, 평범하게 살고 있는 나한테 왜, 하는 질문을 끝없이 했던 것 같아요." 그중 가장 힘들었을 때는 나쁜 마음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라고 후배가 말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부터 멀쩡하고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질투가 나는 거예요. 더 솔직히는 질투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웃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밉고 가증스러워서 세상이 다 싫어졌어요. 언니, 저 진짜 추하죠." 후배의 발끝에 휴지가 쌓여갔다.      


  어떤 말을 해줘야 좋을까. 몸이 아팠단 것도, 그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단 것도 너무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렇게나 늦게 안 내가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라고 무턱대고 위로하거나 추하다니, 전혀 아니야. 라고 염치 편을 들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감정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그처럼 사적인 감정에게 함부로 괜찮다고 말하며 괜찮음치부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 고민 끝에 나는 후배의 말에 동의하지 않기로 했다.

 

  "네가 추하지 않다고 나는 말할 수 없어. 그리고 네가 추하다고도 말할 수 없어. 네가 느꼈을 마음에 대해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대신 이 말은 할 수 있어. 나는 너를 이해할 거야. 네 마음이 어떻든 얼마나 추하든, 나는 끝까지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거야."      



  떨어지는 눈물 앞에서 위로는 무용한 것이 된다. 한 순간 그에게 감정이 너무 이입되어 그 사람 되어버리거나 반대로 이해를 하지 못해 결국 타인으로 남기도 했다. 위로의 적당한 선을 지키기 위해서 꺼낸 말은 지루한 모범 답안처럼 딱딱했다. '그래도 괜찮아', '아무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너무나 이성적이고 차분해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더 아프게 하는 말들이었다. 듣기 좋은 말을 하기 위해 한 위로는 위로보다 차라리 위선에 가까웠다.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 보렴,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는 말한다. 착해지지 않아도 된다고. 절망을 말해도 세계는 계속 굴러갈 것이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변함없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의 한가운데라고. 그러니 내가 누군들, 나의 마음이 추한들 또 어떠한가. 망 대신 절망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 곁에 있다면. 사랑하고 또다시 절망하는 동안에도 세계는 언제나처럼, 더 너른 길로 나아갈 것이다.     


  향초에서 연기 한 줄기가 피어오르다 사라졌다. 커튼 위로 무릎을 끌어안 두 사람의 실루엣이 아른아른 비쳤다. 위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위로를 뺀 나머지의 말들이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추하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사람이기를.  위태로운 세상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는 결코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등을 토닥이는  따라 두 사람의 실루엣 닿았다. 닿아있,  처럼.






* 말글 그리고 사진  your_dictionary_ 

매거진의 이전글 모처럼 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