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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금 Apr 01. 2019

우리의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



서른다섯 번째 마음,

걱정스럽다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치과가 무섭다. 무시무시한 들, 아픈 치료 과정도 그렇지만 부담스러운 병원비 때문에 더 무서워졌다. 바쁨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치과 진료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같은 치료를 받아도 봐주시는 의사 선생님마다 병원비가 천차만별이라 좋은 진료보다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지가 더 걱정이 되었다.


  나와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인터넷엔 '양심치과 리스트' 라는 이름의 치과 리스트들이 이미 이곳저곳에서 공유되고 있었다.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 병원이라는 소개 아래 병원명, 병원의 위치, 원장 선생님 성함과 전문 분야까지 보기 쉽게 정리한 리스트였다.


  양심이나 과잉의 기준은 조금 아리송해도 높은 조회수와 댓글 수가 어느 정도 신빙성을 더하는 듯해 절로 솔깃해졌다. 리스트에 있는 곳들 중 집 근처에 있는 병원들로 몇 군데를 추렸다. 가능하면 진료를 받으러 가기 전에 치료 과정들을 알고 가면 좋을 것 같아 다른 치과 블로그들도 들락거렸다.


  보철, 임플란트, 식립, 브릿지... 치료 과정을 알자니 용어가 더 어려워 한참 검색을 하면서 찾아보던 중에 어느 블로그에까지 흘러들어 갔다. 예쁘고 감각적인 사진 대신 투박한 그림판 그림이 올라와있는 곳이었다. 살펴보니 치과의 원장 선생님께서 직접 관리하고 계신 블로그 같았다.


  '치과 파노라마 보는 방법', '식립이란 치아를 심는 것을 말해요' 등 올려주신 설명들이 무척 쉽고 자세다. 전문가가 아닌 온전히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쓴 글. 하나하나가 참 꼼꼼하고 친절해 어느 병원인지 궁금해졌다. 마침 블로그 공지에 '병원 위치 안내' 란 글이 올라와 있어 얼른 클릭해서 읽었다. 뜻밖에도, 병원의 위치를 알려줄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저는 환자분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치과의사입니다.
찾으시는 모든 환자 분들을 진료할 수 없어 병원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완곡하면서도 분명함이 느껴지는 양해였다. 아쉬움에 만감이 교차했다. 살짝 알려달라는 쪽지를 한 통 보내봐도 괜찮지 않을까, 부끄럽지만 그런 생각이 다 들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궁금함을 애써 꾹꾹 눌러가이어진 글을 마저 읽었다.


"진심으로 하는 진료가 최고의 진료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병원이 동네의 작은 병원이라
환자분들의 이해를 도울 목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니 조금만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방금 전까지 일었던 이기적인 마음을 들킨 것처럼 금세 부끄러워졌다. 병원을 알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선생님의 뜻을 존중해드리지 않을 수는 없다. 많은 환자를 살피고 싶 마음에 블로그를 운영하시면서도, 모든 환자를 살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양해를 구하 선생님의 마음이 더 힘드셨을 테니까.


  조금 망설이다 선생님께 쪽지를 보내는 대댓글 하나를 남겼다. 어딘가에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으 이제는 어디서 치료를 받더라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 덕분에 치과 치료에 대한 걱정을 많이 덜었다는 그런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 나는 미리 봐두었던 양심치과가 아닌 우리 동네의 작은 치과를 찾아갔다. 진료를 받으며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데 혹시 이 선생님이 그 선생님은 아닐까 하는 상상이 들어 괜스레 웃음이 났다. 선생님이 비밀을 지켜주신 덕분에 앞으로 만나는 모든 의사 선생님들이 내게는 다 똑같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안도감과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막 나오는데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푸석한 세상을 아름답게 해주는 이름 모를 존재들은 가까운 곳에 있다. 동네의 작은 병원, 아파트 화단의 고양이 밥그릇, 보도블록 가느다란 풀 한 포기처럼. 그 존재가 너무나 작아서 어디에 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다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 또 어떤가. 이토록 맑은 샘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비밀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세상은 아름답기에 충분하다.




  


* 매일의 감정을 기록합니다.

* 말글  your_dictionary_ 

* 그리고 사진 ⓒ 2nd_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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