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버금 Mar 22. 2019

어둔 밤에는 도자기를 빚는다



른네 번째 마음,

괜찮다



  손으로 하는 일에 서툴다.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심지어 글을 쓰는 일에도, 사실 서툴다. 더 어렸을 때에는 겁 없이 시도했던 일들도 몇 있었지만 이제는 무엇을 시도하기 전에 몸부터 사린다. 재능이 없다거나 경험이 없다는 그럴듯한 핑계 뒤로 남몰래 숨겨놓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내 일을 내 손으로 망치게 될까 봐 두려운 탓이다.


  완벽을 간절히 바랄 때마다 나는 늘 완성에 완벽히 실패했다. 완벽주의자라고 하기엔 한 번도 완벽하지 않았고 완벽주의자가 아니라고 하기엔 매번 지나친 완벽을 좇았다. 닿을 수 없는 완벽을 좇으면서부터, 시작보다 끝이 더 어려워졌다. 새로 시작한 무언가를 완벽하게 끝마치려 노력할수록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되는 악순환이었다.


  몇 번의 실패를 겪은 뒤로 나에게 완성은 차라리 체념이 됐다. 애써 이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저 포기하고 받아들이기로. 미흡한 완성 힘을 쏟기보다 나의 부족함을 핑계로 한 발 일찍 체념을 택하는 편이 더 나은 방법이라 믿었다. 그 견고한 믿음에 균열이 생긴 순간은 어느 평범한 날에 찾아왔다. 작은 도예 공방의 앞을 우연히 나갔던 날이었다.


  연희동을 걷다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공방을 지나쳤다. 살짝 열린 공방의 문 뒤로 아기자기한 도자기들이 노란 햇살을 받아 느리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햇살이 내게  반가운 손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저 공간에서라면 무엇을 만들어도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기대가 솟았다.


  그 길로 수업을 신청해 주말에 곧바로 공방을 찾아갔다. 여섯 명이서 쓰는 널따란 원목 테이블 위에 동그란 흙 반죽 하나와 작업용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조각칼도, 스케치용 펜도, 주걱도, 모두 다 작고 나무였으며 둥글었다. 사람의 손을 타 모서리들이 둥글어진 도구들. 모두 동그란 도자기와 닮은 모양이었다.


  첫 작업은 흙을 반죽하고 다듬어 오목한 그릇을 만드는 일이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방법을 따라 흙 반죽을 밀어 평평하게 만들고 동그랗게 자른 뒤 모서리를 매끄럽게 다듬었다. 그동안 신경쓸 일이라곤 흙이 굳지 않게 물 먹인 스펀지로 중간중간 적셔주는 간단한 일뿐. 손재주가 없는 나도 쉽게 할 수 있는 작업들이라 금방 재미가 붙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만큼 집중해 반죽을 다듬었다.


  한참 하다보니 틀이 잡힌 흙 반죽에 무늬를 그려넣는 작업이 마지막에 남았다. 완성된 도자기를 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띌 부분이라 이왕이면 예쁘고 복잡한 무늬를 넣고 싶어 욕심을 내 어려운 시안을 택했다. 반죽의 표면을 긁어 무늬를 새겨야 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바닥이 돌아가는 원판 위에 그릇을 올려놓고서 작업에 공을 들였다.


  삼십 분쯤 들여 한 쪽을 겨우 다 그리고서 한 발 떨어져서 보는데, 벌써 완성이 된 것처럼 설레고 뿌듯했다. 이대로만 하면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 부푼 마음으로 원판을 돌렸는데 그새 건조해진 반대편의 반죽이 볼품없이 쩍쩍 갈라져있는 것이 보였다. 황급히 스펀지에 물을 먹여 갈라진 자리를 두드려주었지만 벌써 바짝 말랐는지 잘 붙지 않았다. 


  완성을 코 앞에 두고 이 간단한 걸 깜빡해 엉망으로 망쳤다는 생각에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수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라 초조  밀려왔다. 차라리 못 쓰게 된 반죽은 포기하고 새로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아 얼른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깜빡했더니 반죽이 다 갈라졌어요... 그냥 버리고 새로 만들어야겠죠?"


  선생님은 터진 반죽을 잠시 살펴보시더니 갈라진 부분에 물 몇 방울을 떨어뜨리고선 손가락을 굴리셨다. "괜찮아요. 이럴 땐 갈라진 쪽을 이렇게 만져주면 다시 괜찮아져요." 선생님의 손을 따라 손에 힘을 빼고서 갈라진 표면을 동그랗게 굴렸다. 물을 먹어 부드러워진 반죽의 틈이 서서히 메워졌다.


  괜찮아요, 다시 괜찮아져요. 완성은 완벽할 때가 아니라, 다시 괜찮아질 때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완벽의 어원을 아세요?"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완전무결하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실은 귀한 구슬을 끝까지 무사하게 지킨다는 뜻이에요" 그때에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갈라진 도자기를 빚으며 갈라진 마음을 빚는 어두운 밤을 생각했다. 완벽에만 집착하느라 완벽하지 않은 것으로 폄하하였던, 다친 마음들을 둥글게 헤아리는 시간을. 삶의 과정에서 생긴 실금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흔적이 아니라 완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흔적이다. 완성은 완벽함이나 완전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무사히, 끝까지, 지켜내는 데에 있으니까.


  겨울이 길었다. 따뜻한 봄에는 완벽하지 않은 마음에게도 기꺼이 손 내밀어 보듬을 수 있기를. 오래 외면했던 숱한 밤들도 환하게 밝힐 수 있기를. 아주 느린 시간을 들여 빚은 동그란 그릇 하나. 그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생각했다.



  "괜찮아, 우리는 다시 괜찮아."






* 매일의 감정을 기록합니다.
* 말글 그리고 사진  your_dictionary_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는 투게더를 두꺼비라 불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