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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금 Apr 07. 2019

아빠가 첫 해외여행을 떠나기까지 걸린 시간



서른여섯 번째 마음,

슬프다



  여행을 가면 함께 간 사람과 꼭 한 번은 싸운다는데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    다.  면 '아,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라는 말로 끝났을 사소한 투닥거림이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여행은 '됐다' 고 중간에 끊을 수도, '알아서 하겠다' 고 등을 홱 돌릴 수도 없이 계속되어야 했으니까. 그 날의 투닥거림은 까지 이어졌다.


  아빠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한겨울의 한국을 떠나 한여름의 싱가포르에 도착하는 여. 짐을 싸는 날 자못 긴장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는 아빠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빠, 라이터는 캐리어에 넣으면 안 돼. 따로 챙겨뒀다가 꼭 들고 타, 지? 그리고 거기는 더우니까 반팔이랑 반바지 챙겨야 돼,  ?


      제주도가 전부였던 아빠는     곳이 덥다는 게 잘 와닿지 않는지 나의 채근에도 긴 옷을 챙겼다.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검색해 거긴 30도가 넘는다는 걸 눈으로 보여줘도 막무가내였다. 그 고집이 못마땅해 입이 비죽 나왔지만 아빠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애써 말을 삼켰다.


   긴 옷을 입고 갔던 아빠는  공항에서 나오기  땀을 흘렸다.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그런 아빠를 데리고 어디 구경을 갈 수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야외 일정을 취소했다. 첫날에 꼭 가려고 봐 두었던 곳들을   포기해야 해 속이 쓰렸다.


  실내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질 무렵에야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야경이 유명한 칠리 크랩 레스토랑이었다. 명성대로 강 바로 옆에 있어 건너편의 마리나베이 샌즈가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려 , 아빠가 입을 열었다.


  "어휴,    ."

  "그것 봐. 덥다니까."

   핀잔에 아빠는    셔츠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아빠, 내일은  반팔티  사자."

  ", 무슨..."

  "아,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냥 하나 사."

  ", 팔 걷으면 되는 걸 뭐 하러..."

  

  안 그래도 아빠 고집 때문에 오늘 일정이 엉망이었는데 또 고집을 부리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짜증이 다. 여행을 와 즐거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입씨름을 하고 있는 것도 싫었다.     바보같이 구는 ,   .


  여행을 와 여행 온 기분도 제대로 못 내는 아빠가 미웠다. 반팔티 하나 사는 게 아까워 구질구질하게 구는 아빠가 미웠다. 외국 음식 먹어본 적 없어서 촌스럽게 구는 아빠가 미웠다. 내가 일상처럼 먹고 는 이 모든 것들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바보같은 아빠가  미웠다.


  그 마음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쏟아져 나왔다. 아빠 진짜,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여긴 덥다고. 근데 이게 뭐야. 대체 긴 옷은 뭐하러 가져왔어?아빠 때문에 오늘 아무 데도 못 갔잖아. 우물쭈물     다.

 

  "나는 외국이 이런 줄 몰랐지..."


  그 말    도 전에, 눈물이  .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데   온 세상이 출렁거렸다. 마리나 베이의 눈부신 야경이. 오색으로 빛나는  강물이.       .      ,     .


  아빠의 돈과 아빠 음과 아빠의 꿈을 배불리 먹고 자란 내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도 보고 일본에서 온천도 할 동안    . 아빠가 첫 해외여행을 떠나기까 걸린 시간, 오십 년.  헤아릴    한평생  .





         내게  .  잘났다, . ,  잘났다.     그 잘난 입으로  말만 한 거야,   얼마나 잘나서...  여행       벌컥   ,     ... 


             . , 저기 보여?       .  ?     .


         큼, 아무 말이나   마음속으로 .


   마음    .

  ,    .






* 언젠간 쓰게 되리라 생각했던 이 감정을 결국 쓰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 말글  your_dictionary_ 

* 그리고 사진 ⓒ 2nd_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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