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나와 동갑이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집을 지어 쭉 살았으니 우리는 나이가 꼭 같았다. 오래된 것들은 아프다, 한 군데씩은. 손이 잰 엄마가 장마철엔 옥상 방수를 하고 겨울엔 보일러를 바꾸어가며 살뜰히 살펴도 집이 늙는 속도는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재작년부터 동네에 재개발이 들어섰다. 10년도 더 전부터 곧이다 곧, 소문만 무성하던 일이 정말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재개발 구역을 발표하던 날엔 온 동네가 들썩였다. 어느 집은 땅값이 올랐을 때 재빨리 팔고 나간다고 하고 어느 집은 입주권을 받으려고 버티겠다 했단다. 귀가 느린 우리 집은 동네가 돌아가는 판을 늘 늦게 알았다. 빨리 팔아라, 팔지 말아라 하는 부동산 아저씨의 성화에도 아빠는 대답을 아꼈다.
이사를 가야 할까, 가면 언제 가야 할까, 망설이기만 하던 우리 가족은 그중 마지막으로 동네를 떠나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의 특권으로 개발 대신 철거를 지켜보곤 했다. 삼십 년도 넘게 살이 집이 단 몇 시간 만에 헐릴 수 있다는 사실이나, 이 곳에 사람이 살았단 그런 사소한 사실과 같은 것들을. 아파트가 들어올 자리를 닦아놓으려 낡고 오래된 집들을 밤낮으로 헐었다. 가스 있음, 진입 엄금, 붕괴 위험, 수도 끊김, 빨간색의 라카로 표시한 글자들이 늘어났다.
살았을 땐 그렇지 않았는데 이사 날짜를 받아두고 난 뒤론 이 곳에서 사는 일이 무척 곤욕스러워졌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가림막과 뿌연 흙먼지보다 누군가의 집이 있었던 자리를 지나다니는 일상이 그랬다. 잔해가 남은 자리에 두고 간 살림살이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걸 보면 꼭 그 집의 사생활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발걸음을 재촉하게 됐다. 떠날 수 없어 남겨진 흔적들이 발 닿는 곳마다 있었다.
이사를 가기 며칠 전쯤이었다. 골목길을 가로질러 가다 아담한 벽돌집에 붙은 흰 종이를 봤다. 네 귀퉁이가 청테이프로 눌러진 그 종이에는 라카가 아닌 펜으로 몇 글자가 씌여져 있었다.
'여기 사람 삶'.
첫 단어인 '여기' 가 가장 크고 '사람' 은 그보다 작고 '삶' 은 그보다 더 작았다. 글자를 쓰다 공간이 모자랐던지 '살고 있음' 을 '삶'으로 줄인듯 했다. 사람과 종이의 끝, 그 사이에 삶이 간신히 끼워져있었다.손글씨에는 사람의 나이가 묻어난다. 세로획이 가로획보다 긴노인의 글씨체였다.
양 옆의 집은 모두 헐리고 남은 것은 그 집 하나뿐. 종이 한 장을 방패 삼아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집이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어요. 작아지는 글자 크기를 따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 해 겨울, 우리집은 우리집을 떠났다. 말간 햇볕 아래에 내놓은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이 문득 서글프게 느껴졌다. 이삿짐을 나르다 본 안방의 문틀에는 나와 동생의 키 눈금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눈금이다.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우리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담한 벽돌집의 또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는 어디로, 사람은 어디로, 삶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남겨진 것들의 이후를 생각하면 마음 한 켠에 바람이 분다. 나와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훨씬 늙어버린 집을 생각하면. 그 곳에 두고 온 시간의 눈금을 생각하면.여기 사람 삶, 얇은 종이 뒤에서 잠을 청했을 굽은 등을 생각하면. 여기, 사람, 삶, 그 세 단어를 꾹꾹 눌러썼을주름진 손마디를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