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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금 Apr 14. 2019

여기, 사람, 삶



서른일곱 번째 마음,

서글프다



    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집을 어 쭉 살았으니 우리는 나이가 꼭 같았다. 오래된 것들은 아프다,  .    장마철 옥상 방수를 하고 겨울 보일러를 바꾸어가며 살뜰히 살       . 


  재작년부터 동네에 재개발이 들어섰다. 10년도 더 전부터 곧이다 곧, 소문만 무성하던 일이 정말로 진행되 다. 재개발 구역을 발표하던 날엔 온 동네가 들썩였다. 어느 집은 땅값이 올랐을 때 재빨리 팔고 나다고 하고 어느 집은 입주권을 받으려고 버티겠다 했단다. 귀가 느린 우리 집은 동네가 돌아가는 판을 늘 늦게 알았다. 빨리 팔아라, 팔지 말아라 하는 부동산 아저씨의  아빠는 대답을 아꼈다.


  이사를 가야 할까,   야 할까, 망설이기만 하던 우리 가족은 그중 마지막으로  떠나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의 특권으로 개발 대신 를 지켜보곤 했다. 삼십 년도 넘게 살이 집이 단 몇 시간 만에  수 있다는 사실이나,   사람이 살았단 그런 사소한 사실과 같은 것들을  자리를 닦아놓으려   들을 밤낮으로 헐었다. 가스 있음, 진입 엄금, 붕괴 위험, 수도 끊김, 빨간색의 라카로 표시한 글자들이 늘어났다. 


  살았을 땐 그렇지 않았는데 이사 날짜를 받아두고   이 곳에서 사는 일이  워졌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가림막과 뿌연 흙먼지보다 누군가의 집이 있었던 자리를 지나 일상이 그랬다. 잔해가 남은 자리에 두고 간 살림살이들이 아무렇게나   걸 보면 꼭 그 집의 사생활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  발걸음 재촉하게 됐다. 떠날 수 없 남겨진 들이  는 곳마다 있었다.


   이사를 가기 며칠 전쯤이었다. 골목길을 가로질러 가다 아담한 벽돌집에 붙은 흰 종이를 봤다. 네 귀퉁이가 청테이프로 눌러진 그 종이에는 라카가 아닌 펜으로 몇 글자가 씌여져 있었다.


  '여기 사람 삶'.  


  첫 단어인 '여기' 가 가장 크고 '사람' 은 그보다 작고 '삶' 은 그보다 더 작았다. 글자를 쓰다 공간이 모자랐던지 '살고 있음' 을 '삶'  줄인듯 했다.  이의 끝, 그    . 에는 사람의 나이가 묻어다. 세로획이 가로획보다 긴 노인의 글씨체였다.


           하나뿐. 종이 한 장을 방패 삼아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집이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어요. 작아지는 글자 크기를 따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고 있었다.





  그 해 , 우리집은 우리집을 떠났다. 말간 햇볕 아래에 내놓은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이 문득 서글프게 느껴졌. 이삿짐을 나르다 본 안방의 문틀에는 나와 동생의 키 눈금이 있었다.    자라지 않는 눈금이다.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우리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담한 벽돌집의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는 어디로, 사람은 어디로, 삶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면     . 나와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늙어버린 집을 생각하면. 그 곳에 고 온 시간의 눈금을 생각하면. 여기 사람 삶, 얇은 종이 뒤에서 잠을 청했을 굽은 등을 생각하면. 여기, 사람, 삶, 그 세 를 꾹꾹 눌러썼을 주름진 손 생각하면. 





 

* 매일의 감정을 기록합니다. 

* 말글  your_dictionary_ 

* 그리고 사진 ⓒ siotbie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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