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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주 Oct 22. 2020

나의 네브레스카(1)

유학을 보내달라고 노래를 부르던 나는 결국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 고등학생을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보내는 일이 신생 사업의 일환으로서 막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단지 1년만 미국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명문 사립이 아니라는 점에서 늘 꿈꿔왔던 조기유학의 청사진에 꼭 들어맞는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아쉬운 대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1년 동안 대신 키워줄 호스트 가족의 조건을 무척이나 까다롭게 골랐다. 중부의 중산층 집, 기독교인이어야 했고 학교도 기독교 학교이길 바랐다. 집에 남자아이는 없는 대신 내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교환학생 사업을 주관하는 유학원 사장에게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다. 

“집안 자체가 좀 보수적인 분위기였으면 좋겠어요. 아시잖아요. 미성년자인 딸을 생판 모르는 집에 보내야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엄마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사장은 아휴, 아휴 어머님, 당연하죠. 제가 현주 학생은 특별하게 챙기죠. 하며 확실하게 괜찮은 집으로 아이를 배정하겠노라 거듭 약속했다. 

세련되고 도회적인 영어 이름을 가진 그 여자는 교환학생 사업에 막 발을 들여놓은 터라 의욕이 충만했고 전형적인 사업가의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늘 격양되어 있는 목소리로 건네는 친절과 과장스러운 몸짓이 불편하긴 했지만 싫은 티를 내서 득이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착하고 모범적으로 보이고 싶었다. 

엄마의 극성 덕분인지 사장은 우리 모녀를 VIP로 대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업가의 투자 행위였겠지만 그때는 그녀가 원래 친절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유학원과 몇 번의 미팅과 절차를 거쳐 미국에서 머물게 될 집의 조건과 가격을 흥정했고, 마침내 1년 동안 머물게 될 호스트 가족의 프로파일을 받게 되었다.


가족 인적사항 : 아빠는 팀 소랜슨, 엄마는 제넷 소랜슨, 딸은 15살 세라 소랜슨, 고양이 한 마리에 강아지(라기보다는 개) 한 마리. 독실한 기독교인에 기독교인 여자 교환학생을 원함. 네브레스카 앰 우드 거주. 집안 분위기는 보수적이며 이미 출가한 자식이 세 명 더 있음. 출가한 자식은 남자 쌍둥이 에릭 소랜슨과 스캇 소랜슨이 있고 딸 크리스틴 소랜슨은 2살 배기 딸 제이드 소랜슨과 함께 살고 있음. 

학교 정보 : 링컨 크리스천 스쿨. 고등학생 네 개 학년을 통틀어 2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학교. 매우 보수적임. 드레스 코드를 지켜야 하며 금요일마다 채플이 있고 모든 학년이 반드시 성경 수업을 매일 들어야 함.


가족사진도 함께 동봉되어 있었는데 사진 속의 소랜슨 가족은 아주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지만, 한눈에 바로 이 가족이 그런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엄마와 아빠는 사진과 서류를 번갈아 뜯어보며 나름대로 가족에 대해 예상하고 해석하고 있었다. 쓰여져 있는 사실보다 쓰여져 있지 않은 사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 하며. 

‘사람들이 참 인상이 좋아, 세라라는 애도 순해 보이고. 언니 오빠들은 이미 사회에 나간 걸 보면 세라는 늦둥이인가 보네. 엄청 귀여움 많이 받고 자라겠다. 자기 딸이 심심해하니까, 교환학생을 받으려는 건가 봐. 근데, 크리스틴은 벌써 결혼을 한 건가, 딸이 있네. 애기는 참 예쁘다... 미국은 남편 성을 따르던데 아버지 성을 따른 걸 보면 남편하고 이혼했나. 미국은 이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하더니...’

서로 이런 말을 주고받던 엄마, 아빠는 대뜸 나를 돌아보고는 

“너 거기서 외국인 남자 친구 만들면 아주 혼날 줄 알아!” 

라고 날카롭게 외쳤다. 

부모님이 그러건 말건 미국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던 나는 한국을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 앞에 영화와 같은 날들이 펼쳐질 것만 같은 기분에 하루에도 몇 번씩 몽상에 잠기곤 했다. 

그래서 미국으로 떠나기 전, 친구 은주(가명)와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 그 애가 울음을 터트렸을 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함께 울어주지 못하여 미안한 마음에 열심히 위로만 했을 뿐. 

어색하게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밤새 울었는지 퉁퉁 부어 터진 엄마의 얼굴도 모르는 척하며 나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별의 슬픔에 취해 있기에는 앞으로 혼자 타게 될 비행기와 경유 철차 같은 것이 더 걱정이었고, 그 보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 뽕에 설렜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네브레스카는 미국에서도 참 외진 동네라는 걸 알게 된 건 내가 오마하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13시간 꼬박 시카고로 날아가 그곳에서 다시 5시간을 경유하고 1시간 반 가량을 작은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 드디어 하늘에서 바라본 네브레스카는. 끝도 없이 펼쳐진 바둑판 모양의 논밭...(그때는 그게 옥수수 밭인 걸 알리가 없었다)  

미국에서도 가장 시골로 여겨지는 몇 개의 주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네브레스카였던 것이다. 영화나 시트콤에서 그려지는 네브레스카 사람들이 가지는 원형적 이미지는 형제, 자매가 기본으로 셋, 넷은 되고, 다소 투박하고 촌스럽고 시끄러우나, 정이 많다는 것. 가끔 스릴러 영화에서 10대 20대들이 여행을 하다가 차가 고장 나 의도치 않게 들어가는 허름한 모텔도 하필이면 꼭 네브레스카에 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곡성 정도라고 할까. 

한마디로 네브레스카는 중부 중에서도 매우 중부틱한 동네였고 가장 미국적이라지만 사실 그런 건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개념일 뿐 심지어 자국민들에게조차 무척이나 이질적인 공간이었던 것이다. (가끔 내가 네브레스카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Wow, That’s pretty random.”이라고 대답을 하던 미국인도 있었다)

간절기마다 몰아닥치는 토네이도에 지하 벙커로 대피하는 일이 몇 번씩이나 있는 곳.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부츠를 신은 동네 아저씨들이 ‘헬로 레이디’를 외치는 곳.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이 영화 <인터스텔라>의 낙후된 지구의 모습과 아주 흡사한 그곳. 

내 머릿속에 있었던 미국의 전형이라 여겼던 캘리포니아나 뉴욕과는 너무나 딴판이라 나는 도착하자마자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이러려고 미국을 왔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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