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감정기복이 심한 리뷰
가정은 한 개인의 인격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배움의 발견>의 저자인 ‘타라 웨스트오버’가 그 대표적인 예이며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트라우마와 힘겹게 투쟁하고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극단적인 종교적 신념을 가진 아버지의 그늘을 극복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성취를 이룩한 한 여성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서사로 포장할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 미국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는 서사인가? 하지만 이를 단순히 또 한번의 이데올로기 장치인 ‘아메리칸 드림’으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위대함을 칭송하고만 있다면 나는 정말이지 분노를 감출수 없을 것이다. 이는 누군가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건강하지 못한 가정의 위압성과 폭력을 고발하고 이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는 비극이다. 모든 이야기가 나와 비슷한 세대의 작가의 생에 절반도 넘게, 그리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우리가 천조국이라고 칭송해 마지 않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타라의 아버지는 모르몬 교다. 모든 모르몬 교가 그런것은 아니다. 그는 조금 특별했다. 아니, 아주 많이.
그는 공권력을 신뢰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출생신고도 넷째 부터 그만뒀고, 아이들에게 학교교육은 커녕, 홈스쿨링 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교육은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장치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의 음모로 인해 자식들이 일루미나티가 될 거라 생각했다. 이런 그의 과대 망상은 가족을 늘 수렁에 빠트렸다. 몇번의 위험한 사고에도 병원은 가면 안되는 곳이었다. 아들의 팔이 폐철 기계에 빨려들어가 잘렸을 때도, 자신의 얼굴에 불이 옮겨붙어 하관이 만신창이가 되어 뼈가 드러나는 고통으로 인사불성이 되었을 때도, 오토바이 사고로 뇌수가 흘러나오는 꼴을 보고야 말때도, 자신의 부인의 정신이 오락가락 할 때도. 그는 신의 힘과 영험한 약초의 힘으로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내라고 했다. 고통도 신의 뜻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 비이성과 불합리, 억압과 폭력이 그 가정을 세운 기반이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의 일관성있는 학습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머니 마저 아버지에게 익숙하게 만든다.
이런 세계에 갇힌 채 살던 타라는 그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려 애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나폴레옹과 장발장 중 누가 역사적인 인물인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했던 그녀, 홀로코스트가 뭔지 몰라 처음 듣는 수업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했던 그녀. 그런 저자가 케임브리지에서 석사를 밟고, 하버드에서 연구를 하며 또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박사학위까지 받는 여정은 그녀가 겪은 삶의 시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타임이 선정한 2019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 까지 했지만, 그녀는 가족에게 여전히 이방인이다.
분노와 슬픔이 일어난다. 자신을 괴롭히던 가족에 대해 여전히 연민을 느끼고 인정 받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는 그녀일 수 없기에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찹찹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실화라는 것에 더욱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