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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Jun 13. 2016

월남쌈

2016년 6월 13일

금요일 저녁에는 오래 안 세 명이 만났다. 그중 한 명이 직접 만든 월남쌈을 안주로 맥주와 양주를 마셨다. tvN과 엠넷에 방영하는 프로그램들을 평화롭게 지켜보았다. 초반에 나누던 침 튀기는 얘기들은 약간 오그라드는 프로그램이 절정에 다다르면서 끊겼다. 꾸준히 쳇바퀴를 돌리고 무언가 하고 있다고, 있는 듯 없는 듯 언저리에서 지켜보는 불특정한 이들에게 호소하는 삶은 가끔, 애처롭다고 자리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아침에 잠이 들었다.

사상자가 한 자릿수였던 올랜도 총기 난사는 점점 불어나더니 쉰 명 넘게 고인이 되었다. 온갖 증오로 범벅이 된 범죄 피해자들에게 깊게 우러나온 명복을 빈다. 온라인에 그저 추모하는 이상으로, 무언가를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째서 이러한 범죄들은 대체로 끊이지 않고 또한, 체감으로는 더 늘고만 있나.

월요일이라 그런지 여러 연락이 왔다. 모르는 번호로 온 연락은 무슨 '창조경제'와 '신진 디자이너' 관련 사업 심사위원을 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목소리는 전형적인 아저씨 공무원이었다. 그는 어떻게 위촉했는가는 쏙 빼고 다짜고짜 본론을 말했다. 마침 외부여서 관련 내용을 문자로 다시 보내줄 수 있는가 물었고, 그는 문자 말고 카톡도 괜찮지요, 하고는 여태껏 보내지 않았다. 장소는 광화문 KT 빌딩이라고만 했다.

일들, 사이에서 생각하지 못한 변수들이 생기며 의도하지 않게 머리와 생각이 쉬어 갈 틈이 생겼다. 그래도 항상 무언가 마감한다. 처음 열흘 정도는 고민과 두통과 무언가 무너지는 나날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나아졌다. 오늘 해야 하는 마감이 두 개 정도 있는데, 그걸 하기 전에 이런 일기를 쓰고 있다. 그냥 일, 각자 생각하는 여러 종류의 문화를 만드는 일, 사회, 사람들, 더 작고 개인적인 취향이라든지 사적 영역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모였다가 헤쳤다가,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탄다. 닥친 일들을 넘어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는 나날이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해답까지 미로처럼 이어진 생각 사이에 - 6월은 어쩐지 - 지난 몇 년간 꼭 1년의 중간 언저리여서가 아니어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생각하게 했다. 뭐, 나쁘지 않다.

어제는 그래도 비가 와서 조금 서늘했는데 다시 여름 오후처럼 무더웠다. 비가 내린 잔향인지 습도마저 오른 것처럼 피부가 끈적이게 반응했다. 결혼하는 오랜 친구가 토로한 고민에 반응하는,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우리를 보면서 나이를 먹었구나 했다. '그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느끼면서 안에 자꾸 무언가 꿈틀거리고는 한다. '그게' 삶을 나도 모르는 방향으로 움직이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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