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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Apr 04. 2017

오래된 라디오

2016년 11월 17일

지난주와 이번 주에는 원고를 몇 개 쓰다가 수년에서 십 년은 된 노래와 목소리들을 찾아들었다. 2011년 마친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을 팟캐스트로 들으며 지난가을 프랑스 취재 다녀온 기사를 썼고, 어제 넘긴 <씨네 21> 원고에는 이승환이 2006년 발표한 9집 음반 <환타스틱 Hwantastic>의 노래 몇 곡을 넣었다.

유희열은 여전히, 아니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TV 안에서 볼 수 있지만, 유병재가 언젠가 유희열 옆에서 한 얘기처럼 '희소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시 얼굴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는 심야 라디오에서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오랜만에 들은 <라디오 천국>이 무척 재미있어서 3주년 기념 방송인가, 아니면 작년에 한 라디오 개국 기념 방송인가를 들으며 TV에서 별로 진심을 얘기하지 않고 일정하게 자신을 소모하는 거로 비추었던 - 내게는 유희열이 어쩐지 그래 보인다 - 그가 한 1분 정도, 자기 마음을 말한 내용에 왠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소모하는 느낌이 들 때 자기 아내에게 문득 말했다고. 라디오 다시 할까.

신해철 옆에서 처음 패널로 나왔을 때, 몇 번의 디제이를 했을 때, 모두 실시간으로 들었으나 팟캐스트를 찾아 들을 정도로 열성적이진 않았다. 당시 라디오는 이미 내게 제법 떠난 매체였다. 고등학교 시절만큼 밤새 듣거나 카세트테이프 녹음 단추를 누를 열정은 없었다는 얘기지. 그런데도 어제, 마지막 <하퍼스 바자 코리아> 원고를 넘기며 잠시 밖에 나와 태우던 담배와 함께, 다시 무작위로 들은 2011년 그의 목소리에 묘한 감흥이 일었다. 기모가 들어간 남색 후드 파카에 긴소매 티셔츠 한 장, 반바지로는 쌀쌀한 밤이었다. 가을에서 진짜 겨울로 넘어가는 2016년 11월 중순에, 이제 막 여름에서 가을이 된 것 같다고 능청스럽게 얘기하는 2011년의 유희열이 생경하면서 반가웠다. 무작위로 튼 '옛날' 방송이 막 지금 계절이 넘어가는 시점과 겹친다는 우연하고도 뿌듯한 동질감 또한 괜히 느꼈다.

요즘 종종 사람들을 만나면 그래서 오래된 라디오를 - 대체로 팟캐스트로 - 들어보라고 권한다. 몇 년 전, 무얼 했나 기억하거나 추억을 굳이 끄집어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툭, 하고 던진 듯한 묘한 설렘이 이미 지난 시간에 일정하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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