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흰색 티셔츠에 관하여
가슴주머니가 달린 티셔츠를 좋아한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구하기는 꽤 어렵다. 게다가 요즘은 다시 그래픽 티셔츠가 인기를 구가하고, 발견하더라도 디자인이 '너무' 들어가 있다. 잡지 속 완벽한 디자인의 포켓 티셔츠들은 대체 다들 어디 있을까.
나서서 쇼핑하는 걸 오래 끊었다가 다시 목표를 세워 실천하려고 하면, 옷과 물건 사는 데 아무 관심이 없다는, 평소의 나였다면 결코 이해할 수도 친해질 수도 없는 부류의 사람들(아마도, 특히 남자들)을 이해하게 된다.
두어 시간이고 옷을 구경하고 매장을 둘러보는 게 지겹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요즘은 그렇게 '산다'고 작정하고 달려든 노동의 시동이 걸리기도 전에 식어버리기도 한다. 직업과도 배치되는 데다, 인생의 즐거움 하나를 잃은 기분도 든다(계속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열심히는 찾지 않다가 이 흰색 티셔츠를 발견했다. 디자이너 원덕현이 세운 종로구 팔판동 3층짜리 매장, '슬로우 스테디 클럽(Slow Steady Club) 티셔츠다. 사진 속 흰색과 회색이 있고, 주머니 아래 각각 'STEADY'와 'SLOW'라는 문구가 귀엽다. 등판 절개선이 가로지르는 독특한 디자인이지만 입으면 불편하지 않다.
여성부터 제법 덩치 있는 남성이 입기 좋은 크기로 다양하게 나왔는데, 가장 큰 '5' 치수는 일부러 더 크게 입고 싶을 때, 그러니까 엑스라지(XL) 기분을 낼 때 괜찮다(보통 체격 남자는 3 정도면 적당하다). 면은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고, 촉감이 부드러운 편인데 세탁해도 그 느낌이 거의 사라지지 않았다. 몸에 붙는 티셔츠들만 너무 많다는 게 최근 불만이었는데, 하나 타협점을 찾았다. 조금 헐렁하게 입을 때와 몸에 맞춰 입을 때에 따라 하나씩 사도 부담 없는 가격은 덤이다.
그저 티셔츠 한 장 걸치고 면바지나 청바지에 단정한 스니커즈나 버켄스탁 샌들, 혹은 은장 금속 장식 달린 가죽 로퍼를 신어도 좋겠지만, 옷깃이 둥근 하얀 긴소매 셔츠 위에 겹쳐 입고 캔버스 소재 어깨가방(숄더백)을 들어도 좋다. 그리고 형광색 스냅백 모자를 쓴다. 오늘은 그렇게 입었다.
by The NAV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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