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0일
병원을 다녀오면, 하루가 삭제된다. 검사나 진료 시간보다 여러 종류의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진료 일정에 약간 오류가 있었다. 월요일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추가 조직 검사가 필요하여 진료 일정을 일주일 미룬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퇴원 때 받은 아버지의 진통제가 딱 떨어질 시점이었다. 화요일, 우리는 예정대로 병원에 갔다. 본관과 암병원을 연결하는 5층 통로에 앉아서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병원 온도는 마치 공공기관과 비슷하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수준이나, 태생적으로 열이 많은 나와 엄마는 조금 더웠지만, 그 통로만큼은 시원했다. 세브란스병원 암병원 5층에는 '암 지식 정보센터'라는 휴식 공간이 있다. 오후 1시 반에는 췌장암과 담도암에 관한 강의가 있었다. 꽤 드문 기회라서 듣고 싶었으나 시간이 애매하여 포기했다.
진료 직전, 어떤 계기로 잠시 대화를 튼 중년 부부는 포항에서 오셨다고 했다.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남편분을 두고는 '밥맛이 너무 좋데요' 라고 말하는 부인에게 나와 엄마는 그 비결이 궁금했다. 누군가는 저 멀리서부터 오는데, 기다리는 시간에 불평하지는 말자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빠는 내내 말이 별로 없었다. 아랫배 통증은 계속 이어지고, 명치도 마찬가지인데, 통증과 더부룩함 탓에 밥을 잘 못 드시니까. 그 와중에 엄마와 나는 계속 어떤 이야기를 건넨다. 실시간으로 살이 빠지는 게 보인다. 그걸 막기 위해 계속 반복하여 이야기하고, 또 적는다.
억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겠지만, 아버지가 어떤 목표나 의지를 강하게 가졌으면 좋겠다. 완치 판정을 받은 후, 가족과 함께 아빠가 좋아하는 설악산에 간다든지, 혹은 그보다 더 앞에 있고, 조금 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 같은 것들 말이다. 췌장암은 생존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냉정하게 말하면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아픔과 고통 때문에 점점 낮아지는 몸 상태에 체념이 깃들면 그것은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끔 이런 것을 어르고 달래듯 부드럽게, 때로는 반대로 조금 세게 말한다. 어떤 게 더 나은 방법이고 좋은지는 모르겠다. 사실, 그 말들이 닿은 게 맞는지 모를 때가 있다.
추가 조직 검사가 필요하고 결과 또한 다음 주로 미뤄질 거예요, 라고 전화에서 들었기 때문에 화요일에는 그저 해야 할 정기 검사들 — 채혈, 심전도, 엑스레이 X-Ray — 을 한 다음 진통제를 타고 끝나는 건가, 했다. 진료를 마치고 아버지는 그제야 '이걸 일주일 더 해야 하는 건가'하고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입원 때 찍은 영상 결과물을 보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다. 몇 가지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지만, 결과는 이렇게 나왔다.
• 확진 : 2025년 9월 1일자 병리검사 결과로 췌장암 최종 확진 (암 진단일을 기준으로 산정 특례 소급 적용)
• 병기: 췌장암 3기
• 위치: 췌장 몸통–꼬리 부위
• 침범 : 주요 혈관 침범 확인. 수술은 불가, 항암치료 시작 예정
• PET-CT 결과 : 다른 장기 (간, 폐, 복막 등)로의 원격 전이는 발견되지 않음 → 국소 진행형 (3기)
아버지는 곧 다시 입원하고 첫 항암 치료를 준비한다. '케모포트'라는 정맥 치료용 기구를 시술하여 몸에 부착하고, 이후 지금 병기와 상황에 맞추어 첫 치료를 시작할 것 같다. 간호사 선생님께 물어보니, 첫 항암은 3일에서 5일 사이 정도로 입원한다고 한다. 이후 2주마다 외래 주기로 항암치료를 반복해야 한다. 어제 바로 입원하려 했으나 병상이 꽉 차 있었기 때문에 오늘 (9월 10일 수요일)이나 내일 (9월 11일 목요일) 중 가능한 더 빠른 날짜에 입원할 예정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결과적으로 목요일이나 금요일 중 입원할 듯하다.
• 진통제 패치 용량 증량 : 현재 통증 조절이 충분치 않아서 패치형 마약성 진통제 용량을 올리기로 함
• 필요시 속효성 아이알코돈정 병행 중
•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체력 유지가 절대적으로 중요
• 특히 잘 먹고, 몸무게를 유지 · 늘리는 것이 치료와 직결
• 현재 몸무게 60kg인데, 더 이상 빠지지 않게 관리해야 함
현재 아버지는 항암 전의 통증 관리와 체력 관리, 특히 체중이 계속 줄어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고심하고 있다. 말을 계속해도, 엄마가 열심히 음식을 골고루 차려도 — 특히 체중 유지를 위하여 고기, 생선, 계란 등의 단백질 음식을 계속 올리는데 — 어제 진료 이후에도 아빠는 거의 '깨작깨작' 먹는 수준이었다.
유튜브에서 환자분들이나 보호자들의 영상은 거의 찾아보지 않는다. 그릇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나, 굳이 지금 알지 않아도 되는 것들까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영상은 아빠가 꼭 같이 봤으면 했다. 영상의 주인공인 아들은 췌장암 4기에 간 전이가 두 곳 확인된 상태로 어머니의 항암 치료를 돌보았다. 꼼꼼히 일지를 쓰고 음식을 직접 챙겼으며, 항암 치료 부작용인 구토와 가려움, 그리고 밥을 먹기 싫어하는 어머니에게 온갖 정성으로 식사를 들게 했다. 어머니는 장장 2년 2개월에 걸친 60여 회의 항암 치료를 받고, 현재는 완치 판정을 받으셨다고 했다.
나는 이 영상이 여러 민간요법이나 연계 치료를 환자 관점에서 임의로 설명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의사 선생님들이 이야기하는 정석 그대로 말한다는 데서 희망 비슷한 것을 보았다. 멀쩡한 사람도 반나절 머물면 지치는 곳이 병원인데, 그래도 아버지의 눈빛에 조금은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크게 끄덕이는 고개와 함께.
Seoul, S. Korea
Tue, September 09, 2025
연세암병원
'희망'
동네로 돌아가는 택시를 기다리던 중, 교차로 횡단보도에 누군가 남긴 낙서를 보았다. 미신을 믿지 않지만, 이것을 어떤 징조로 삼고 싶어졌다.
Photographed by Ricoh GR II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