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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Jul 28. 2015

여파

2014년 7월 17일

점심이라 텅 빈 체육관 벤치에 누웠는데 - 잠을 거의 못 잤다, 오늘 - 툭,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빗방울이다. 반갑다.

오전부터 생각이 많아서, 읽으려고 보려고 잔뜩 챙긴 책들은 한 장도 넘기지 않고 땀 흘리는 활동만 했다. 시차, 별로 겪은 적 없는데 서울 돌아와서 원고 예닐곱 개를 연달아 썼더니 탈진이라든지 소진 같은 감정을 넘어섰다. 

베를린 가기 바로 전날 타고 있던 택시를 뒤차가 박는 사고가 났다. 덕분에 월요일 새벽에 잠을 거의 못 잤는데, 이번 토요일에는 꼭 병원 가봐야겠다.

거의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친구 몇과 이야기 나눌 때에도 어쩐지 더 나이 먹었다. 대화는 실없이 흐른다. '으쌰'했던 것들은 서로 달라진 일만큼 덜 나눈다. 이런 시간도 물론, 진지한 얘기시간만큼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은 지루하다. 그 순간에는 그리 느끼지 않는데 지나면 무거운 마음이 든다. 온갖 부정적인 기운과 푸념과 술과 담배와 그를 감싼 새벽의 여파일지도 모른다. 

빗소리가 더 세차다가 금세 사그라졌다.

여러 할 일과 하는 일이 모여 사람을 구성하고 결국 어떤 사람이 되고는 한다. 자꾸 고민하고,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며 증명하려고 한다. 종종, 즐겁고 재밌는 것을 물밑에서 만들어내는 과정, 두근거림을 반복하려고 하면서도 기운이 죄다 빠진 날이면 무얼, 왜 해야 하나, 자문한다. 그럴 때에도 텅 비고 고요한 적은 별로 없다. 맡은 일부터 하나씩, 이후에 '생각'하기로 해도 하나씩 지워감과 동시에 생긴 부스러기들이 다시 파편처럼 흩어졌다가 모이기를 반복한다. 긍정, 피로, 생각, 반복, 귀찮음, 사색, 실행, 그저 그렇고 그런….

오늘은 생각 없이 보내고 싶다. 아마도 이런 날이 가면 다시 또 무언가 만들려고 할 거다. 항상 그랬으니까. 오늘은 땅의 비처럼 빨아들이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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