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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Jul 31. 2015

종종 모르는 이에게 이메일이 온다

2014년 2월 4일

종종 모르는 이에게 이메일이 온다. 일이 아닌 것들은 주로 학생들의 진로 상담에 관한 것인데, 연초에는 대구에서 올라오겠다며 삼십 분만 시간을 내주십사, 했던 기특한 친구와 대학로 어느 커피숍에서 한 시간 남짓 시간을 보냈다. 대학교 특강을 나가서 내 이야기를 들려준 경험도 몇 차례인가 있다. 해온 일을 주르륵 보여주며 하는 이야기는 결국 단순했다. 학교 바깥에서 노세요. 과제에 치여 학교 안에만 있지 말고 휴학도 좀 하세요. 사회가 요구하는 경험과 '스펙'이 얼마나 요즘 친구들을 압박하는 줄 알지만, 일주일 정도 씻지 않고 집에 널브러져서 영화 보다 잠들고 책 읽다 밥 먹고 다시 잠드는 '잉여' 짓을 하세요, 지금.

아직 답장하지 않은 어느 학생의 메일에서, 그는 자신을 스물둘인가 셋이라고 했고, 패션 바이어가 되고 싶은데 '학벌'이 중요하냐고 내게 물었다. 공식 채용으로 4대 보험 받은 첫 일을 시작하지 않았던 내가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만일 그 학생이 대기업 공채로 바이어가 되고 싶다면, 지원해본 적이 없으므로 모르긴 몰라도 학벌은 꽤 중요할 것이다. 메일의 고민처럼 삼성디자인학교(SADI)에 재입학 후 졸업하는 것이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그 학생은 내가 전직 바이어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바이어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몸담았던 회사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일을 관둔 후, 회사 몇 곳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고 식사(겸 면접이었을까) 자리에 간 적도 있었지만, 당시 꿈도 바이어가 아니어서 어렵사리 그리고 정중히 거절했었다.

좌충우돌하며 일을 시작한 이래, 일종의 '후배' 친구들이 생기면서 느끼는 가장 큰 감상 중 하나는 내 이십 대와 짧은 삼십 대의 경험을 통틀어 누구도 '학력' 혹은 '학벌'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내가 꿈꾼 필드가 금융권이라도 되었다면 다른 문제였겠지만, 유학 한 번 하지 않았고 친구들이 이런저런 것들을 시작하는 동안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거나 관찰하고, 대화하고 그것을 모아 무언가 결과로 만드는 사이 한 번도 일에 관련하여 '어느 학교 나오셨어요?' 하는 질문을 듣지 못했다. '보통 회사'에 다닌 지 오래된 직업적(?) 특성도 있겠지만, 걸맞지 않은 스펙 걱정에 헛된 고민 한다고 느끼는 (몇 살 어린) 친구들에게 나는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얘기한다. 그리고 항상 덧붙이기는 한다. 내가 특수한 경우라는 것을 인지하시라고, 여러 의미로 나 또한 여전히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다고. 비단 돈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 무얼 더 하고 싶은가에 관해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들거나 그 안의 구성원으로 작업하고, 개인 혹은 회사와 새 프로젝트를 만들거나 참여한다. 이십 대 후반, 패션을 단지 철마다 한 번 다루는 경향으로 보고 동시대 엄연한 문화로 바라보지 않는 기성 매체에 반발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강의 시리즈는 내년 즈음 재개할 생각이다. 그간 매체 환경도 많이 변해서, 온라인과 닷컴 문화가 사그라지는 요즘은 역설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연동하거나 기존 온라인 매체가 새 활로 모색을 위해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만일 후에 회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스스로 느끼기에 그것은 단지 패션 회사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느낌이 있다. 가령 사람들의 생활 방식 전반을 아우르는 회사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하나 만들 수도 있겠지. 성공이 요원하더라도 아직 실패한다고 해서 털고 일어서지 못할 나이도 아니니까.

그간 무언가 만드는 사람들을 거의 항상 가까이서 보았다. 요즘 드는 생각은 과연 그들이 '만드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올해 개인적인 목표 중 하나는 무언가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여, 색을 입히고 불어넣어 기존과 다른 색 몇 가지 정도 새로 만들어보는 거다. 물밑 작업은 이미 시작했다. 남 이야기로 시작해 내 이야기로 끝내는 두서없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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