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었다

2012/08/29 01:20

by Hong Sukwoo


이십 대를 돌아보면 어떤 계획들을 치밀하게 세워 무언가 하진 않았다. 우연, 선택, 고민, 좌절, 약간의 보람, 일종의 작당과 모의, 지나간 사람들과 남은 친구들, 새로운 만남과 떠남, 상처 준 경우와 받았을 때 그리고 이 도시 - 서울에 대한 생각과 무언가 해보려고 항상 발버둥 친 것들이 한 줌도 안 되는 무언가로 남거나 없어지거나 했다.

얼마 전 한 남자 배우를 인터뷰했다. 그는 남은 2012년 동안 막 촬영에 들어간 드라마를 마치면 올해가 다 갈 것이라 했다. 그와 나의 작업은 다르지만 나 또한 두 권의 <스펙트럼>을 만들고 수십 개의 원고를 쓰다 보면 2012년이 다 갈 것 같다. 그 사이 친구들을 만나거나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술도, 참 많이 마실 것이다.

서른다섯이 되기 전에는 잠깐 외국에 나가고 싶다. 반년에서 일 년 정도. 정규 교육 과정을 밟는 유학은 아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장소에서 보지 않았던 것들을 기록하고, 보지 않았던 것들과 내가 살던 도시의 무언가를 연결하려 하고, 그 사이에서 과연 지금 하는 작업들로 적어도 방세라든지 생활비를 벌 수는 있을까 하는 개인적인 실험을 해보고 싶다. 거창하게 무얼 이루겠다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일종의 안식년 비슷한 걸 주고 싶다. 지금 너무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는 못하지만, 짧은 여행이 아니라 그래도 조금 길다고 느낄 정도로 다른 곳에 있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떤 곳이어야 할까. 떠오르는 장소는 여러 곳 있지만, 아직 정하지 않았고 때가 되면 즉흥에 가깝게 정하지 않을까 싶다.

원칙까진 아니지만 살면서 겪은 깨달음이 있다. 일은 어떻게든 하면 된다. 늦더라도 틀리더라도 어떻게든 마무리된다. 사는 건 좀 다르다. 시간이야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지만, 삶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튕기곤 했다. 쉽게 잡히지 않는 미끄럽고 매끄러운 무언가를 손에 넣으려고 발버둥 친다. 막상 손에 들어오면, 넣기 전에 알 수 없던 새로운 경험이 생겼다. 고민이 될 수도, 기쁨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것을 반복하고, 실수를 다시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잘살고 있습니까?'라고 묻고 싶을 때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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